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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Oct 07. 2024

못 말리는 아버지의 마늘심기

마늘 심으러 사 남매 출동



모든 농사에는 때가 있다는 사실만 안다. 농부의 딸로 살아온 세월이 그렇게 길어도 여전히 농사일에는 아는 지식이 없는 것이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였다. 그렇게 사계절에 불려 다녀도 농사 일머리와 순서를 모른다는 것은 정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더라면 조금은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수동적으로 부름 받아서 해왔기 때문에 긴 세월을 반복했어도 우리는 어떻게 마늘을 심는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저 마늘을 땅속에 한쪽씩 눌러 심는 일밖에. 비닐씌우는 게 먼저인지 마늘 심는 게  먼저인지 조차도 몰랐다.



어디 가서 부모님께서 평생을 농사 지셨다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농사짓는 일에 관심이 없다. 다만 아는 것은 모든 작물들이 사람과 같아서 관심을 가져다주는 만큼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신혼 초에 봄이면 모내기철이라고 부름 받고 달려가서 이앙기 심지 못하던 곳에 모심던 옛날이 좋았다. 그 당시만 해도 벌써 20년이 지난 일이니까 말이다. 마치 모내기 날이 집안 회식 같았다. 1박 2일을 꼭 했어야 했기 때문일까.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훨씬 많았던 아버지는 벼농사를 어머어마하게 지으셨다. 벼를 수매할 정도로 방대했고 모내기와 벼 타작에 필요한 콤바인은 필수품처럼 집에는 없는 농기계가 없듯이 천국이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벼농사를 짓는 일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이는 노동에 대한 대가에 비해서 어림없다는 이유로 밭농사로 특수작물로 갈아타셨다.





사실 아버지가 농사를 많이 지실 때 우리 가족은 결혼했어도 쌀걱정 없이 갖다가 먹었다. 대신 아버지가 벼농사를 안 하시면서 쌀을 마트에서 사 먹어야 하는 순간에 얼마나 아쉬움이 크던지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요즘도 우리 사 남매는 종종 얘기를 꺼낸다.


아버지, 어머니가 해주시는 농작물들은 모두 공짜인 거처럼 편하게 가져다 먹었기 때문이다. 마늘도 마찬가지였다. 일 년에 몇 번만 아버지가 오라고 할 때 달려와서 농사일을 거들어주면 마늘에 마늘종에 마늘을 까고 갈아서 냉동해서 주셨기 때문이다. 재작년부터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고비인 듯 마늘도 가져가서 까먹으라면서 하우스에 걸린 채 보따리에 넣어주신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농사일에 손을 놓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당신 몸을 챙기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거라도 안 하면 너무 심심하고 하루가 지루하다는 말씀에 말릴 형편도 아니다. 재미 삼아하는 농사일은 없는 거 같다. 왜냐면 시기를 놓치면 제대로 된 작물도 나오지 않거니와 모종값도 못 뽑는다며 성화셨다. 몇 번의 건강에 신호가 와서 농사를 망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버지는 땅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자식들이 편하게 살기를 바란다면서 농사 고 땅 팔아가면서 공부시키셔서 다시는 농사일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해놓고 당신들이 아쉬우니 큰 오빠와 작은 오빠를 부르고, 언니를 부르고, 나를 부른다. 사 남매만 부르면 그에 동반된 가족들이 덤으로 딸려와서 순식간에 농사일을 마무리 짓는다. 사실 정성을 다해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소풍처럼 놀러 와서 고기 구워 먹을 상상을 하면서 빨리 닥친 농사일을 해치우는 느낌이었다.  마늘을 심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마늘 밭에 로터리를 치는 담당은 원래 작은 오빠였는데 회사에 일이 많다고 해서 그 일이 큰 오빠에게 넘겨졌다.



쉰 중반에 든 큰 오빠는 생전 처음으로 경운기를 몰아본다며 어찌나 걱정을 태산같이 했는지 결국 무릎에 보호대를 찬 아버지가 경운기로 로터리를 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누가 더 건강한지 눈에 딱 보여도 경험이 없는 큰 오빠가 다칠까 봐 염려되었기에 아버지는 어설프다며 자신이 손수 익숙한 경운기를 운전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눈에 나려면 얼마나 잘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평생 농사만 지셨기에 우리가 하는 서툰 손놀림들이 아버지 눈에는 성에 안 차시는지 계속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마늘을 심기 전에 비닐하우스를 치기 전부터 땅을 편평하게 고르는 일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비닐하우스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마늘을 너무 깊게 묻으면 안 돼?"

"다시는 마늘농사 안 지을 거야?"

"대충 하면 안 돼? 정성이 들어가야 해"



아버지는 쉴 틈 없이 하소연하셨지만 어느 누구도 반항하는 사람 없이 자기 앞에 놓인 일들에만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대신 내년 봄에 마늘이 올라오지 않으면 불호령이 우리에게 떨어질 텐데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작은 텃밭 같은 마늘밭에 여러 명이 달려들어서 마늘을 심으니 순식간에 끝났다. 아버지는 고랑을 다독이면서 평생 쌓은 노하우를 보여주듯이 일렬종대로 마늘밭의 고랑이 단정해 보였다.



농사짓는 데에도 성격이 나온다고 대충 하는 법이 없으시고 똑 떨어지게 마무리를 짓고서야 마늘밭에서 돌아오셨다. 나는 점심밥을 준비하기 위해서 마무리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내년에 얼마나 심은 마늘이 올라올지 기다릴 것이다.



아버지는 어느 구역에 누가 심었는지 다 알고 있다면서 으름장을 놓으셨지만 우리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한바탕 소리 내어 웃었다. 농사일이 자식 키우는 것만큼 손이 많이 가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요즘은 엄마와 단둘이 의지하고 지내신다. 대신 텃밭 농사일에 재미를 붙이신 거 같았다. 젊을 때의 농사일은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몸이 부서져라 하셨다면 지금은 관점이 달라진 농사일처럼 느껴진다.


아버지의 텃밭에는 없는 것이 없다. 배추, 콩, 가지, 깨, 무, 고구마, 고추, 오이, 부추 등등 없는 것 없이 심심풀이로 하신다. 모종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풀도 수시로 매주어야 하고, 농약도 한다지만 아무래도 아버지는 농약도 안 하시고 무공해처럼 농사를 지으셨다.


아버지가 최대한 하고 싶은 일을 하실 수 있게 지켜보고 거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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