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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월터 랭글리

슬픔은 끝이 없고_인간의 보편적인 고통과 슬픔

by 민트아트

이번 주 그림입니다.


그림을 천천히 감상해 주세요.

슬픔이 느껴지신다면 함께 충분히 슬퍼하셔도 좋습니다.



그림을 관찰하며 떠오르는 단어가 있나요?


이 그림의 제목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그림을 보며 떠오르는 질문이 있나요?


떠오른 질문 중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고 적어보세요.




그림을 보며 든 생각


해 질 무 바닷가 마을. 한 여인이 울고 있다. 조금씩 흘리던 눈물이 절정에 이르러 결국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말았다. 그 옆에서 뜨개질을 멈추고 여인의 등을 토닥이고 있는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우리의 감정은 이입된다. 등대는 불을 밝히고 노을이 바닷물에 비치는 너무나 평화로운 어촌 풍경이지만 주인공의 마음은 다시 찾아오는 밤이 원망스러운 듯 편안치 못하다. 고요한 풍경과 대비되어 여인의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 그림을 보다가 무덤 앞에서 알몸으로 엎드려 울던 조지 클로젠의 <울고 있는 젊은이>가 생각나는 것은 우연은 아니 일터. 두 그림에서 같은 슬픔의 무게를 느낀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두 그림의 차이점은 옷의 유무가 아니라 슬픔의 순간에 누군가 곁에 있느냐 없느냐 이지 않을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라는 흔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슬픔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홀로 슬퍼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조금은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위의 그림은 여인의 슬픔이 할머니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에 인생을 더 산 어른의 지혜를 엿 볼 수 있다. 더 많은 슬픔과 상실을 경험했을 인생 선배가 자신의 슬픔은 감내하며 딸 혹은 며느리의 슬픔까지 감싸안아 주는 모습을 통해 우리도 함께 위로받는다.

조지 클로젠, <울고 있는 젊은이>


그림을 보며 느껴진 단어

슬픔, 위로, 눈물, 절망, 토닥토닥, 어스름, 바닷가, 고된 삶, 고요, 상실, 애도


내가 지은 제목

슬픔이 가득한 바닷가의 저녁


떠오르는 질문

- 지금은 아침일까? 저녁일까?

- 여인은 왜 울고 있을까?

- 할머니와 여인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 할머니가 바닷가에서 뜨개질하는 동안 여인은 계속 울었던 것일까?

- 이 여인은 어부의 아내일까?

- 어부 아내의 삶은 어땠을까?

- 남편을 잃은 아내의 모습일까?

- 남편은 정말 죽었을까?

- 남편이 죽었다면 이 여인은 어떻게 돈을 벌까?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작품 정보 >

윌터 랭글리, <슬픔은 끝이 없고 (Never morning wore to evening but some heart did break)> 1894년, 122*152.4, 캔버스에 유채, 영국 버밍엄 미술관


월터 랭글리(1852~1922)


월터 랭글리는 1852년 영국 버밍엄 빈민가에서 열한 명 중의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재단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15세에 석판화가 수습생이 되었고, 이때의 경험은 후에 디테일과 질감 표현에 도움이 되었지요. 사우스 켄싱턴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2년 동안 디자인 공부를 하기도 한 그는 1881년 왕립 버밍엄 예술가 협회 준회원으로 선출되었어요. 같은 해 사진작가로부터 1년 동안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500파운드를 제안받아 이 돈으로 뉴린으로 이사했고, 뉴린 스쿨의 창립자가 됩니다. 뉴린 스쿨은 영국 콘월 남서부의 어촌 마을인 뉴린과 그 근처에 기반을 둔 예술가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그는 어부와 그 가족에 대한 현실주의적 묘사로 어촌 공동체의 삶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유화가 아닌 수채화로 그림을 그렸기에 초반에는 명성을 얻지 못하다가 1884년 버밍엄 예술과 협회 회원으로 선출되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영국 전역과 해외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저서 <예술인가 무엇인가?>에서 아름답고 진정한 예술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어부의 아내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랭글리는 어촌을 배경으로 당시 노동 계층의 현실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표현하였으며 고된 삶과 노동 계급 여성의 슬픔과 인내를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Never morning wore to evening but some heart did break'이라는 제목은 '아침이 저녁이 되기까지, 언제나 누군가의 가슴은 무너졌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슬픔이나 상실을 겪는다는 시적인 문구로 인간의 보편적 고통과 침묵 된 슬픔, 연약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제목은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In Memoriam A.H.H.」(1850)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시는 테니슨이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17년에 걸쳐 시로 써 내려갔다고 해요. 미술사적 관점에서 이 작품은 영국 사회적 리얼리즘의 정수로 평가되며, 빅토리아 시대 후반부의 노동자 계층의 현실, 특히 여성의 고통을 아름답고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을 보며 느껴지는 가슴 아림은 단순한 감상적 묘사가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고통의 서사를 조용히 고발하는 시선이라는 해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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