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어 꿈을 발견한 이야기 / 다시 피아노를 만나게 된 계기
어릴 적 서른 살이 되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학교에 나보다 10학번이상은차이나는 복학생 선배. 당시에는 30대가 되어 학교 다니는 분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속 거리가 생겨났다.
아마도 30대가 되면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내 나이는 눈 깜짝할 사이 서른이 되었다.
어릴 때 나에게 서른 살은 '진짜 어른'이니까 그때가 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고 싶었던 꿈도 이루면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사이의 갭은 존재한다고 말이 있지 않은가.
막상 1월 1일이 되고 30살이 되니 결혼은커녕 30살 되자마자 남자친구랑 헤어졌고, 하고 싶은 꿈은커녕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퇴근 후 오늘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 그날의 만족만을 구하며 지내는 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몸이 몹시 아팠다. 처음에는 시간 지나면 괜찮겠지, 병원 가서 약을 먹었는데도 어째 심상치가 않다.
날이 갈수록 갈비뼈 밑이 불편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앉아서 숨 쉴 때마다 칼이 쑤시는 것처럼 아파 견디다 못해 출근하자마자 응급실에 실려갔다. 급하게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갈비뼈에 염증으로 물이 찼단다. 그런데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CT를 바로 찍어봐야 할 것 같다고 하여 찍어봤더니 검사 결과는 '결핵'이란다.
결핵균이 갈비뼈 밑에 침투해 그 사이로 늑막염이 발생해 물이 찬 것이 원인이었다.
아직도 결핵환자가 있어? 했던 적이 있는데, 그렇게 서른 살의 나는 결핵환자로 격리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격리병동은 창문도 없고, 밥도 배식받은 것만 먹을 수 있기에 격리된 공간 이외의 병원 안 다른 곳으로 이동조차 일절금지이다. 그렇게 나는 격리되어 나오지도 못하고, 그 안에서 몇 날며칠을 치료하며 보내야 했다.
가만히 못 있는 나의 성격상 결핵치료 이상으로 격리병동 생활이 더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치료기간이 2달 가까이 길어지면서 찬란하게 빛날 것만 같던 서른 살의 나의 모습은 병원 안에서 가장 어두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가장 고통스럽고 어두웠던 서른 살의 봄, 병원에서 나는 다시 꿈을 찾았다.
밖에서는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웠는데, 병실에서는 시간이 어찌나 안 가던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유튜브를 열어 우연하게 듣게 된 '손열음의 차이코프스키 합주'를 듣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역시나 시작부터 트럼펫이 곡을 알리는 신호로 웅장하게 시작되었다. 바로 이것이야!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렇게 클래식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손열음에 관련된 피아노 유튜브는 빠짐없이 들으면서 피아노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그렇게 퇴원하면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퇴원 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그중 한 가지는 바로 '다시, 피아노 배우기'였다.
어릴 적으로 다시 돌아가서 내가 피아노를 처음 만난 것은 유치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치원 하원 후 필수코스처럼 자연스럽게 피아노 학원을 갔었는데, 좁은 피아노 방 안에서 연습하는 것이 어린 나의 적성과 잘 맞았던 것 같다.
지금도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해봤다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쉽게 싫증을 내는 성격인데, 어렸을 때는 오죽했을까.
그런 내가 피아노 치기 싫어서 투정 부리는 친구들과 달리 피아노 방 안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며 즐거워하고
콩쿠르까지 나가서 상도 탔던 것은 필히 피아노를 좋아했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할아버지는 그런 내가 이뻤는지 어린이날 선물로 거금을 들여 피아노를 사주셨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기뻤던지 "오늘은 피아노 옆에서 잘 꺼야" 하며 엄마한테 이야기했던 기억들이 올라온다.
그렇게 피아노와 즐거운 한 때를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보냈다. 그리고 당시 만났던 피아노 학원 원장님마다 예원준비하면 어떻겠니, 예고 지금부터 하면 충분할 거야 이 말을 들어서인지 당연히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 되겠구나 부모님과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와 함께 피아노에 대한 권태기도 같이 왔나 보다.
권태기가 꽤나 심하게 왔는지, 엄마랑 한바탕 싸우면서 피아노 다시는 안칠 거라고 할아버지가 사주신 피아노도 갔다가 팔아버리라고 보기도 싫다고 못된 말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땐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죽 싫었으면 당시 다이어리에도 그렇게 적어놨을까.
그리고 그렇게 작별을 고했던 피아노를 15년 만에 재회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피아노는 나에게 더 애틋하고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은 다시 만난 연인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다시 피아노를 배우 되면서 만난 레슨선생님과 처음 레슨 받던 그 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베토벤 1번 소나타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
내가 이 자리에 다시 앉을 줄이야!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묘한 감동이 밀려들어왔다.
마치 잃어버린 꿈들을 찾아 다시 걸어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오랜만에 쳐서 기초가 안되어있어 소리도 쾅쾅 음악적인 부분들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때의 묘한 감동은 계속 못 잊을 것 같다.
서른 살 가을, 나는 15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