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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Feb 03. 2019

<스카이캐슬>의 결말은 바뀌었다.
카뮈가 울겠다...

<스카이캐슬>의 결말은 알베르트 카뮈의 부조리극에서 많은 모티프를 따왔다

<스카이캐슬>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결말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그런데 <스카이캐슬>의 애청자로서, <스카이캐슬>의 결말이 바뀐 것은 거의 100%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결말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것은 유현미 작가의 느낌과 결말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유현미 작가는 학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그렇다면, 프랑스 문학을 제일 많이 접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스카이 캐슬>이 블랙 코미디라는 것이라는 것과 한서진 집의 비극과 김주영 선생의 모습은 프랑스의 유명 작가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과 <오해>에서 많은 모티프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오해>와 한서진과 강준상 집안


https://brunch.co.kr/@minsungdkim/201


알베르트 카뮈의 <오해>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한 마을에 어머니와 딸 마르타는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 여관 일 때문에 지루함을 느낀 그들은 돈을 왕창 벌어서 바다로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여관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바다로 떠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모녀는 돈 많은 여행객을 죽이고 그 돈으로 바다로 갈 계획을 세운다. 마르타에게는 남자 형제가 있었는데 25년 전에 체코로 떠나 부자가 된 얀이 부인과 자식을 대리고 마을로 돌아온다. 얀은 모녀에게 깜짝 쇼를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여관에 머물게 된다. 어머니와 마르타는 얀이 자신의 가족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마르타와 어머니는 얀에게 맥주에 수면제를 타서 얀을 잠들게 하고 얀을 강물에 빠트린다. 며칠이 지나고 오지 않는 남편을 걱정하던 마리아는 여관으로 가서 어제 며칠전에 머물던 손님이 모녀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자, 어머니는 목을 매달아 죽고, 마르타는 잠시 생각을 하고 강물로 뛰어 들어 자살하며 극은 끝난다.


한서진 집안도 <오해>와 매우 흡사한 일을 겪는다. 바로 강준상 교수의 사생아 혜나가 강준상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강준상은 바로 앞에 자신의 딸이 있는데도, 혜나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혜나가 극중에서 끊임없이 강준상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어필하지만, 강준상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혜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김주영 선생이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한서진 또한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네티즌이 한서진이 낳은 딸은 예서가 아니라 혜나라고 하는 가설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가설이 맞아야, 한서진 집안의 비극은 <오해>와 궤를 같이 한다. 강준상은 혜나를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한서진은 혜나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믿어 버린다. 그런데, 혜나가 극중에서 예서는 없고 예빈이와 한서진 그리고 강준상과 함께 계속 저녁을 먹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복선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화에서 이 모든 것은 혜나의 환상이라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설명으로 떡밥을 해결해 버린다. <오해>에서 마르다와 그녀의 어머니는 얀이 자신들의 가족이지만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얀을 죽여버리는 부조리극을 만들어 버린다. 유현미 작가의 특징을 보면 끊임없이 극을 꼬으고 꼬는 스타일이다. 당연히 혜나가 한서진의 딸이라는 것을 이미 계획을 했었을 것이다. 만약, 혜나가 한서진의 딸이었다면 한서진은 <오해>의 주인공들처럼 자살을 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조리극이다. 그런데, <스카이캐슬>을 결말까지 보면 처음에는 부조리극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교훈을 주는 극으로 끝나니 아쉬움이 많이 남게 된다.


김주영과 <이방인>


https://brunch.co.kr/@minsungdkim/2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는 표면적으로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처럼 등장한다. 그는 어머니가 죽은 다음날 자신의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즐기며, 태양이 자신을 밀어 붙인다고 하여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여 버린다. 뫼르소는 체포가 되고 아랍인을 죽인 이유를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즐긴 정황이나 사이코패스 같다는 정황상 증거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뫼르소는 마지막 장면에서 성난 군중이 자신을 맞아주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김주영 선생은 뫼르소와 같이 사이코패스 같이 보이지만 둘은 공통점이 있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소설 내내 '어머니의 죽음'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한다. 즉, 뫼르소는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며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김주영 선생의 경우도 K를 방치하는 것 같지만 선생의 모성애는 장난이 아니다. 김주영 선생이나 뫼르소는 사회에 대해 저항하는 인물이다. 뫼르소는 자신의 목을 잡고 있는 가족제도, 사회제도, 관습, 종교에 대해 무관심이라는 소극적 형태의 저항을 한다. 그리고 그는 저헝의 결과로 자신의 목숨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 김주영 선생의 경우도, 대한민국의 입시교육과 탐욕에 대해 분노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사회에서 권력자나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에게 굽신 거리는 것을 즐기며 종국에는 그 가정을 파괴하는데서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저항하는 인물상이다. 사실, 김주영 선생은 감옥에 가고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방인>의 모티프와 비슷하게 갔다.


개인적으로 <스카이 캐슬>은 알베르트 카뮈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많은 뇌피셜이 존재하지만, 나는 <스카이 캐슬>이 알베르트 카뮈의 부조리극을 따를 경우 사회에 대해 많은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의견이 많아 결말을 급하게 바꿨다고 생각한다. <스카이 캐슬>의 결말이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잘 만든 드라마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나의 바람일 뿐이지만, 결말이 너무 김 빠진 사이다처럼 끝나서 아쉬운 마음에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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