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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Mar 11. 2019

인생은 상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맞닥드린 이 순간을 ‘잠정적인 기간’이라고 여기는 것만 같다. 사람들은 보통, “학생은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기간이야.” “어쩔 수 없이 대학생은 취직을 준비하는 단계야.” “취직해서 일을 하다 보면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있을거야.” 등등으로 삶을 표현하기 일쑤다. 


 하지만 인생은 기간이 아니다. 위에 문장들을 읽다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듯이 이러한 사고의 귀결은 “인간은 죽기를 기다리는 존재일 뿐이야.”라는 니힐리즘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니힐리즘을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아니, 나는 세상을 비관으로만 보는 시선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 말은 내가 세상 만사에 허무를 들이대는 자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나는 인간은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존재라 생각한다. 논의로 돌아가자면, 나는 인생을 기간의 연속으로 정의하지 않으련다. 인생은 ‘상태의 변화’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상태를 살고 있다. 굳이 제논의 역설을 들이밀지 않아도 우리는 쉽게 기간이 우리 인생의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져 기간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치환한다. 위에서 ‘상태의 변화’라고 적었는데, 내가 말하는 변화는 매일 매시 몇분 몇초 아니 찰나의 순간에도 변하는 그런 성질을 말한다. 나는 철학적 지식이 없어 존재론적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내가 있는 장소, 환경, 시간을 산다. 우리는 그렇게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 아닌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무용하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모든 시간을 잠정적으로 볼 때, 정말로 모든 것이 무용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위에서 보았지 않는가? 우선 우리가 산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태를 파악하고 인정하고 새로운 상태를 ‘모색’하는 것이다. 미래에 있어선,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이라곤, 더듬으며 실마리를 찾고, 포복하며 전진하는 것일 뿐이다.


 나도 사실 내가 지금 처한 순간들을 매우 잠정적 기간이라 인식했다. 나는 서른살임에도 아직 학생이다. 나에게는 취직을 더이상 미룰 수 없고 해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물론 이는 건강한 압박감일 것이다. 또한,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말그대로, 여자친구가 없다. 사람들은 보통 다 연애 상태에 놓이기 좋아한다고 봐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결혼을 일찍 하고 싶은 나는 어서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압박감 또한 존재한다. 이를 위해 나는 우선 졸업을 먼저 해야한다고 내 순간들을 졸업을 위한 노력의 기간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될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나는 지금 4학년 1학기이다. 졸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내 4학년 1학기는 졸업을 위한 디딤발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서른살 초반이란 돌은 아직도 소중하다. 학교를 충실히 다니고, 수업을 듣고, 내게 익숙하지 않은 지하철을 열심히 타며 책을 읽는 나의 시간들 역시 소중하다. 나는 이 모든 나의 순간들을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기간으로 정의하지 않으려한다. 나는 지금 이 상태를 소중히 하고 그것을 수단으로 삼지 않으며, 새로움를 모색하고 옳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길을 택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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