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성 Oct 02. 2017

도시와 자본주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일상생활의 구조下 <페르낭 보로델>

책을 읽는데 흥미로웠던 점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일상생활의 구조下>가 각 시대의 일상 생활에서부터 보로델 자신의 주장을 끌어낸다는 것이었다. 마치, 미쉘 포코의 <광기의 역사>와 <감옥의 역사>처럼 실증적 자료들을 통해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그러나, 실증적 자료들을 보다보면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자못 쉽지는 않았다. 보로델은 도시의 탄생이 홀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도시의 탄생은 시장 즉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보로델이 도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도시의 탄생과 자본주의의 관계의 특수한 관계다. 그 관계는 바로 권력관계다.


도시는 홀로 성장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조르주 귀르비치가 강조하는 "조망의 상호성"이 완전하게 작용한다. 도시는 경제 팽창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그 팽창에 의해서 찰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비록 도시가 모든 종류의 경제 팽창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게임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일상생활의 구조下, 까치, P.696)


보로델은 도시를 설명할 때 한 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조망의 상호성'이다. 우리는 도시의 발달이 홀로 일어났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조망의 상호성'에 따르면 도시의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도시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 즉 주변 지역과 함께 놓여 있어야 한다. 도시가 도시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작은 도시들이나 시골과 끝없는 상호작용을 해야만 한다. 도시와 주변 지역 특히 시골이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존재가 된것은 분업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도시는 상업, 정치, 종교, 경제, 수공업과 같은 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대 도시가 나타나기 이전까지 시골과 도시를 완전히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즉, 근대 도시가 나타나기 이전에 도시와 시골의 기능은 차이점도 있었지만 공통되는 분모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18세기 까지 대도시 또한 농업동을 유지했다. 도시는 도시의 기능을 하지만 시골의 기능을 일부 행했으며 반대로 시골 또한 모든 것을 도시에게 내준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도시와 시골은 함께 발전한다. 하지만 도시가 나타나고 눈여겨 볼만한 것은 인구의 이동이다.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옮겨 갔다. 상류층도 있고 하류층도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하류층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도시로 유입된 비율이 더 많았다. 도시로 유입된 하층계급은 시골에서 기회가 없는 존재였다. 그리하여 도시로 갔지만 도시 안에서도 좋은 일을 구하기 보다는 제일 힘들고 괴로운 노동을 맡아야만 했다. 지금까지 보로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도시의 탄생은 정치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시적으로는 도시와 주변 지역 간의 권력 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도시 내부적으로는 브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간의 계급 투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알력관계를 가지는 도시는 어떻게 발전했는가?



도시의 발전과 권력관계


11세기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고 서양의 도시들은 폐허로 변했다. 이때, 도시는 시골과 함께 다시 발전을 하게 된다. 비록, 시골이 도시를 먹여 살리고 상품을 공급했지만 시골은 도시의 지배를 받았다. 그것은 바로 도시에게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정치가, 관료, 기술자, 장인 그리고 상인이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들은 점점 커져갔다. 이러한 도시의 힘의 근원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기술, 종교를 모두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는 문화적 힘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는 시골과 권력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했다.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도시의 아이덴티티는 바로 성벽이었다. 특히, 서구 유럽에서 성벽의 역할은 군주가 외부로부터 적을 막고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성벽의 역할은 곧 바뀌게 된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자 성벽은 경제와 사회적 경계선이 되었다. 중심부에는 예술과 문화 특히 귀족적인 것이 있었다면 수공업과 같은 노동을 외각지역으로 쫓아내 버렸다. 도시가 계획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였다. 이때의 도시는 기하학적인 면모를 획득했다. 하지만, 서유럽 도시들은 신기술의 발전으로 문제를 맞이한다. 그것은 바로 대포의 발명이었다. 대포는 기존의 성벽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도시는 넓은 성채로 대포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넓은 성채의 문제점은 기존의 성벽이 가지고 있던 확장의 가능성이 없었다. 즉, 도시는 수직적 팽창의 한계를 느껴 건물의 높이가 수직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다. 또한 대포의 발명과 더불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차량의 등장이었다. 차량의 양이 많아지자 도시는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도로의 건설은 도시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 가능하게 만들었다. 도로의 등장으로 많은 도시들은 서로 간의 경쟁을 하게 되었다. 도로의 연결은 그동안 막혀있던 시장이 유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살아 남는 도시와 살아 남지 못하는 도시가 나타나게 되었다. 살아 남은 도시의 공통점은 바로 유통의 중심지라는 것이다. 바로 교역이 많이 일어나는 도시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도시와 자본주의 그리고 불균형


이렇게 운동을 관장하는 기능, 즉 도시 시장은 이곳이 도시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요소였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일상생활의 구조下, 까치, P.730)


도시는 시장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거대한 시장이 들어선 도시는 점점 커져서 거대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런 도시는 주변에 수많은 도시들을 거늘이게 된다. 유통이 점점 빨라질 수록 쓰임새가 없어지는 도시는 도태될 뿐이다. 특히, 서유럽에서 다른 지역의 도시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바로 자치 도시의 등장은 서유럽의 독특성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시기의 메디치 가문이 자신의 영토를 국가처럼 다스린 것을 보면 16세기의 자치 도시는 국가의 힘을 앞섰다. 그리하여 자치 도시는 자본과 함께 성장했다. 자치 도시는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상인들을 보호했다. 자치 도시의 힘은 바로 국가의 개입 없이 발전한 상공업과 이를 통한 경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세기, 고전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근대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이 나타나게 된다. 근대 국가의 등장은 그동안 힘을 가지고 있던 자치 도시를 자신의 시녀로 만들어 버렸다. 근대국가에서는 자본가 즉 브르주아와 행정관료들이 힘이 강했다. 이제는 강한 국가가 도시에 개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고전주의 시대의 국가는 국가의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수도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수도를 개발하면서 부와 권력, 사회, 문화가 수도라는 한 도시로 집중되었다. 근대 국가에서 모든 도시가 거대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도시만이 발전했다. 도시가 커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 들었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거대 도시를 만드는 것은 통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유입은 도시 문제를 야기시켰다. 그것은 바로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간의 갈등이었다. 바로, 브르주아와 프로레타리아 사이의 계급투쟁이다. 보로델이 도시와 브르주아를 비판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소비하는 부가 그들이 직접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대 도시와 브르주아는 권력관계를 통해 시골과 프로레타리아를 착취한다. 바로, 생산 수단을 지배계급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로델은 자신의 글을 마치며 이런 말을 한다.


영국이 도시화의 포로가 되고, 또 그도시가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지지 못하고 잘못 지어진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현상이 프랑스를 비롯해서 산업화를 향한 노상에 있었던 모든 나라들의 앞날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오늘날의 미국과 일본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이 자기 나라의 미래라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일상생활의 구조下, 까치, P.815)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도시는 자본주의를 시각화한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도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6.25전쟁이 일어나고 1970년대 압축적 경제성장을 통해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당연히 도시화도 매우 빠르게 효율성을 따지며 진행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현실은 청년실업과 양극화다. 마치, 서울에서 구룡마을과 타워펠리스가 대치하는 모습은 한국의 자본주의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도시라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멘탈리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아직까지도 끝없는 발전과 성장을 원한다. 도시나 자본가들은 자신의 힘으로 큰 부를 누렸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대기업이나 서울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동과 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보르델이 자본주의와 도시에 대해 허깨비라고 말한 것은 아마 홀로 크지는 못하지만 지배권을 누리는 자본가와 도시에 대한 조소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를 걸으며 인문학을 생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