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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Feb 06. 2022

드라이아이스

 결혼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일은 워낙 미묘해 한낱 말 한마디에도 틀어질 수가 있는데, 그를 방지하기 위해 결혼이란 제도로 우리를 묶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자면 사랑은 우리의 아이스크림케이크이고, 결혼이란 제도는 우리의 드라이아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신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값비싼 반지를 두 개 사 우리의 손가락에 맞추었다. 그리고 영원을 맹세했다. 똑같이 이 반지는 드라이아이스라 말할 수 있겠다. 아아, 사랑의 녹는 점이 매우 낮다라는 것은 20대를 지내며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편지를 그렇게도 많이 당신에게 써서 보낸 것이었다. 그렇게 내 편지들도 드라이아이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거리가 온도를 높였는지, 나의 나쁜 생활 습관이 기온을 상승시켰는지 우리의 사랑은 갈수록 녹아만 갔다. 많은 편지를 썼다. 많은 드라이아이스를 들이 부었다. 녹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 가장 소중한 아이스크림케이크였단 말이다! 하지만 마치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는 인류가 역부족이듯이 우리 사이의 이상고온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왼쪽 손의 네 번째 손가락을 본다. 금과 다이아몬드는 전혀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드라이아이스가 기화해 버린 것이다. 결혼, 결혼. 내가 그토록 당신과 이루고 싶었던 결혼이라는 목표이자 수단은 이제 그 제도의 존재 의의에 대한 회의만 불러일으키는 단어일 뿐이다.


 나는 당신이 볼 수 있는, 아마 볼 수 밖에 없는 곳에 당신을 향한 글을 쓴다. 하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편지가 아니다.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이다. 편지를 드라이아이스라고 일컫었는데, 내가 편지를 쓴다는 것은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맨손으로 집는 것과 같아 깜짝 놀라 자판에서 손을 떼고 쓰라림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 나는 당신에게 편지조차 쓸 수가 없다.


 당신을 잡으려는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랑은 아이스크림케이크였기 때문이다. 녹아 없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얼려봤자 엉망진창의 순간적인 단맛을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런데 이 케이크는 어느새 어는 점도 낮아져 버렸는지 얼리지도 않더라. 지난번에 당신에게 울며 매달릴 때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녹은 아이스크림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듯이 사진과 영상을 보며 행복했던 때를 회상한다. 그런데 그마저도 단맛은 없어지고 시큼한 쉰내만 나니,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사라졌다. 갔다. 없어졌다. 날라가버렸다. 우리의 지난 사랑을 묘사하기에 좋은 단어들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좋은 단어가 있으니, ”녹아버렸다.“이다. 소용없다. 필요 없다. 무용하다. 우리의 지난 노력들을 묘사하기에 좋은 단어들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좋은 단어는 단연코 ”기화했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랑은 아직 나의 클라우드에, 카카오톡 대화방에, 기괴한 형태로 흔적을 자리한다. 우리의 노력은,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편지는 블로그에, 내 책상 서랍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지는 팔아버릴 수도 없이 엄마에게 맡겼다. 노력해도 바꿀 수가 없다면 그것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의의가 없다면 그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깟 편지들은 내가 새로운 사람이 생기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버릴 것이다. 이미 존재의 의의를 상실했고,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랑은 녹아버렸고, 당신과 나는 흘러내려 내 눈가만 적시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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