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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Feb 05. 2016

대한민국은 왜 책 안 읽는 사회가 되었을까?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생각과 고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Can a big government push bring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to south korea
<링크> http://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can-a-big-government-push-bring-the-nobel-prize-in-literature-to-south-korea

위의 기사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노벨문학상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자신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한 기사다. 


기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반 년 전에 프랑스어 공부를 할 때, 프랑스 친구와 문학 공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자신들은 학창 시절에 시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줄 때, 시를 한 줄씩 읽고, 그 시 행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써 온 다음 수업시간에 토론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문학 교과서를 배울 때, 제일 처음으로 배웠던 시가 윤동주의 <서시> 였는데, 그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냥 받아 적어' 였다. 지금은 문학책을 읽을 때, 재밌게 읽고 리뷰도 쓰지만, 고등학생 때는 문학 점수가 좋지도 않았고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그 이유는 논리적으로 연관성도 없고 갑자기 뜬금 없는 해석이 나와서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왜 윤동주의 <서시>가 꼭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원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점이 많았다. 왜냐하면, 그 시는 개인의 양심으로도 읽힐 수도 있었고, 십자가를 지는 한 사내의 모습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위의 기사를 읽으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의 사회는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렸으며,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하여 제일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교육계라고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면 우리는 끝없이 뛰어야 한다. 첫번째 목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고 두번째 목표는 좋은 곳에 취업을 하는 것이며 세번째는 남들보다 결혼을 잘해야 한다. 그렇다 대한민국에 태어난다는 것은 종점 없는 레이스를 한다는 것과 같다. 나도 슬픈 고백을 하자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소설책이나 시집을 읽어 본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수학문제를 하나 더 풀어야 했고,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왜워야 했으며, 언어영역 기출문제를 하나 더 풀었어야 했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찍는 스킬을 끝없이 연습해야 했다. 수능을 쳐본 사람을 알겠지만, 대한민국의 시험은 생각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잘 찍는 사람을 뽑는 시험이다. 이런 시험제도 때문에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문학시간을 최악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솔직히 윤동주의 <서시>가 대한민국 독립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그 당시의 배경도 알아야 하고, 생각을 많이 해서 나오는 해석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실은 우리의 생각 경로를 알려주지 않고 그냥 외우라고 한다. 달달달 외우는 이런 문학을 누가 성인이 되어서 읽겠는가? 나는 아직도 정철의 <관동별곡>만 보면 소름이 끼치는데, 글자도 어렵고 그때 공부할 때,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고전문학은 절대로 보지 않는다. 솔직히 이런 암기식 교육은 단기적 관점에서 다양한 지식을 학생들의 머리에 쑤셔 박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인간의 머리를 장식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낭만인가?


가끔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외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책을 읽고도 그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다. 가령, 보들레르의 시를 읽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약간 미친놈 보듯이 보거나, 독특하다고 치부해 버린다. 정말 내 주위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찾자면 손에 꼽을 정도랄까? 하지만 이런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낭만이다. 첫번째로, 책 읽기에 대한 교육이 안 되어 있으며 고등학교 때의 공부로 인해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어려운 것으로 인식 되었다. 두번째로,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끝없는 경쟁 사회에서 뒤쳐진다는 것이다. 강남역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 대부분이 토익 책을 들고 다니고 영어 공부를 하려고 돌아다닌다. 영어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토익이나 토플이나 학원에서 주는 숙제의 양이 많기 때문에 공부하고 숙제하고 친구 만나고 조금 쉬다보면 하루가 다 가있다. 또한, 학생들은 공모전이나 스펙을 쌓으려고 열심히 살아간다. 취업이 되고 대한민국의 회사는 끝없는 야근과 착취를 일삼으며 회사와 개인을 하나로 만들어 버리니 지금 이 사회에 누가 책을 읽겠는가? 나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이 개인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며, 이런 책 안 읽는 사회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는 책을 안 읽는 것이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작가들과 그들이 살았던 다양한 사회를 접하면서, 그들이 고민했던 것들을 옅보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 하나 차곡 차곡 쌓이다 보면, 그 시야가 나 자신에게 집중이 되고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의 세상이 보이게 되면, 지금의 세상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보고 고민하게 되면서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Facebook에서 자신의 먹방 사진이나, 수백장을 찍어서 잘 나온 사진을 업데이트하고, 긴 글 보다는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글들에만 집중을 한다. 또한, 경쟁사회에서 자신이 우위에 설 수 있는 기술이나, 자기발전이라는 슬로건에 휩쓸려 자기 성장만을 추구하는 글들에 집중을 한다. 다 좋다. 하지만 생각해 봐라, 우리가 점점 생각이 없어질 수록 좋아하는 것은 바로 저 위에서 뱃지 싸움이나 하는 정치인들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는 생각없이 여론에 끌려 다니며 마녀사녕만 주구장창한다. 마녀사냥이 과거 중세에 일어난 일 아닌가? 그 당시에 마녀들을 죽인 것은 지배받던 사람들이 무지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와 과거 중세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역사에서 보았듯이 마녀사냥은 세계사에서 최악의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역사를 볼 때, 우리는 책을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사회 구조적으로 책을 읽기 힘든 상태로 만들어 놓긴 했어도, 그것을 이겨내고 우리는 고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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