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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May 26. 2018

데드풀 2, 유쾌함 속의 슬픔이 깃든 영웅

데드풀 2 리뷰

스포가 있습니당



익살스러움 뒤에 숨어 있는 슬픔의 히어로


What's left to say?

These prayers ain't working anymore

Every word shot down in flames

What's left to do with these broken pieces on the floor?

I'm losing my voice calling on you

'Cause I've been shaking

I've been bending backwards till I'm broke

Watching all these dreams go up in smoke

Let beauty come out of ashes

Let beauty come out of ashes

And when I pray to God all I ask is

Can beauty come out of ashes?

Can you use these tears to put out the fires in my soul?

'Cause I need you here, woah

'Cause I've been shaking

I've been bending backwards till I'm broke

Watching all these dreams go up in smoke

Let beauty come out of ashes

Let beauty come out of ashes

And when I pray to God all I ask is

Can beauty come out of ashes?

Can beauty come out of ashes?


Celin Dion <ashes>


<데드풀 2>의 분위기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재미와 익살스러움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데드풀2>는 슬픔이 극대화되는 아이러니함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데드풀의 연인 바네사가 총을 맞고 사망을 하기 때문이다. 데드풀과 바네사가 기념일인 날 둘은 가족을 이룰 것을 약속한다. 그 순간, 갱단이 등장하고 데드풀은 이들을 가볍게 제압하지만, 갱단 중 한 명이 쏜 총에 바네사가 숨을 거두게 된다. 이성을 잃은 데드풀은 바네사를 죽인 갱단 두목을 죽여 버린다. <데드풀 2>는 영화 내내 가볍고 익살스럽지만 이는 데드풀의 슬픔을 극대화 시킨다. 사람들 중에 언제나 재밌고 매일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슬픔과 고독을 숨기기 위해서 더 오버 액션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데드플은 유쾌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데드풀이 B급 히어로이고, 막말을 내뱉고, 정신 나간 생각을 하지만 데드풀 중심을 관통하는 것은 소중한 사람의 상실이다. 데드풀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데드풀 마음 속에 존재하는 바네사의 거실이다. 데드풀은 마음 속 거실에 앉아 있는 바네사에게 걸어가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그녀와 소통을 할 수 없다. 유일한 내 편, 사랑하는 사람, 최초의 가족을 잃은 데드풀은 자신의 새로운 가족을 찾으러 방황을 한다. 그것은 엑스맨이었다. 엑스맨은 나름의 룰이 있어서 살생을 하면 안 되는 집단으로 영화에서 묘사가 된다. 그리하여, 데드풀은 콜로서스와 네가 소닉과 함께 첫 번째 출동을 하게 된다. 한 꼬마 뮤턴트가 보육원에서 경찰들과 대치를 하고 있었다. 꼬마 뮤턴트의 이름은 러셀로 불을 다룰 줄 아는 아이였다. 그는 보육원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분노한 러셀을 데드풀이 가볍게 제압을 한다. 데드풀은 러셀에게 '보육원에서 학대를 받냐'고 묻자, 러셀은 이에 대해 긍정을 한다. 갑자기 욱한 데드풀은 원장과 보육원 선생들에게 총을 쏘고 죽여 버린다. 그리고 러셀과 데드풀은 체포되어 '아이스 박스'에 투옥된다.


잠깐 넘어가기 전에, <데드풀2>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셀린 디온의 음악을 통해 데드풀의 멘탈리티를 조금 더 들여다 봐야겠다. 가사를 보면 가사의 화자는 누군가를 상실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말도 나오지도 않고, 기도를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가 꿈꾸던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화자는 'Can beauty come out of ashes' 라는 질문을 한다. 근데, beauty 즉 우리 말로 번역하면 아름다움인데 솔직히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번역을 하자면, beauty는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상실 속에서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살아갈 목적을 잃은 그곳에서 다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주관적인 의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우리가 <데드풀2>를 감상할 때, 웃긴 부분에 중점을 두고 보는 것은 맞지만, 어쩌면, 유쾌함 속에 감춰진 데드풀의 슬픔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증오의 연쇄를 폭력으로 끊겠다. : 케이블


