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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아트 May 05. 2024

말은 씨가 됩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늘 말하던 것이 마침내 사실대로 되었을 때 쓰는 말이지요. 저는 평소에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 될 수 있으면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말은 입 밖을 나와 몸을 떠나는 순간 어떤 기운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내뱉은 말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펼치는 그런 상상의 세계가 그려질 때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의 기운이 돌아다니며 일을 저질러서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꽤나 열심히 청소하는 편입니다.



부정적인 말이 씨가 되는 경험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의 일입니다. 미술학원에서 알게 된 동갑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늘 불안해하면서 저에게

"난 이번 시험 떨어질 것 같아. 넌 시험 떨어지면 뭐 할 거야?"를 가끔 묻곤 했습니다.


저는 떨어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기에

"한 번도 떨어진다는 생각을 안 해봐서 떨어지면 뭐 할지 고민도 안 해봤는데."라고 답했습니다.


어쩌면 제 대답은 그 친구에게 잘난 척으로 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대답 그대로 '떨어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한 첫해니 몇 년을 공부한 사람보다 부족한 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은 살지 못하도록 방을 만들어두지 않았기에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를 믿어주시고 매사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엄마의 교육 덕분이었습니다. 시험에 떨어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다시 시험을 준비하든지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찾던지 그건 결과가 나온 이후에 결정하고 고민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둘 다 임용시험을 많이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고, 실력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말이 씨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떨어질 것 같다는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하며 걱정하던 친구는 진짜 시험에 불합격했습니다.


이후 그 친구가 임용시험을 재도전했는지는 모르지만 '부정적인 생각과 말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그때 이후로 더 믿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말이 씨가 되는 경험


칭찬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예언은 학생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졸업식 날 제자 지현이가 카톡으로 처음 겪는 신기한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같이 생활한 1년 동안 한 번도 들려주지 않던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이 고1 때 수능 시험장 청소 지도를 제가 했다는 겁니다.

21년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저는 비담임이었고, 수능 시험장 중 한 개를 맡아 1학년 몇몇 학생들과 함께 청소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친구들 중 지현이가 있었나 봐요. 제가 청소를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며 이렇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나중에 원하는 꿈을 이루는 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상황까지는 흔히 할 수 있는 말인데 제가 나중에 담임이 되면 대학을 잘 보내주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인문계 고등학교는 처음이었고 고3 담임 경험도 없을 때였는데 어디서 이렇게 자신감이 넘쳤을까요? ^^

학생들에게 칭찬해 주었던 기억은 어렴풋이 나는데 제가 대학을 잘 보내주겠다고 말한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이젠 제가 학생들에게 뿌리고 다닌 '긍정적인 말의 씨앗'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하기야 5분 전 것도 메모를 하지 않으면 기억을 못 하는데 2년 전 것을 어찌 기억할까요?

긍정적인 말의 씨앗이 움트는 시기는 다 다르겠지요. 어쩌면 몇십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심어 준 긍정의 씨앗이 언젠가는 꽃도 피고 열매를 맺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말에 관한 논문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다가 말에 관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1837년 논문을 썼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인간의 말소리는 공기를 진동시킨다.
이렇게 발생된 공기의 파동은 전 지구의 육지와 바다를 돌아다닌다.
인간의 말소리가 바꾸는 공기의 움직임을
지구상 대기의 모든 원자가 받아들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스무 시간이 채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이었다.
지구 위에서 생존해 온 인류의 모든 개체들이 남긴 소리와 숨결은
그렇게 공기 입자의 움직임 속에 영원히 기록된다는 것이다.
찰스 배비지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구의 공기 자체가 전 인류의 태곳적 행적부터 기록된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그러니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지구의 공기에 진동의 씨를 남기는 셈이다.

뉴턴의 아틀리에,  43P

'지구의 공기 자체가 전 인류의 태곳적 행적부터 기록된 거대한 도서관'이라는 찰스 배비지의 표현과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지구의 공기에 진동의 씨를 남기는 셈이다'라는 유지원 작가의 표현을 보면서 글의 묘미에 또한 번 감탄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오늘 지구의 공기에 어떤 종류의 진동의 씨를 남길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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