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피카츄> 리뷰
<명탐정 피카츄>는 스토리는 개연성도 별로 없고 아이들 영화 느낌을 많이 준다. 그런데, <명탐정 피카츄>를 보며 스토리에 대해 평가하고 구리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나의 생각 때문이 아닐까? <명탐정 피카츄>를 보면서 스토리가 유치하다고 마음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영화에 몰입을 했었다. 바로 팀 굿맨에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 생각이 나서 그런 것 같다. 팀 굿맨은 보험사에서 일하고 있다. 팀 굿맨은 예전에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었지만 현재는 보험사에서 일하며 현실에 찌들어 살고 있다. 팀 굿맨을 바라보면서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1997년 나와 포켓몬 레드버전
현재 셰프가 되었고 브라질에서 외국인과 결혼을 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는 어린시절 미국에 들락날락 거리며 포켓몬이라는 신문물을 나에게 전파했다. 그때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포켓몬 게임이 블루버전이었는데 나도 게임이 갖고 싶어 용산전자로 가서 포켓몬 레드버전을 구매했었다. 포켓몬 시리즈가 한국에 들어오고 아마 나의 또래가 1세대 포켓몬 유저였다. 귀여운 포켓몬들, 151마리의 다양한 종류, 레벨을 올리면 강해지는 캐릭터, 151마리를 모두 잡고 싶다는 생각 등... 포켓몬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함께한 친구였다. 사촌동생들과도 열심히 포켓몬 골드버전과 실버버전을 했었다. 미국에서는 포켓몬 게임 가이드북이 나와서 아버지와 함께 아마존에서 포켓몬 가이드북을 주문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게임을 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 나서 포켓몬스터를 접었던 것 같다. 그때는 초등학생의 순수함이 있었다고나 할까? 지우처럼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고 싶었고 세상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이를 먹은 친구들과 그때 친구들을 바라보면 참 많이 변했다. 모두가 과학자, 변호사, 의사, 외교관 같은 직업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를 포함해 꿈(그 당시 우리는 직업과 꿈을 동일선상에 놓아 생각했음)과 장래희망에 적었던 직업을 이룬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가 자신이 꿈꾸던 희망직업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갔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고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워나갔고 배워나가는 중이다.
팀 굿맨과 대한민국 30대 아저씨들
30대가 되고나서 우리의 대화 주제는 매우 한정적이다. 결혼, 여자, 부동산, 월급, 술, 회사, 퇴사... 그리고 우리는 모두 외롭다. 팀 굿맨은 영화에서 보험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팀 굿맨은 텅구리(외로운 포켓몬)를 잡으려다 실패한다. 팀 굿맨의 친구는 텅구리와 팀 굿맨이 매우 비슷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어른이 된 우리들 모두 팀 굿맨과 비슷하다. 많은 30대가 팀 굿맨처럼 평범한 회사원이고 말을 하지 않지만 외로움을 느끼지만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외롭다'는 말을 삼사고 있다. 세상은 포켓몬 세계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상사를 살펴야 하고 원하지 않는 회식자리를 지키며 왕창 술을 먹고 취해서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친구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돈이 치여 허덕이는 친구들, 고시 준비를 하며 힘들어하는 친구들, 돈이면 모든지 된다는 친구들, 꿈과 희망을 버리고 오늘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친구들,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어 가장의 무게를 견디는 친구들, 매일 술에 취해 사는 친구들... 이 세상은 어쩌면 노동시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에게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망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특히, 부모세대의 풍요로운 세상에서 태어나 부모님들처럼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 세대를 살아가는 2030의 비애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에게 꿈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 꿈 이야기, 깊은 이야기를 하는 일은 거의 사라져 버렸고 오로지 술을 먹고 쾌락을 즐기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버렸다.
1996년의 피카츄가 30대 아저씨에게 찾아왔을 때...
<명탐정 피카츄>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순수했던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탐정 피카츄>는 어른이 보기에는 유치하고 논리적 흐름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내가 초등학교 때 <명탐정 피카츄>를 보았다면 어땠을까? 재밌고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20대 초반에는 프랑스 문학에 빠졌다. 제일 많이 써먹었던 소설이 바로 <어린왕자>였다. 어린 시절 어린왕자를 보며 6개의 행성에 살던 아저씨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순수성을 잃고 숫자만 중시하는 어른들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며 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살아가길 다짐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너무 자만심에 빠져있었다. 대학원에서 숫자만 보더니 나 또한 모든 것을 숫자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잘 쓴 글을 조회수로 판단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몇 명이 읽었는지가 중요해졌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만 따지며, 부동산 가격이 올랐는지 내렸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대의 내가 나 자신을 보았다면 끝없는 비판을 가했을 것이다. 나 또한 어른의 눈으로 <명탐정 피카츄>를 보았었다. 그러나, <명탐정 피카츄>는 어른의 눈으로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영화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린이의 눈으로 <명탐정 피카츄>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팀 굿맨에게 피카츄가 등장하고 팀 굿맨은 어린시절의 순수성을 조금씩 회복하게 된다. 나도 피카퓨를 보았을 때, 회색시티로 가기 전 피카츄를 잡으려고 노력하던 내가 떠올랐다. 피카츄가 강한 포켓몬은 아니지만 그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게임 내에서 수많은 캐터피를 죽였던 것이 생각난다. <명탐정 피카츄>는 1996년의 나와 2019년의 나를 기억하게 만들어 주었다.
30대의 나와 피카츄... 우리는 순수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명탐정 피카츄>는 중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피카츄 또한 나와 같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우리가 초등학교 때의 순수성을 100% 회복할 수는 없다. 2030대에 어린이 같은 순수성을 가진다는 것 자체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나이에 감당해야하는 인생의 질문들이 던져지기 때문이다. <명탐정 피카츄>는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1996년에 포켓몬을 처음 접했던 관객들을 위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상업 영화이기에 나의 과잉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명탐정 피카츄>는 배경의 무대가 은근히 어둡다. 즉, <명탐정 피카츄>는 포켓몬 세상처럼 세상은 쉽지 않고 오히려 어둡다고 보여준다. 그러나, 어른이 되었을 때 어린시절의 순수함을 기억하길 바란다는 메시지가 <명탐정 피카츄>에서 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본다. 이렇게 어린이의 순수함에 대해 글을 쓰지만 나는 내일이면 또 빨리 달리고 경쟁을 하려고 사회 속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달리는 세상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할 수 있으며 순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것은 피카츄가 나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