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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Jan 27. 2022

Damsel in Distress

 담셀인지 댐셀인지 잘모르겠지만 어제 알게된, 나를 사로잡은 문구다."위기의 여자"라는 말인데, 너무 멋지지 않은가. 혹자는 뻔한 클리쉐, 남자 영웅이 곤경에 처한 여인을 구하는 뻔한 스토리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 여성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열성화시키려는 프로파간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맞는 말이다. 나만 해도 영화 "드라이브"의 리뷰를 적을 당시 캐리 멀리건은 항상 수동적인 여성상만 맡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캐리 멀리건은 "서프러제트"로 나에게 보기 좋은 한방을 먹였다!) 하지만 클리쉐는 언제나 매력적일 수 밖에 없으며, 요즘은 상당히 많은 Damsel Hero가 존재하니 논외로 하겠다. 그래서 내 말은, 이 단어의 조합이 너무 멋지다는 것이다. 다시 이해를 돕자면 음운적으로, 표현적으로 너무 멋지다는 것이다. 그런데 Damsel in Distress, 곤경에 처한 여자들은 실제로도 매력적이기 이루말할 수 없으니 신기하지않을 수 없다.


 살면서 많은 곤경에 처한 여자들을 만나봤다. 나란 놈은 곱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너무 곱게 자라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조금 suffer를 겪는 사람들에게 많이 끌렸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긴 연애의 마지막이 의무감으로 점철될 때도 있었고, 더 나아가 죄책감으로 끝마친 적도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연애를 반복하면서 든 생각이 "내가 건강하지 못한 것이구나." 였다. 내 여자친구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고되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항상 버텨내고, 지속하고, 이겨냈다. 하지만 나는 반면 좋은 상황에서도 도망가고, 외면하고, 패배했다. 많은 글을 쓰며, 나는 내가 그들의 행복과 구원의 손길이 되리라 다짐한다 말을 해왔다. 하지만 내가 바라고 감화되었던 것은 그들의 미소 짓는 티 없음이었다. 강인한 영혼, 내가 좋아하는 여성상임에 틀림이 없다.


 또 며칠 전 헤어진 여자친구 얘기가 나와 조금 웃기지만, 그녀는 정말 강인한 영혼이었다. 처한 상황이 불우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본 가장 멋지고 잘 헤쳐나가는, Damsel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패퇴한 내가 Distress를 준다는 생각이 최근 들었다. 그녀도 그렇게 말하기도 하였고, 결국 헤어짐으로써 (왜냐하면 아마 그녀도 마음이 아프겠지. 적어도 당분간은) 그녀 버전의 Damsel in Distress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되니, 한동안 그녀에게 식었던, 아니 감이 안왔던 애정이 다시금 생기를 찾는 것 아닌가. 물론, 난 그녀를 헤어질 때 까지도 사랑해 마지 않았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짤막짤막하게 남기는 글을 보며, 가슴이 아프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미안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빌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말했듯이 계절은 지났다. 계절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만약 전여자친구가 주던 사랑이 여름의 열기라면, (이미 그녀는 지나갔고, 가을은 왔기에)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상'고온 현상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같이 있는 것이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다. 사랑을 속삭일 수가 없다. 감정을 속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녀에게 아무런 약속을 해줄 수가 없다... 그래, 지금은 가을이다. 가끔가다 더위가 찾아오는. 곧 겨울이 올테지. 열기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는... 나는 마치 전기장판 떼듯이 가끔 과거의 사진과 편지를 들춰보며 사랑을 '인공적으로' 느끼겠지.


 Damsel in Distress. 곤경에 처한 여자. 나에게 항상 매력적이었던. 지금의 그녀일지도 모르는.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영원한 나의 사랑. Damsel in Distress. 그녀가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기를 바라며... I'll set you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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