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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Aug 03. 2020

바이러스는 넘고 인권은 못 넘는 경계, 콜센터_김관욱

콜센터에서 나의 경험과 함께(창작과 비평을 읽고)

콜센터.

콜센터 하면 떠오르는 것은?

감정노동자, 악성민원, 담배, 여성.


그렇다.

우리에게 콜센터는 이렇지.


나도 콜센터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여기서 경험이라는 것은 일해 본 적이 있다는 것.

그때를 떠올리니 나는 생각보다 여러 경험을 했구나 싶은데 콜센터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니  꽤나 강렬했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따뜻했고 생각보다 재밌었다. 우리는 그곳을 OO 마케팅팀이라고 생각하고 취업을 했다. '우리는' 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시 동기라고 하는 7-8명 정도가 다들 그런 희망을 안고 출근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사기를 친 것은 아니고 그냥 그 당시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취업난 속에서 얼른 자리를 잡고 싶었던 조급함에 정신없이 취업을 하고 그랬다. 여튼 결국 그곳은 포털에서 검색이 잘되는 키워드를 파는 야후의 아웃바운드 였다고나 할까? 정식 명칭은 모르겠지만 그 정도 였던 걸로 기억한다.


창비에 실린 김관욱님의 글은 코로나와 별개로 상담사들의 현실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며 글을 시작하셨다.


김의경이 지독한 감정노동의 현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성상담사의 흡연 장면을 사용했다면, 사회학자 나딤은 산업혁명의 폐해에 견줄만한 디지털혁명의 부작용을 입증할 증거로서 담배연기를 제시하고 있다. p403





김의경 작가의 '콜센터'라는 소설에서 작가가 고른 장면은 '담배연기로 자욱한 옥상'이었는데  잠깐의 기억이지만 나 역시 옥상에서 엄청난 인원의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실제 '엄청난 인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던 게 아마 '엄청난'의 느낌을 주었던 것 같고 담배연기가 뿌옇게 가득해서 정확한 인원을 셀 수 없었던 탓에 '엄청난 이미지'를 만들어 냈던 것도 같다. 우리를 이끌었던 신입 담당이자 아웃바운드의 엄청난 인재였던 팀장님은 늘 쾌활하셨지만 담배가 아니면 이 생활을 버틸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며 지혜롭게 즐겁게 감당하길 바란다고 하셨다. 노래방에서 스페이스 A의 주홍글씨를 시원스럽게 부르시던 모습이 나는 아직도 생생한데 마케팅팀이라 생각하고 들어온 곳이 비록 아웃바운드 콜센터였지만 자신의 일을 멋지게 감당하며 최고의 모습을 지키는 팀장님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분은 늘 당당하셨고 취미로는 겨울마다 스키와 보드를 탔으며 시원시원스런 성격으로 실제 야후 본사에서도 인정을 받으시는 분이셨다. 그 분을 생각하면 콜센터의 인권이 이렇게 해결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전혀 생각못했는데 팀장님을 생각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와 간혹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실 때가 있긴했다.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이 미관상 보기 안좋다고 옆 건물에서 민원이 들어온다는 얘기를 하실때 였다. 나는 그렇지..그렇게 많은 인원의 여자들이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교육상, 미관상 좋지 않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어릴때라 기존의 시선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담배를 피는 다른 건물 남성들의 숫자가 훨씬 많은데 왜 여기에만 민원을 내고 그 하나의 목소리에 당차고 멋진 팀장님은 왜 아무말 하지 못할까 의아했었다.


나는 결국 짧게 머물다 그곳을 나왔지만...나의 동기였던 언니가 조용히 내게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 다른 곳에서 너에게 맞는 일을 찾아. 난 여기가 잘 맞는 것 같아....그래도 너를 알게 되서 좋았어. "

난 그언니와 꽤 오래 연락을 지속했다. 내가 경험한 그 분들은 그 누구보다도 나를 존중해주고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는 합리적인 분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분들은 바이러스가 집단적으로 그곳을 침범할 동안 가장 낮은 인권의 턱조차 넘지 못했다니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참 마음이 저릿했다. 섣불리 그 분들을 위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콜센터라고 뭉뚱그려 집단으로 묘사하고 원청이니 하청이니 책임을 떠넘기며 모른척하는 관리자들에게 참 화가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개별적인 인간.


전화받는 상담원이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라는 멘트가 나오기 전에는 한 인격과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하는 지금 사회가 과연 온당한 사회인가 싶다. 나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인권도 지켜줘야 경계가 분명해지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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