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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아트 May 26. 2024

연필보다 더 감각적인 가위로 그린 그림

01. 명화 하브루타_앙리 마티스

첫 만남


먼저 그림을 천천히 살펴보자.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관찰하듯이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메모지를 꺼내 관찰한 내용, 떠오르는 질문들을 적어 봐도 좋다.




'가슴에는 버튼 같은 빨간 심장을 달고, 수영하고 있는지 춤을 추는지 알 수 없는 검은 형상이 있다. 손과 발은 원래 없었던 듯 새를 닮은 이 형상은 살기 위해 허우적대다가 삶을 포기하고 바닷속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다. 그는 결국 하늘의 별이 되었다.'


마티스의 <이카루스>를 본 나의 첫인상이다. 하지만, 이 느낌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같은 그림도 나의 기분 상태에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림 감상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한다. 배경만 보더라도 바다였다가 하늘이 되기도 하고, 무중력 상태로 보이는 날도 있으니까.


'미궁 속에 갇힌 이카루스는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인 거대한 날개를 만들어 탈출한다. 자유로운 비행의 즐거움에 빠져 높이 높이 날다가 태양 가까이에 간 이카루스는 결국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만다.'


 '이카루스'라는 제목을 통해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한 이야기가 모티브임을 알 수 있다. 제목을 아는 순간 지식이 그림 감상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그림을 처음 감상 할 때는 그림에 대한 정보 없이 그 자체만을 온전하게 만났으면 한다. 정보는 당신의 무한한 상상력을 꺾어놓을 테니.


그림이 창작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 화가가 그림의 의미를 설명한다면 우리는 그 의도대로 작품을 본다. 하지만 화가의 제작 의도와 상관없이 그림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의 손을 떠나 감상자의 작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해석이 덧붙여 저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되기 때문이다.


작품에 다양한 숨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에서 명화 하브루타는 살아있는 감상 수업이다. 명화를 보고 생겨난 질문을 공유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서로 나누다 보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할 수 있고, 혼자 작품을 볼 때보다 감상하는 사고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자. 이제 자신만의 느낌을 간직한 채 고등학생 2명과 교사가 진행한 하브루타 장면을 따라가 보자. 이 글이 끝날 때쯤 여러분은 명화 하브루타를 경험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다음의 하브루타 내용은 미술 캠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활동이다.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구어체를 그대로 사용했다.



명화 하브루타 참여자 : A(고3), B(고1), C(교사)


1. 작품에 대한 느낌 나누기


A : 검은색 형상이 표적이 된듯해요. 바다로 떨어지거나 추락 중인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 상황 자체가 충격적이고 파괴적이에요. 아마도 검은색 형상이 사람이라고 전제한다면 그의 얼굴은 공포로 물들어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잠재력이 빛을 발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흥분을 감추지 못해 춤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B : 처음 보았을 때 파란색 배경이 눈에 띄었는데 보통 파란색 하면 우울한 느낌이라 그런지 차갑게 침전하는 듯한 분위기가 났어요. 그리고 사람처럼 보이는 검은색 형태가 일그러지고 가슴 부분이 빨갛게 빛나는 것이 차가운 배경과 대조되어 열정적으로 빛나는 마음처럼 보였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열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약간 취객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뾰족뾰족한 노란색 형상은 사회의 시선이고요. 그런 사회의 시선 속에서 우울함으로 침체되어 있는 사람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어요. 가슴이 붉은 이유는 이런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조금의 열정을 갖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2. 그림을 관찰하며 단어로 적기


표적, 바다, 하늘, 추락, 충격, 공포, 파괴, 뜨거움, 잠재성, 분출, 이름표, 표식, 플래시, 반짝, 새의 날갯짓, 갸우뚱, 밤, 별, 스파크, 사람, 심장, 춤, 취객, 도주, 추락, 저격, 공포, 사망



3. 나만의 그림 제목 짓기


별이 된 남자, 양면성, 우울한 직장인



4. 질문하기


주변에 빛나는 노란색은 무엇일까?

가슴 가운데 있는 점이 빨간 이유는?

가슴에 점을 찍어 둔 이유는?

검은색 형상은 무엇을 하는 걸까?

날 선 노란색 형체는 무엇일까?

이 작품의 배경은 시간적 배경일까? 공간적 배경일까? 아니면 상상 속 배경일까?

검은색 사람은 손과 발이 왜 없을까?

왜 사람 같은 형상을 검은색으로 표현했을까?

노란색 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검은색 형체의 왼쪽 허벅지는 왜 굵을까?


5. 생각 나누기_ 토론

위의 나온 질문 중 자신이 가장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 1개씩을 고른 3개의 질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Q1. 검은색 사람은 손과 발이 왜 없을까?


C: 마티스는 말년에 관절염이 걸려 붓을 잡을 힘이 없어 가위로 종이를 오려낸 작업을 많이 했다고 해요. 손이나 발을 세분화하지 않은 것은 가위질을 하기 어려워서 일수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이런 표현을 한 듯도 합니다. 손과 발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단절시켜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무언가 결여된 생명체의 흐느적거림과 완성되지 않은 불완전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A: 날개가 긴 새 같다는 생각이 들고, 인간이 새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표현한 것 같아요.


B: 손과 발이 달려있으면 형태가 온전해지고 그러면 상상력을 펼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략한 듯해요.



Q2. 이 작품의 배경은 시간적 배경일까? 공간적 배경일까? 아니면 상상 속 배경일까?


