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곤노곤. 따뜻한 찜질팩을 허리에 대고 누워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으면 꼭 마사지샵에 있는 듯 기분이 좋다. 뻐근한 허리의 긴장을 녹여주는 뜨끈한 찜질팩이며 피부 안쪽을 간질이는 듯 찌릿찌릿한 전기충격 치료까지. 받고 있으면 절로 눈이 감기고 편안해진다. 돈을 더 내고 한 번 더 받을 수 있다고 하면 정말 그렇게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오늘도 따뜻한 찜질팩에 누워 수면과 비수면을 넘나 들고 있을 때였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와 5센티가량 떨어진 옆 침대가 갑자기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할머니 한 분이 치료를 받으러 오신 모양이었다. 침대마다 커튼이 둘러져 있어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침대가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탓에 그녀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와는 달리 다리를 다쳐 오셨다는 할머니. 간호사가 할머니의 찜질팩을 가지고 온 순간부터 이들의 소소한 담소가 시작되었다.
주로 말하는 쪽은 98% 할머니셨다. 다리가 어떻게 아프기 시작했는지부터 얼마나 오래 병을 앓고 계신지. 그리고 다리 수술을 받고 오히려 병이 더 악화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얘기는 병에 대한 주제에서 어느새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할머니 자식은 무엇을 하며, 주변 친구분들 이야기까지 주제와 인물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길어졌다.
사실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에서 환자와 간호사가 오래 마주할 일이 없었다. 보통 간호사는 찜질팩을 가져다준 뒤 타이머를 설정해 주곤 자리를 떴다. 예약된 시간이 끝나 알림이 울리면 간호사는 찜질팩을 전기 초음파로 바꾸어주었다. 또다시 타이머가 맞춰지고 알림이 울릴 때까지 치료를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간호사와 마주하는 순간은 고작 해서 1분 남짓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더욱 흥미로웠던 것이다. 내가 갔던 병원은 이 주변에서도 유명한 정형외과였기에 환자가 아주 많았다. 더구나 내가 갔던 날은 토요일이여서 평소보다 사람이 배로 많았고 의사는 의사대로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딱 봐도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간호사가 할머니의 계속되는 만담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끊어낼까?'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허리이야기에 이어 가족 얘기까지 주제가 넘어갈 때쯤 나는 간호사가 이야기를 끊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억지로 끊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중간중간에 추임새를 넣어가며 친근한 딸처럼 호응해 주었다.
"아우 너무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할머님 연세에 이렇게 정정하게 돌아다니시는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하신 거예요." 라며 우울해하는 할머니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마지막 내용이 어떻게 종료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확실한 건 대화를 끊어낸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주 자연스럽고도 다정하게. 그렇게 그녀는 할머니와의 대화를 따뜻하게 마무리했다.
누군가의 대화를 끝까지 경청해 주는 것. 거기에 적절한 리액션으로 흥을 돋우고 긍정의 화답까지 하는 것. 자칫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대화의 기술이다. 특히 내 일이 바쁘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발휘되기 어렵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재촉하지 않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응대하는 간호사를 보고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는 평소 저런 대화 습관을 가지고 있던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