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워홀 이야기
#6 내 인생 최악의 고생 썰 - 2 (feat. 황무지에서의 조난)
by
욕심많은민지
Jul 6. 2020
첫 목적지에서 보기 좋게 허탕을 친 우리.
다음 목적지에서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거의 열흘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
목화 공장들을 찾아다녔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목화 공장에서도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휴가기간이라 관리자가 없었던 공장이 많았던 것도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였지만
우리가 썼던 이력서로는 박터지는 경쟁률을 뚫을 수 없었던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더군다나 관련 자격증도, 영어도 부족했으니 어쩌면 안 되는 게 당연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목화 공장을 돌며 우리가 얻게 됐던 건 일자리가 아니라 다름 아닌 추억이었다.
15불짜리 텐트. 해뜨기 시작하면 40도, 밤엔 서늘한 날씨.. 고생 많았다.
1불짜리 인스턴트 밥으로 때우던 시절
팔자 좋아 보이죠? 현실은 인터넷 안됨, 전자기기 충전 안됨, 더워 죽겠는데 갈 데 없음..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곳, 무료캠팽장에서 시간을 때우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하하
차 세우는 곳이 곧 우리의 식당, 우리의 집터
매일같이 무료 캠핑장을 전전하며 15불짜리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일도 허다했고,
40도에 육박하는 찜통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이동을 하는 것도 일상다반사였다.
밥이라고 제대로 먹었겠는가?
우리의 주식은 1불짜리 볶음밥이었고 어쩌다 소고기라도 한 덩어리 샀다 치면
그 날은 반강제 1일 1식을 해야 했다.
목화 공장순회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은 인터넷도 안 터지는 비포장 도로에서 길을 잃었던 일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허탕을 치고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다 보니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닌 이상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라
출발지에서 설정한 내비게이션 경로를 벗어나면 인터넷이 터질 때까지 새로운 경로 안내가 되질 않는데
그 날따라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길 이외에도 목적지로 향하는 이정표가 붙은 샛길이 너무나도 많았다.
평소였다면 네비의 안내에 따라갔을 텐데 그날따라 뭣에 홀린 건지 이정표 붙은 길로 가보자며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라던 곳엔 가뭄으로 땅이 말라 바닥이 쩍쩍 갈라진 허허벌판뿐이었다.
(주변에 저수지 터가 있었던 걸로 봐선 농작물을 기르던 농장으로 예측된다.)
처음에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되돌아갔어야 했는데.. 정말 도깨비에 홀리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GPS는 터지지 않지만 우리가 위치한 좌표 근처로 뚫린 도로가 내비게이션 상에 표시되었고
그 길을 따라 나가다 보면 빠져나갈 길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내비게이션에 표시되는 도로를
지도책 읽고 따라가듯이 그렇게 달려 나갔다.
하지만 길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수렁에 빠졌다.
한 15분 정도 출구를 찾아 달렸을까? 이 곳엔 출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온 길 그대로 되돌아 나가려고 시도했지만 온 사방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라 방향감을 잃은 지 오래였기 때문에 돌아온 길을 찾으려고 하면 애쓸수록 출구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름은 점점 떨어져 가고, 그늘도 없는 땡볕 아래 한참을 달린 자동차는 점점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몇 가지 경고등이 뜨기 시작했다.
순간 '죽음'이라는 것이 눈 앞에 스쳤다.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니야?"
그곳은 기름이 없어 빠져나가질 못한다거나,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다거나 야밤에 야생동물에게 변을 당한다 해도 우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이었기에 너무도 무서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혹시 몰라 차에 구비해 둔 기름 한 통이 있었다는 것.
그 허허벌판을 거의 한 시간
정도 헤맸을 즈음 나는 울음이 터졌다.
좋은 직장을 찾고 싶었을 뿐인데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서 조난당해 죽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졌다. 이정표를 따라 샛길로 들어가자던 남편도 원망스러웠다.
"네비 따라갔으면 이럴 일 없었잖아!!! 자기 때문이야 엉엉엉.."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길을 잃어 심각했던 상황에 내가 쏘아 올린 작은 말 한마디는 싸움으로 번졌다.
"네가 옆에서 길 안내했잖아!"
결국 서로 합심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고개를 돌리고 의미 없이 직진만 한참을 했다.
그렇게 말 한마디 않은 채 직진만 하기를 몇 분..
우리가 서로 화해하고 다시 힘을 합쳐 길을 찾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매개체가 나타났다.
그 매개체는 다름 아닌 에뮤!
에뮤는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 동물인데 그 희귀한 동물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난 거다!
"어.. 어.. 어??? 에뮤!!! 에뮤!!!"
여러분 이거 실화입니다. 에뮤
길을 잃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신이 나서 에뮤를 따라 함께 달렸다.
백색소음만이 가득했던 차 안은 순식간에 기분 좋은 에너지로 가득해졌고 냉랭했던 분위기도 곧 풀리기 시작했다. 에뮤뿐만이 아니었다. 에뮤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 수십 마리의 캥거루가 나타났다.
사실 호주에서 야간 운전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게 되는 것이 캥거루라 그리 신기한 동물은 아니지만 저 당시만 해도 캥거루를 제대로 본 적은 몇 번 없었고 더군다나 수십 마리의 캥거루가 떼로 모여있는 건 쉽게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기에 너무 신이 났다.
에뮤, 캥거루를 만나게 되면서 서로 미안하다 말은 안 했지만 암묵적 화해도 하게 됐다.
서로 마주 보고 싱긋 웃는 것, 그걸로 서운했던 감정이 다 씻겨진 거다.
잠시 우리의 상황을 망각하고 동물들을 따라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우리 눈 앞에 작은 숲이 보였다.
고속도로 양 옆으로 농장, 숲, 언덕배기가 있는 호주의 특성상 숲을 지나치면 도로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있던 황무지와 숲 사이에는 철조망이 설치되어있어 바로 숲을 가로지를 수 없었고
아쉬운 대로 숲을 따라 입구가 나올 때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아마 우리 말고도 몇몇의 차가 이 곳에서 길을 잃었었는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바퀴 자국이 꽤 선명히 남아 았었다.
결국 황무지에서 헤맨 지 몇 시간 만에 우리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눈 앞에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이 보이자마자
"우리 이제 살았다!"
라며 기뻐했었던 게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지금이야 "그 땐 그랬지"라며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당시엔 정말이지 나에게 있어 최악의 사건이었던 황무지 조난사건. 인생을 살면서 다시는 겪지 못할 웃픈 스토리다.
어쨌든 죽을고 비 넘겨 도착했던 목화 공장에서 역시도 우리는 보기 좋게 빠꾸(?)를 당했고.
결국 목화 공장에서 일 한번 해보겠다고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본래의 목적은 잃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추억만을 갖게 됐다. 더 이상 목화 공장 순회를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열흘만에 GG를 쳤고 결국 시드니로 목적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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