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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Jun 29. 2018

유시민이 꿈꾼 '유시민 없는 사회'

유시민 작가의 썰전 <하차>를 바라보며


성장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 유시민


오늘을 마지막으로 유시민 작가가 <썰전>을 하차했다. 그의 <썰전> 하차가 아쉬웠는지 인터넷 검색 순위에 오를 정도로 관심이 고조되었다. 사실, 나는 정치에 대해 무관심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문제가 불거질 때였다. 그 이후, 국가,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었다. 그와 더불어 유시민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책도 읽어보고 강의도 들어 보았다. 왜,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에게 열광하는가. 수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비치는데 왜 유시민인가. 그것은 유시민을 사람들이 사랑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시민 작가의 다양한 매력이 있기는 하겠지만, 내가 제일 유심히 본 것은 지금의 유시민이 있기 까지 유시민 작가는 계속 성장을 하였다는 것이다.


보편성의 원리라는 이상을 가지고 정치를 시작하다


내가 말하는 시민이라는 것은 자기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 자기와 정치, 자기와 권력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적어도 자기의 몫을 주장할 줄 알고 자기 몫을 넘어서 내 이웃과 정치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일반화해서 정치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라고 보는 것이죠. 이런 개념에서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고 그 시민 없이는  민주주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시민의 숫자가 적다면 시민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죠. (진보의 미래, 동녘, P.329)


유시민 작가에게 제일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유시민 작가는 노무현 대통령을 많이 좋아했는데, 당연히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사상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꿈은 '진보 정치'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던 '진보 정치'는 무엇인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제일 중시하는 것은 공정성이다. 공정성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비례성의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보편성의 원리다. 비례의 원리는 ‘내가 노력에 비례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것도 비례의 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다만, 비례의 원리의 맹점은 그 사람이  선천적인 불평등 가령,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능 시험은 비례의 원리를 따르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불공정하다고 비판한다. 그 이유는 수능 시험에서 부모님의 재력과 같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례의 원리는 돈이 많은 집에 태어났나, 돈이 없는 집에 태어났나, 내 성이 남성인가, 여성인가, 나의 인종이 어떤가에 대한 고려는 들어가지 않는다. 비례의 원리는 마치, 하나의 경기장이 있지만 출발점은 각각 다른 것을 인정하는 달리기 경기와 같다.

노무현 정부에서 철학으로 삼았던 것은 비례의 원리를 존중하되, 보편성의 원리에 따라 경쟁의 시작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수많은 사회적 비판을 받았고 참여 정부는 정말 많이 두들겨 맞았다. 이런 세상을 꿈꾸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를 했다. 이 당시 유시민 작가의 심리를 유추하면 보수 정권에 대한 분노와 미움, 정치를 통해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몰아붙인 국민, 언론, 보수정권에 대해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유시민 작가는 정치 제도를 바꾼다고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고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정치판을 나오게 된 것이다.



지식 소매상, 계몽을 꿈꾸다


나쁜 시스템이 악한 상황을 만들면 선령하고 평범한 사람도 악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시스템과 상황 속에서도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불제 민주주의, 돌배게, p.376)


나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면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말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소로가 말한 것처럼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돌배개 p284)


<후불제 민주주의>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으면 유시민 작가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엿볼 수 있다. 사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재임하던 보수 10년 정권 동안 유시민 작가는 일종의 유배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마음 속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잃었다는 슬픔과 세상 그리고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두려움 속에서 그는 그 세상을 받아들이고 다시 세상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지식 소매상’이 된다. 그는,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의 지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한 편으로는 책을 집필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또 다른 한 편으로 팟캐스트와 강연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사람들을 깨우려고 노력한다.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이라도 한 명, 한 명이 바뀌게 된다면 세상은 변화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보수정권 10년 동안 집필한 그의 책을 읽어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많은 사상가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의 주장이 당연히 들어가기는 하지만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이런 개념을 달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서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사고를 할 때,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고뇌하며 판단을 하는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각성을 바라본 유시민 작가


사실, 책이나 팟케스트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좋지만 이것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책을 읽으려면 책을 사야하고, 독해를 해야하기 때문에 지금 시대에 접근성이 좋은 매체는 아니다. 팟케스트의 경우도 기술에 민감한 젊은 세대는 쉽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기술에 민감하지 않거나, 귀찮은 사람들에게는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것이다. 그가 <썰전>에 출연한 것은 그에게 있어 최고의 기회였다. 정말 많은 사람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썰전>이 뜨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스캔들이었다. 그로 인해서,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는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고, 그들의 설명과 예측은 그동안 우리의 삶과 괴리되어 있던 정치를 우리와 친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많은 시민들이 각각 정치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치는 것을 보며 유시민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그동안의 좌절들을 반추하고 있지 않았을까. 학생운동으로 87년체제를 만들었지만 그것은 제도를 만든 것 뿐이었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었다. 참여 정부 때, 제도를 잘 굴려서 세상을 바꾸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호응이 없어 이 꿈 또한 무너져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각자의 사람들이 대중에서 시민으로 각성을 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유시민 작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 섰을 때, 유시민 작가는 ‘진보 어용지식인’이 되기를 자처했다. 아마, 이때의 심리는 세상이 바뀐 것은 같은데, 바뀐 세상이 아직 불안해 보여서 조금 더 지켜 보겠다는 마음 같았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에 적응하고 6월까지 불안한 점도 많았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국정 수행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유시민 작가는 우리 곁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모토 또한 보편성의 원리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제는, 노무현 정부 때와는 다른 환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으로 각성했고 어쩌면 유시민 작가의 사명은 여기까지인 것이 아닐까.



이제 정치인 유시민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가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라고 이해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의 길, p.249)


사실, 이제는 유시민 작가를 우리가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의 작별이 슬프긴 하지만, 유시민 작가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의 인생을 잘 살펴보면,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치라는 것, 정치 평론을 하는 것,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할 시기다. 아마, 유시민 작가는 더 이상 텔레비전에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예능은 나올 수도 있지만... 우리가 유시민 작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는 성장형 지식인이다. 정치인일 때 유시민 작가는 이상적이며 싸움 닭 같은 이미지였다. 수많은 좌절을 겪으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도 잃고, 아픔이 많았다. 참여 정부 이후, 10년 유시민 작가의 모습은 차분하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은 계속 공부하고, 책을 읽고, 고뇌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완성된 지식인이 아니다. 그는 끝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그 부족함을 개선해가려는 ‘성장형’ 지식인이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유시민 작가는 어떤 꿈울 꿨을까. 개인적으로 '유시민 없는 사회'일 것이다. 이제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의 권리를 가지고 홀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든 그는 이제 우리와 마지막 인사를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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