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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l 12. 2020

열심히 사는 이유가 뭐냐고?

실패가 실패가 아닌이유

작년 30회 공인중개사 시험...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렸다. 휴직하자마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계획했고 종종 공부하는 일상을 블로그 포스팅으로 나눴기에 시험후기 겸 예상되는 결과를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일에 관심이 없지만 생각보다 관심이 많은 것처럼 안부를 묻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솔직히 합격이라면 합격 발표시 합격증과 함께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올렸을 텐데 처참한 내 가채점 결과는 합격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이 상황을 빨리 매듭짓고 잊고 싶었다. 나의 지인들도 어쩌면 당연히? 나의 합격을 예상하고 있을테니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모든 일에 별일 아니라는 듯한 나의 평온한 또는 거만한 기본자세 때문에 기대치가 높을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기 전 어서 그 예상을 정정해 주어야 했다.


블로그 포스팅은 대면해서 물어보기 민망하거나 "시험 잘 봤지?" 라는 반복되는 물음에 깔끔한 나의 입장표명이 되어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공인중개사 시험은 지난 일이니 속상해하지 말고 다른 내일을 준비하자고 쿨하게 선언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인것 같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나름 솔직 담백하게 포스팅을 올렸는데... 이런.. 너무 부지런히 시험당일 포스팅을 했더니 생각보다 더 많은 불특정 다수가 내 포스팅을 보고 말았다. 내가 의도한 것은 이게 아닌데. 갑자기 너무 창피했다.

1월 휴직해서 10월까지 아이가 등원한 오전시간의 우선순위는 늘 공부였는데 시험 분석하나 제대로 못하고 시험 시간 분배도 예상해 보지 않은 채로 ,그저 공부 양이 적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납득시킬 수 있는 답변일까?라는 생각에 더욱 그랬다.


물론 시험 한번 떨어지는 게 사람이 어떠하다는 평가를 받을 일은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이걸로 내가 허술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속상했고 나의 지나온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원통했다. 어쨌든 내 속마음은 그러해도 어차피 내 일상 안에서 부딪혀야 할 일, 편안한 공간에서 마음의 쿠션을 깔아두는 셈으로 블로그에서 먼저 공개했고 소수의 지인들만이 보길 바랬다.


다음날 습관처럼 6시에 일어나 블로그 앱을 켰더니 새벽6시에 방문자수가 이미 천명에 육박했다. 평소 나의 블로그 방문자는 일 평균 1300명정도, 새벽6시는 100명 남짓의 방문자가 들어올 시간인데 이게 무슨 일이지? 어제 통계가 그대로 찍혔나 싶어 앱을 종료하고 재접속 했다. 오류도 아니었고 어제의 화면도 아니었다.

 '30회 공인중개사 시험' 이라는 포스팅의 조회수는 밤사이 2천회가 넘어갔고 모르는 사람의 댓글이 몇 개 달려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싶은데 인터넷에는 광고 글이 많아 도움 받기 어렵다고, 어떤 교재와 어떤 방법으로 공부하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냐고.


나는 시험을 망쳤고 불합격이라는 포스팅을 한 건데 공부법을 묻다니 신기하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분의 질문의도에 공감이 갔다. 시험 준비를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인터넷 검색인데 그때 가장 에너지를 쓰게 되는 건 허탈하게도 광고 포스팅을 제끼는 일이다. 학원홍보, 사이트 홍보를 다 걸러내고 실패후기라도 만나게 되면 열심히 정독하게 되는 마음 실제 공부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니 묻고 싶어지는 마음을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분처럼 늘 그러한 일을 거쳐 공부를 했으니까.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그 사람의 경험과 마음은 진짜니까. 광고가 아닌 진짜 이야기니까.


그렇다. 나는 떨어졌지만 이분에게만큼은 진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공부했고 왜 떨어졌는지, 어떻게 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지, 무엇을 더 했더라면 좋았을지 어쩌면 운좋게 합격한 사람보다 더 자세하고 절실하게 이야기 해드릴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창피함을 무릅쓴 포스팅이지만 모르는 분들로 하여금 조금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댓글들을 달고 '공부하고 일해라' 카테고리의 지난 포스팅을 쭉 다시 훑어봤더니 나 참 열심히 했다. 짠한 마음도 들고 대견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책 제목처럼 열심히 사는게 뭐가 어때서? 라는 생각도 들었다.


뭐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살았니? 라는 물음에 내 만족이라고 대답할 수 있고 그 열심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휴직 전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휴직 중에는 가정과 나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직장에서는 열심의 대가로 급여와 인정을 보상으로 받았고 휴직중인 지금은 나의 가능성에 도전하며 나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경험을 대가로 받고 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열심히 사는 이유, 실패 해도 되는 이유, 아니 실패가 실패가 아닌 이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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