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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Nov 17. 2023

나의 수능 시험날 회고록(27년 전)

수능날에 대한 회상




수능날  아침은 언제나 추웠다. 내 마음을 알아주듯 얼음처럼 단단한 내 마음은 웬만해서는 잘 녹지 않았다. 이제는 옛날처럼 수능 한파도 사라졌고 추억 속에서 나마 나의 수능 보던 날을 되새기는 흐릿한 기억뿐이다. 시험 당일, 얼마나 추운지 입에서 말할 때마다 하얗게 입김이 새어 나왔다. 내복을 껴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까지 끼고 무장한 모습으로 새벽 첫 차를 타고 수능 시험장으로 갔다.

하필이면 나의 시험장은 산 날망의 청*여고였다.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가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씩씩하게 정문을 거쳐 수험번호가 적힌 교실로 들어갔다. 그때 당시 나는 흔히 말하는 N수생이었다.



다들 부모님에게 워쌓여 산길처럼 높은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나만 세상에 혼자였다. 우리 부모님은 막내딸이라는 이유로 그저 뒷짐 지고 물 건너 보듯이 나를 방목하셨고 제 때에 밥만 주면서 키우신 것 같았다. 그 시대에는 딸이라는 이유로 나처럼 대우받으며 자라는 게 흠은 아니었다. 너도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아버지가 한없이 밉고 딸이라 서러웠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이글이글 들끓었고 불만으로 가득 찼다. 아마도 노트에 쓰라면 3박 4일이 걸릴 정도다. 따뜻한 밥도 국도 없었다. 둘러보니 보온병에 따뜻한 물과 국을 싸 왔는데 내 도시락은 초라했다.

엄마가 있어도 아빠가 무서워 차가운 밥을 싸줄 수밖에 없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저 두려움의 대상이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무도 내게 관심도 없던 수능 보는 날이었다. 아무도 축복하고 응원하지 않는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해가 떨어지고 시험이 끝난 오후 5시는 왜 그렇게 춥고 어둠 컴컴한지, 가파르고 낯선 골목길을 무슨 정신으로 내려왔는지 지금 생각만 해도 설움이 복받쳐 올라온다.







나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의 사 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나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분에게 대학은 말도 안 되는 허상이었다. 대신 오빠 둘에게는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언니와 나는 '중간만 하면 그만이지'라며 상고 나와서 돈 좀 벌다가 좋은 집안 중매로 결혼하면 끝이었다. 그랬던 나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반항한 것이 취업 나간 은행에 사표를 던지고 재수학원에 등록한 것이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후폭풍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뻤다.


그 후로 집에서 쫓겨나서 언니의 자취방에 머무르면서 재수학원에서 살았다. 당연히 상고에서 배울 수 없었던 기초 과목을 학원에서 배우고 채우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입이 돌아가도록 공부하면서 깨달은 점은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거였다.




영양실조가 걸리고 구안와사가 와서 입이 돌아갔어도 학원에 다니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대학에 합격했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큰 산은 내게 가슴에 못을 박았다. 대학에  보낼 수 없다며 입학금을 줄 수 없다고 선언하셨다. 이미 은행 다니며 모았던 돈은 재수학원에 소진한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일하러 가야 했다. 어떻게 저렇게 하고도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냐 하겠지만 아버지는 지금도 '미안하다'. '잘못했다'라는  한마디의 사과도 없으셨다.



내 문제의 시작은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부터 어긋났다. 나는 인문계를 입학해 대학에 가고 싶어 했고 아버지는 상업고등학교를 입학해 취업 나가서 돈 버는 것이었다. 내가 울고 불고 해서 아버지는 학교까지 찾아와서 내 원서를 아버지 맘대로 상고진학으로 바꿨고 아주 떳떳해하셨다.








수능날을 나는 아주 싫어한다. 내가 겪었던 잘못 끼운 단추를 다시 풀어서 바르게 채우고 싶은 마음일까?

어느덧 세월이 흘렀다. 지인들의 수능일,  조카의 수능일, 친구의 아들, 딸의 수능 선물을 챙겨가면서 언제 가는 우리 아들, 딸도 수능을 보겠지? 라며  느긋하게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아버지가 내게 했던 것처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히려 과잉보호로 아이를 망칠까 걱정되는 부모님들이 많지만 나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며 물어볼 것이다.


대학이 필수가 아닌 세상, 네가 원하면 갈 수도 있지만 뚜렷한 목표가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선택한다면 반대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해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도 병이라고 했다. 스스로 자립하려고 하지 않고 공부 중이라고 하면 장차 큰 일을 할 사람이라며 한없이 무한 지원해 주는 부모님도 아이를 망치는 길이라 생각한다.



4년 뒤의 아들이 수능인데 나는 아들을 응원할 것이다. 수능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당부할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수없이 나를 평가해야 하는 시험대에 놓이게 되는데 그때마다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면 언제난 길은 열려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할 것이다. 언제는 기회는 나의 것이라고 선택권이 내게 있다고 힘을 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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