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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Mar 01. 2016

역사를 배우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오늘은 3.1절이고 3.1 운동이 일어났던 일이다. 오늘은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고 수능을 공부할 때, 근현대사에서 3.1 운동하면 자동적으로 답을 찍을 정도로 역사적 지식으로 외웠다. 요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수능과 공무원 시험에서 역사를 필수 과목으로 넣은듯 하다. 정말 좋은 취지지만 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에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이 없다.  단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하나의 외워야할 대상일 뿐이다. 솔직히, 한국의 교실에서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 나는 한번도 배운 적이 없다. 역사는 나에게 있어 삼국지와 비슷한 소설의 느낌일 뿐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 


역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객관적 인식을 넘어 좀 더 높은 차원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역사지식은 단순히 연대, 인물, 사건 등을 나열하는 지식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자기발견(自己發見)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료 속에 남아 있는 인간의 과거행위에 관한 의문을 해결하려는 '특별한 사고형식'이다. 이는 단순히 '역사를 배우는' 대힌 '역사를 하는'(doing history) 태도를 가리킨다. (역사의 본질과 인식, 차하순, p18-19)


역사를 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깨닫는 길인 것이다. 여기서 역사를 한다는 것은 역사사적 사고방식을 배우는 과정인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으보면 내가 연예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나는 여자 혹은 남자친구의 키가 몇 이고, 머리 카락이 몇 가닥이고,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고, 저녁은 몇 시에 먹는지 정확히 안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 혹은 여자 친구에 대해 알긴 하지만, 그 사람의 말의 의도나 성격 등을 알지 못한다. 이번에 나는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이 밥을 먹으며, 많은 시간을 산책을 한다면, 그 사람의 생각하는 방법이나 그 사람이 없을 때, 그 사람이 행동할 것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를 한다는 것은 역사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역사가들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이다. 


역사는 인간이 집단덕으로 무엇을 성취했는가, 어떤 일에 성공 했으며 얼마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였는가, 또한 실패는 무엇이며 그 원인이 무엇인가 등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성공과 실패의 자취를 살펴본다면 인간의 능력과 그 한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는 인간본성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인간 본성을 알게 될 때 자신의 정체성, 즉 나는 과연 무엇인가를 깨닫게 괼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고찰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자기발견'에 이르는 일이다.
(역사의 본질과 인식, 차하순, p52-53)


한 발 더나아가서 역사라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하나의 길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때문이다. 문학과 역사가 닮은 점 중 하나는 역사나 문학 속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첫번째로, 우리는 역사적 인물들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동일시 할 수 있다. 가령, 이순신 장군을 보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던 그의 리더십과 그의 모습을 나에게 거울 처럼 비춰볼 수 있다. 두번째로,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사람의 사고 방식을 알 수 있다. 가령,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고려를 보존하지 않고 갈아 엎어 벌렸을 때, 그의 사상과 역사적 상황을 통해 우리는 한 인간의 삶을 바라 볼 수 있다. 세번째로, 우리는 우리 국사 책에 나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통해 이 모든 영역이 함께 굴러감을 통해 그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역사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경험주의적인 습득 방법이다. 수없이 많은 개별들의 사례들을 계속 배우고 사고하다보면 개별 사례들이 그 수가 늘어날 수록 보편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인식은 왜 중요한가?


"역사는 우리 정신 속에 살아 있으며 현재의 삶과 결부된 것"이라고 크로체는 주장하였다. 삶의 요구에 따라 죽은 과거는 되살아나 다시 현재가 된다. 우리는 '삶에 대한 현재적 관심' 때문에 과거의 사실을 들여다 본다. 그러므로 과거의 현실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현재의 요청에 대응하는 것인가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키케로는 '역사는 삶의 스승'이라고 말하였다.
(역사의 본질과 인식, 차하순, p138-139)


역사 인식이라는 것은 현재의 필요에 의해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가끔 정치 평론가들이 정치 평론을 하는 것을 보면 과거의 정치적 사례들을 가지고 현재의 상황을 진단을 한다. 그것은 바로 역사를 통해서 세상을 조금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의식을 통해서 과거의 어떤 사건이 시발점과 그 결과와 그 여파를 배우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비판적 의식을 기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건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고 어떤 시대적 상황을 가졌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 교육에서 학생들은 역사 인식을 배우지 못 했다. 그냥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학생들은 시험을 보기 위한 역사적 지식들을 달달 외웠을 뿐이다. 우리는 왜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켜야만 했는지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고, 왜 독립군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버려가면서까지 나라를 지키려고 했는지 공감하지 못한다. 우리가 역사 인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수업시간에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생각하는 수업이 필요할 것이다.


역사교육은 왜 중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까?


자국사와 정치


최근, 국정화 교과서 문제가 큰 이슈였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솔직히 국정화 교과서는 정치를 위해 역사를 이용했던 것 같다. 역사와 정치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집필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 교과서들을 보면 자신들의 정치들을 미화시키기 위해 쓰여졌다. 북한의 국사책들도 믿기 힘든 신화적 이야기를 통해서 북한 주민들을 교육시킨다. 그런데 웃긴 것은 북한 주민들이 신화같은 이야기를 믿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라는 것은 계속 주입될수록 그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시키고,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나는 이번 국정화 교과서도 이런 점이 아닌가 의심을 해본다.



어떻게 역사 교육을 시킬 것인가?


첫째, 전문적 역사가들의 해석과 설명을 익히기


나는 과거 금성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근현대사를 고등학교에서 배웠다. 솔직히, 금성 교과서가 편향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이 집필진이 너무 치사했다. 왜냐하면, 역사라는 것은 역사적 사료를 역사가의 관점에서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 앞에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어떤 관점들이 있고,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책을 쓰겠다고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방법은 너무 치사한 방법이다. 솔직히 그들이 잘 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라서 우리에게 다른 관점을 안 알려준 것 뿐이까... 역사라는 것은 인간의 관점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 해석 방법들을 모두 익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가 역사를 나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 때문이다. 솔직히 여러 관점을 이야기도 안 해주고 자신들의 관점이 정설처럼 쓱 보여주는 것은 나 자신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역사를 못 보게하는 갑질이다.



둘째, 사료를 직접 다루어 구체적으로 사실을 고찰


수능에서 국사를 공부할 때, 제일 머리 아프게 했던 것이 바로 자료 해석 문제였다. 한국에서 자료해석 문제가 제일 짜증났던 이유는 나는 한번도 사료를 통해서 그 시대 상황을 읽는 법을 배우지 못 했다. 반대로, 그 시대 상황과 사건들을 배우고 그 다음 자료 해석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자료 해석 문제가 보기도 싫었다.  이는 마치 윤동주의 서시를 배우기 전에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시대 상황을 배우고 시로 들어가니까 시 속에서 읽기 어려운 대한의 독립을 주제로 끌어오는 것이다. 솔직히 서시를 아무 배경없이 읽어보면 어떻게 그 시에서 대한 독립이 주제로 딱 나오겠는가? 이처럼 우리는 지식을 먼저 배우고 그 다음 그 지식의 한 틈에 사료를 넣는다. 즉, 우리의 역사 교육을 잘 못 되었다. 사료를 다룬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 사료의 내용과 문체 연대 등을 파악해서 역으로 그 시대 상황을 짐작해 나가는 것이다. 즉, 사료를 통해서 생각하는 힘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역사를 바라보는 생각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나는 내 아들 딸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역사 교육이 암기식이 아닌 정말로 스스로 생각하는 교실에서 이루어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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