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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사이 벌어진 격차

자가 VS 무주택자

by 민트코알라

기분이 약간 우울하다.

오랜만에 친한 언니를 만나고 와서의 감정이다.

결혼하고 육아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거의 3년 만에 만난 자리였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우리는 서로 업데이트할 소식들이 많았다.


먼저 언니는 결혼 후 달라진 것이 많았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으면서 이사를 두 번이나 했다.

양재에서 있다가 요즘 신혼부부들에게 인기인 서대문구 쪽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전세인가 했더니 자가라고 했다.

준신축에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 역에서도 가까운 역세권에 초품아다.

가격 역시 10억을 넘겼다.

갭투자를 해서 사놨고, 언니네는 현재 옆 단지에서 전세로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전세만 끝나면 들어가 살 계획이라고.


운전을 하게 된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였다.

오랫동안 장롱면허였던 언니는 아이 등원 때문에 큰 맘먹고 운전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결혼, 육아, 운전에 투자까지.

3년 동안 언니는 크고 굵직굵직한 선택을 많이 했다.


서로 관심사가 비슷한 만큼 우리의 이야기는 거의 부동산 위주로 흘러갔다.

언니는 결혼을 하고부터 일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럼에도 외벌이로부터 오는 눈치는 아예 없는 것 같았다.

언니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 여유로워서 그런가했더니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당당함의 원천은 언니의 투자 수완에 덕분이었다.

일단, 주식이 첫 번째였다.

결혼하기 전부터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미혼일 당시, 일하면서 틈틈이 몰래몰래 주식창을 보느라 일에 집중을 못하겠다던 얘기를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일이 체질에 안 맞고 본인은 투자가 재밌다고 하더니 결혼하고부터는 그 재밌는 투자를 거의 본업처럼 하고 있었다.


굴리는 액수도 훨씬 커졌다.

몇 년 전까진 몇 천만 원 수준이었던 투자금이 억 단위를 넘어선 듯했다.

주식 투자도 꽤 괜찮게 흘러가고 있어 어깨에 뽕이 들어가던 차에 '큰 한 방'을 해서 기가 확 살았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부동산이었다.


매수한 집은 사실 언니가 주도적으로 밀어붙여 사게 된 것이라고 했다.

구매한 시기는 약 2년 전.

한창 부동산 상승장이 끝나고 막 하락기에 들어선 시기였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마음에 들어 전세로 들어와 살고 있다가 매수 기회를 잡은 것이다.

네이버 부동산을 주기적으로 들락거리며 매물을 살폈고, 주변 부동산 사장님과도 친분을 쌓아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바로 연락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놨었다고.

마침 너무 괜찮은 매물이 나왔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다급한 연락에 바로 달려갔는데, 이보다 더 저렴할 수는 없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언니는 즉시 남편 설득에 들어갔다.

언니의 조급함과 달리 남편은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니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잘못되면 내가 책임질게. 떨어진 금액만큼 나가서 일을 하던가 어떻게든 메울게"라고 설득하며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그렇게 집을 사게 됐고, 그 집이 현재 3억 가까이 오른 것이다.


3억...

실제로 네이버 실거래창을 보니 언니가 매수한 가격이 최근 3년 중 가장 최저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니는 이 점에 무척이나 뿌듯해했고, 남편도 언니의 재테크 내공을 높이 사고 있었다.


투자에 성공해서일까.

대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언니의 자신감은 엄청났다.

그 자신감이 얘기 중간중간 내 마음에 작은 스크래치를 낸 건 언니가 나에게 조언을 하면서부터였다.


부끄럽지만 나는 30대 중반임에도 모은 돈이 많지 않은 편이다.

현재 시드만으로 수도권에 내 집 장만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는 상태라 오직 내가 가진 현금과 대출이 끌어올 수 있는 전부다.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매물의 가격이 6억 밑을 맴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니는 이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같았다.

6억 정도면 수도권에서 많은 수요자들이 관심을 갖는 집을 사기 어렵다며.

더 빚을 내던가 전세금이 많이 낀 집을 갭투자로 사는 방법을 추천했다.


이른바 세 낀 집을 사는 갭투자. 나도 생각을 안 해 본 것이 아니다.

최근 대출 억제 정책으로 대출이며 갭투자가 힘들어진 게 사실이긴 하지만 세 낀 매물을 못 사는 건 아니다.

내 분수에 넘게 세 낀 집이라도, 전세가율이 높은 집을 찾아 매수를 한다면 살 수야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여기에는 상황에 따라 큰 리스크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세입자가 나가겠다는데 내가 보증금을 마련해 줄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이번 정부 들어 전세퇴거자금대출도 규제가 엄격해지고 있고, 내 연봉으로 끌어올 수 있는 대출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처지에 무리하게 갭투자를 하는 게 맞는 걸까?


언니는 다음 세입자를 구해 보증금을 돌려주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냐는 식으로 말했다.

실제로 전세퇴거자금대출을 받는 집주인도 없다며...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어쨌거나 무리한 투자로 가슴 졸이는 게 과연 맞는가, 괜찮은가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언니는 이런 나를 답답해했다.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지나치게 소심하고 고지식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투자를 잘해 시세차익을 꽤나 남겨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나를 답답하게 생각한다.

이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레버리지다.

레버리지를 이용해 무리해서라도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최상의 조건을 가진 집을 사야 한다고 입모아 이야기한다.

설사 그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대출 수준을 조금 넘을지라도 말이다.

자꾸 얘기해도 계속 고민하는 나를 답답해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을 몇 년 겪다 보니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드는 한 편 이런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다.

내 수준에 맞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투자하려는 기준이 그렇게도 답답한 것인가.

한심하게 여겨질 정도인가.


30대가 되고 보니 주변 또래들과 경제력으로 성적이 매겨지는 느낌이다.

누가 집을 장만했고, 누가 아직 전세인가.

얼마나 시세차익을 얻었고 어느 동네에 사는가 등으로 말이다.


그 점에 있어 내가 들고 있는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오늘 그 초라한 성적표를 확인해서 마음이 이렇게나 씁쓸한 건가.

언니가 3년 동안 수 억 원의 시세차익을 보는 동안 나는 그냥 고여있던 것처럼 느껴서인가.

헛헛한 마음에 라면을 2개나 끓여 먹었지만, 여전히 공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사진 출처 : Photo by Chang-m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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