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문장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씩 지침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똑같이 우울하거나 신나거나 뭐 둘 다거나인데 이것을 릴케가 연인에게 편지 쓰듯이 묘사해보고 김훈의 칼소리처럼 휘둘러보다 보니 조금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뜻이다, 뭐 그렇게 대단하게 쓰지도 않으면서 요즘 글쓰기에 지쳤다. 내가 주로 쓰는 장르인 남녀가 만나서 이러쿵 저러쿵도 지겹다.
누군가 내 글에 자신이 관찰자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관찰자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그것은 내가 의도한 바니 기분이 좋았다마는, 내가 명확히 낸 Voice를 그 글의 Voice라고 확신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든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 첫 순위가 목소리 아닌가, 나는 아직 내 목소리를 인정 받지도 못하면서 글 좀 써봤더니 지겹더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이렇게 무식할 수 있단 말인가, 김건모, 이소라가 들으면 배꼽을 잡고 웃을 것이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나만을 나는 바라본다는 점에서 나는 메타-몽인데 그럴듯한 목소리 하나 가지지 못하였다.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는 친구 하나는 확실한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그게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름의 확신에 차서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르었다. 그의 글은 PC 적이고 비판적이며 주장한다. 그의 글을 보고 내 글을 읽으면, “허참, 이 친구(나) 헛물만 삼키는구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는 글들의 이성들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우렁찬 고해는 메아리를 얻지 못하니, 이거 영 아닌 듯 싶은 것이다. 확신이 없는 나 자신, 모순된 내가 부르는 발라드는 때때로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누군가를 점염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휘둘리는지는 이 글을 쓰면서도 나타난다. 음악을 들으며, 나는 거의 억지로 이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이 흐르는데, 마치 나에게 확신이 찾아와 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쉽게 나는 바뀐다. 모든 것은 잘될 것이고, 나쁜 것들은 몰락할 것이며, 우린 그것들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것을 나는 릴케나 김훈의 문체도, 김건모나 이소라의 목소리도 아닌 나만의 목소리로 부르짖을 것이며 내 옆에는 손에 손을 맞잡은 사람들이 무리를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