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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비 Oct 13. 2021

비움의 미학

맥시멀리스트에서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나고자 애쓰는 중



비가 내리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어느 , 드레스룸 가장   구석 옷장문을 열었다.

묵은 옷이 내뿜는 퀘퀘한 먼지와 섬유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추워지는 계절마다  꺼내던 톡톡한 옷들을 꺼내고 짧고 얇은 옷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편에 자리 잡은 짧은 치마들과 원피스들, 블라우스를 물끄러미 보았다. 아이를 낳기 , 그러니까 마르고 어리며 예뻤을  입었던 비즈니스 캐주얼  정장들을 말이다. 몸에는 (물론) 진작부터 맞질 않았다. 다만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했다. 커리어에 대한 미련, 살 빼면 입을  있을 텐데 하는 헛된(...) 미련, 젊고 생기 있던 과거에 대한 미련 .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언젠가는 입어야지 하는 미련 아닌 미련과 저런  입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하는 향수 아닌 향수가 낡은 옷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쓸모도 없이 미련만 가득한 찌꺼기가 된 것 마냥 불쾌했다. 채우고 싶은 건 마음이었지 물건이나 그걸로 채운 공간이 아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비우고 싶어졌다. 커다란 비닐을 꺼내고 차곡차곡 옷을 쌓았다. 순식간에 가득 차는 비닐을 보며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가득 채웠던 것들이 후회가 되진 않는다.

언젠가는 내 마음을 위로해줬던 것들이니까. 물질에서 받는 위로란 때로는 부질없는 것 같지만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만지고 느끼고 볼 수 있는 '형체화'된 걸 소유한다는 행위 자체가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그것은 옷이기도 했고 책이나 그림, 음반, 레고나 피규어, 인형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나를 위로해준 것이지만 지금은 그때를 되새길 추억으로밖에 취급되지 않는다면 처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보다 나는 성장했고 굳이 물건이 아니더라도 추상적인 것들 그 자체로 사랑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물론 아직도 사랑하며 소유 그 자체가 행복인 것들은 여전히 내 공간을 기꺼이 허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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