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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Mar 17. 2016

인생을 춤으로 말한 남자,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카잔치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의 내용은 책의 두깨에 비해 간단하다. '나'가 크레타섬으로 가다가 조르바를 만나가 된다. 주인공인 나는 조르바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조르바와 함께 광산 사업을 하게 된다. 서술자인 나는 돈을 투자하고 조르바는 인부들을 대리고 광산 산업에 착수를 한다. 그러다 광산 산업이 망하고 조르바와 나는 해어지게 된다. 이 책을 읽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조르바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중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의 처음이자 끝이다.


이집트의 예술과 고대 그리스의 예술


갑자기 예술이야기가 튀어나오게 되어서 약간 어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의 예술의 차이를 들어 조르바의 성격을 유추하려고 한다. 이집트의 예술은 추상 예술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추상 예술이 발달한다는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환경이 갈등을 겪을 때, 많이 들어나는 양상이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잦은 범람과 비옥하지 못한 땅을 가지고 있다. 즉, 사람들에게 환경이라는 것은 이겨내야 할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을 모방하고 보여주기 보다는 그 대상을 추상화시킨다. 또한 그들은 현세가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

그에 비해 그리스는 어떤가? 고대 그리스는 자연과 친화적이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그리스 인들에게 자유를 주며 몸을 가꾸게 만들며, 현실을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인들은 내세 지향적이기 보다는 현실을 사랑하며, 현세를 즐기려고 한다. 그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는 성인 남성에 한해서 민주주의였지만, 그 민주주의가 자유를 꿈꿀 수 있게 만들었다. 나는 조르바가 바로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야성적인 조르바 이성을 부수다


백면서생인 나는 조르바를 만나고 그의 사고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조르바는 삶을 살며 역경을 겪으며,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춤을 추고, 산투르를 연주하며 종교, 국가, 결혼과 같은 사회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를 느끼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나는 조르바와 달리 사회 속에서 공부만 하며, 평범한 도시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조르바의 춤과 산투르를 연주하는 모습은 그의 낭만성을 보여준다. 조르바가 지금 현대 사회에 묻는 것은 바로 현대인들은 과거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낭만을 다 어디다 버렸나고 묻는 것이다. 지금 현대인들은 인류 역사상 삶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세대이다. 오늘 하루동안 우리는 하늘을 한번이라도 본적이 있는가? 꽃들이 핀 것을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는가? 지금 지나가는 사람들이 꽃을 관찰하는 사람을 보면 도대체 저 사람은 무엇을 하는지 비웃을지도 모른다. 근대 이성이 놀랍고 신비한 세상을 열긴 했지만 지금 우리는 세상을 돌아보는 자유를 상실하였다. 조르바는 서술자인 '나'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만들어 주었으며, 세상을 즐기는 법을 가르켜 주었다. 그렇다고 조르바가 완전한 진리라는 것은 아니다. 조르바도 인간이기에 여성에 대한 입장같은 것은 부정적이지만 적어도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에게 생각할 꺼리를 준다.


인생을 춤으로 말하는 남자 


가끔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고 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말 한마디로 표현이 된다면 우리 인간이 살아 숨 쉴 이유가 없다. 조르바의 이야기 중 재밌게 읽었던 부분인데, 조르바는 러시아에 노동을 하러 갔다가 한 러시아인과 술친구가 된다. 당연히, 조르바는 러시아어를 거의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조르바는 러시아인과 춤으로 이야기를 하며 의사소통을 한다. 근대 이성에 중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철학이며 그것은 말로 표현되며, 글로 쓰여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언어라는 것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언어로 인생을 표현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정의를 내리니 말이다.

하지만 조르바는 그것을 바로 춤과 산투르로 이야기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의 언어를 초월하여 인간 내부에 있는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조르바는 춤을 춘다. 조르바에게 있어 인생이라는 것은 바로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로 나와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세상의 어떤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그 자유함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고전이 된 것은 비록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세상 속에서 조르바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조르바가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연으로 들어갔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는 위대한 고전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세상 속에서도 자유함을 느껴라


앞서 말했듯이 조르바는 사회라는 체제에 대해 억매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조르바의 위대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해야하는가? 바로 삶을 즐기라는 것이다. 당연히 일도 중요하고 공부도 중요하며 돈도 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인 인생의 목적을 아닐 것이다. 이런 행위들을 하는 것은 모두가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끔은 하늘을 바라볼줄 알아야 하고, 꽃의 향기를 맡으며, 즐거우면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즉, 단 1분이라도 세상의 일을 잊고 다른 곳을 둘러보아야 한다. 가끔은 미술관을 가고, 가끔은 음악회를 가고, 콘서트장에 가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고대 그리스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가끔은 한눈을 팔기도 하며 들판에 앉기도 하며 옆 길로 세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자유를 느낄 수 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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