A: 셋 다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상으로 본다면 배경이 푸르고 약간 보랏빛도 섞여 저녁 시간대로 해석할 수 있고, 공간적으로 본다면 하늘이 될 수도 있고, 바다가 될 수도 있어요. 상상 속 배경이라고 한다면 검은 형상이 흥분한 상황이라 자기만이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해요.


C: 저는 작품의 배경이 공간적 배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장소가 하늘일 수도 물일 수도 있기에 해석이 다양할 수는 있지만 실제 공간적 배경은 분명한 것 같아요.


Q3. 가슴에 빨간 점을 찍은 이유는?


B: 강조하려고 찍은 것 같은데 파란색 배경이 뭘 의미하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경이 공포스러움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빨간 점은 죽음과 관련된 피를 연상시키고, 배경이 신난 상황을 나타낸다면 흥분했을 때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붉은 느낌으로 표현한 것 같기도 해요. 노란색은 반짝 거림이고요.
 
C: 저는 빨간 점이 가슴에 단 배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빨간 이름표처럼 보이기도 해서 자기를 나타내는 표식처럼 느껴졌어요.


A: 저는 이 사람이 약간 표적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빨간 표시는 누군가 이 사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을 묘사한 게 아닌가 싶어요.


C: 겨냥이라 하면 나쁜 의미인가요?


A: 네, 또 다른 생각으로 이 사람이 갑자기 흥분된 감정이 터진 것도 같아요. 가슴속에서 불이 올라오는 뜨거운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요.

 

6. 작품의 메시지


A: 검은색 형체가 균형 잡힌 몸이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하지 않는 동작을 하고 배치해 놓음으로써 혼동을 주고 감상자가 자기의 감상이 맞나 확신이 안 들도록 불확실성을 일부러 조성하여 작품에 더 깊이 빠져들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봐요.


B: 주된 색이 세 가지 정도로 조금 적게 사용했잖아요. 그래서 이 세 가지에 딱 집중을 할 수 있게 색채를 줄임으로써 그림이 강조되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7. 활동 소감 나누기


< A 학생 >

1) 배우고 느낀 점

나는 이카루스라는 그림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엔 '추락'과 관련된 생각만을 가지고 작품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이란 쉽게 변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시간을 두고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전혀 다른 상황으로 작품 해석이 가능했다. 또한 내가 더 놀랐던 것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작품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색다름'을 느낄 수 있었고 생각이 변질되는 것은 단지 일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의 변질 너머에는 생각의 전환이 기다리고 있고 이것은 우리의 사고를 유연하게 만든다. 그 후부터는 우리를 구속하고 있던 어떠한 지식에서도 해방된 채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하브루타 활동은 '색다름'에서 발현되는 사고의 유연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2) 깨달은 점

나는 색다름을 한 번 더 느꼈는데 그 이유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그림이 하나의 역사적 사진 또는 사건과 결부되어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태초의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이 동화될 수도 있고 다른 이의 생각에 공감이 되어 내 생각과 더불어 융합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 실천하거나 적용할 점

내 생각에 매몰되지 말고 한 발짝 떨어져서 작품을 바라보자.


< B 학생 >

1) 배우고 느낀 점

명화 하브루타 수업을 하면서 처음 보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지 않고 스스로 그림의 뜻을 짐작하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유연한 사고력을 기를 수 있었기에 공부할 때도 그저 읽고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도 해보고 답해보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공부가 더 흥미 있고 기억에도 잘 남을 것 같다고 느꼈다.


2) 깨달은 점

하브루타 수업을 하며 내가 생각해 낸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것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남과 함께했을 때 시야가 더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 실천하거나 적용할 점

명화를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을 공부에 적용해서 그냥 외우지 않고 그 원리나 유래를 질문해 가며 공부하면 개념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고, 평소에 지내며 궁금한 것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질문을 해보면 일상에서 더 유연한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보고자 한다.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 작품 정보 >

앙리 마티스, <이카루스>, 1946년, 과슈를 칠한 색종이 콜라주, 43.4 x 34.1cm, 퐁피두 센터


앙리 마티스(1869~1954), Photo by Hélène Adant /Archive Photos via Getty Images 

 

마티스는 1941년 72세의 나이에 십이지장암 수술 후,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종이 오리기'를 통해 미술 작업을 지속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구아슈로 만든 색종이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잘라서 캔버스 위에 배치하는 형태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마티스는 자신의 종이 오리기를 “가위로 그렸다”라고 기술했고, 20개의 작품을 고르고 글을 덧붙여 『재즈』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의 여덟 번째 그림이 ‘이카루스’(1947)이다. 이 작품은 당시 프랑스를 점령 중이던 나치에 대한 마티스의 은근한 비판이며, 특히 ‘이카루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공군 비행사를 의미한다고 추측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티스는 이카루스의 추락을

'열정적인 심장을 가진 이카루스가 하늘에서 추락하다'라고 적었다.

이것이 화가의 의도이다.


관절염과 암투병으로 인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을 때 화가는 날개가 떨어져 추락하는 이카루스에게 자신을 투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빨간 심장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붓 대신 가위를 잡은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도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이카루스>가 춤을 추듯 밝은 에너지를 뿜고 있는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그림을 왼쪽으로 돌려 가로로 보자. 무엇이 느껴지는가?

작품을 돌리기만 했는데도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새로운 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림 감상은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명화 하브루타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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