케이블은 데드풀과 러셀이 있는 '아이스 박스' 시설로 와서 러셀을 죽이려고 한다. 나중에 나오지만, 러셀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러셀이 미래에 악당이 되어 케이블의 부인과 딸을 불로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케이블은 이 사건을 막기 위해 어린 러셀을 제거하기 위해 미래에서부터 데드풀이 사는 세상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 '아이스 박스'에서 러셀은 데드풀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당시 냉소주의에 빠진 데드풀(능력을 억제하는 목걸이를 차고 있어서 데드풀은 능력이 발동되지 않고 암세포가 퍼지고 있어서 죽어가고 있었음)은 러셀을 자신이 지켜줄 수 없으며 외면한다. 이에 대해 러셀은 자신이 거절 받았다는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감옥 내에서 제일 강한 사람과 딜을 하려고 한다. 케이블은 러셀을 보고 눈이 돌아가서 러셀을 계속 죽이려고 따라 다닌다. 케이블 입장도 이해가 가는게,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살인범을 보면 과연 용서를 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케이블의 입장이었다면 러셀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러셀의 행동은 어떤가. 러셀의 과거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육원에 갔다는 것은 부모가 죽었거나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보육원 안에서도 돌연변이들을 개취급하는 원장에게 학대를 받으니 어린 러셀이 온전한 생각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고 분노조절 장애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데드풀은 바네사를 잃고 증오심에 바네사를 죽인 사람을 죽여 버린다. 케이블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러셀을 죽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러셀은 자신을 학대한 원장을 죽이고 싶어한다. 여기서 증오의 연쇄가 시작된다. 원장의 학대는 러셀을 악당으로 만들고, 러셀은 원장에게 복수를 하고 악당이 되어 케이블의 가족을 몰살시켜 버린다. 이에 분노한 케이블은 어린 러셀을 죽이려고 한다. 여기서 모두가 증오의 연쇄를 이어나가는 원동력은 바로 폭력과 분노다.


케이블과 데드풀의 모습은 서로 겹쳐 보인다. 케이블은 가족을 잃고 복수의 화신이 된다. 데드풀은 바네사를 죽인 범인을 죽여 버린다. 묘하게 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다만, 둘의 차이점이라면 케이블은 러셀을 죽이려고 하는 중이고, 데드풀은 범죄자를 죽였다는 것이다. 데드풀은 자신의 복수를 아주 간단하게 이루었다. 하지만, 복수에 성공을 해도 마음의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상실감을 준 사람을 증오하고 복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어떻게 해서 복수에 성공을 한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올까. 복수한다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는 것일 수도 있으며 죽음을 안겨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복수의 끝은 모두가 괴롭고 슬플 뿐이다. 오히려, 새로운 증오를 낳고 그 증오는 쇠사슬처럼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내 목숨을 걸고 증오의 연쇄를 끊어 버리다. 


러셀은 저거너트와 탈출에 성공하고 보육원으로 복수를 하러 간다. 케이블은 러셀을 죽이려고 하지만, 데드풀은 자신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고 러셀을 살리려고 한다. 보육원을 불태우는 러셀을 막으려는 데드풀... 말로 잘 풀어나가려고 하지만 분노한 러셀의 마음을 풀지 못한다. 데드풀은 능력억제 목걸이를 차고 진심으로 러셀에게 달려 가려고 한다. 그때, 케이블은 러셀에게 총을 쏘고, 데드풀은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러셀 대신 총을 맞고 죽어간다. 러셀은 데드풀의 진심 어린 행동을 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눈물을 흘린다. 데드풀의 행동은 증오의 연쇄를 끊어 버렸다. 절대 죽지 않는 영원한 존재인 데드풀이 유한한 존재가 되어 러셀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증오의 연쇄는 끊어진다. 러셀은 데드풀의 사랑을 느끼고 악당이 되지 않게 되었고, 케이블은 러셀을 살인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데드풀은 성장을 하게 된다. 자신의 연인인 바네사를 죽인 범죄자를 용서하지 못한 데드풀에서 케이블과 러셀의 증오의 연쇄를 끊어 버린 영웅으로 말이다. 데드풀은 자신이 했던 복수를 자신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뤘다. 죽음을 맞이한 데드풀은 케이블의 시간이동장치로 인해 다시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쿠키영상에서 바네사도 살리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데드풀이 원래 DC처럼 무거운 영화는 아니니까...


<데드풀2>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데드풀은 증오의 연쇄에 걸려 있는 러셀과 케이블의 마음을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 데드풀은 러셀과 같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었고 사랑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데드풀에게 사랑을 할게 해준 것은 바네사였다. 데드풀은 바네사를 읾으면서 케이블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데드풀은 바네사를 죽인 갱을 죽여 버렸다. 그러나, 그 복수는 데드풀을 자유롭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방황을 하게 만들고, 허무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증오의 연쇄를 끊는 방법은 용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위대한 이유는 용서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용서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는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존재를 그 사람에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용서를 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용서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이 신으로부터 왔든, 사랑하는 사람으로 부터 왔든,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자신의 존재까지 던질 만큼 사랑했다면 용서는 가능하다. 러셀이 복수를 그만 두고 원장을 죽이지 않은 것... 케이블이 러셀을 죽이지 않은 것은 바로 데드풀이 자신의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러셀은 데드풀의 사랑을 받고 복수의 불꽃을 꺼버린다. 데드풀은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바네사로부터 사랑을 받은 존재다.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힘...... 증오의 연쇄를 끊어 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랑이었다. 나는 <데드풀2>가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유쾌함 속에 나름의 진중함을 두고 있어서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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