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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Oct 26. 2021

안 바쁜 자기가 일 좀 더 해줘

저도 바쁩니다만, 제가 화가 납니다만...

"아유, A팀장 일이 너무 많다. 고생해서 어떡해~"


내가 줄곧 들었던 말.

주변인들은 안타까워했지만, 고생하는 만큼 재밌었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솔직히 괜찮았다. 일 잘한다는 칭찬이 결국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근을 기쁘게 먹고 자란 나는 이전보다 책임이 커진 자리로 이동하게 됐다. 옮기고 싶지 않았고 떠밀리듯이 이동했지만 뭔가 명예로운 느낌이 들었다. 늘 그런 것에 속고 후회하면서 같은 실수를 한다. 이전의 자리엔 새로운 팀장이 왔는데 그분이 내가 받던 칭찬을 이어받게 됐다. 묘했다. 나만 칭찬을 받는 건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 이전의 나처럼 빛나고 있으니 조금 샘이 났다. 그래도 고생하는 자리니까 기꺼이 응원해주자며 최선을 다해 그분의 업무를 도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내게 그분의 일 몇 가지가 돌아왔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추가로 말이다.


또 시작인가? 내가 여러 명의 업무를 하게 되는 이 패턴.


특별히 큰 저항감이 들지 않았다. 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게 내 탓인가? 하는 생각을 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서운한 감정도 컸다. 일의 부담을 느끼는 편이 아니고 조용히 하는 편이다. 불평불만해봤자 그 소리를 내는 내 목소리가 싫어 웬만하면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일 더 주는 이 상황은 화가 났다. 팀원들은 나보고 힘든 티를 내고 한숨을 자주 쉬라는 조언을 해줬다. 고맙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쇼잉이 잘 되지 않는 사람. 싫은 내색을 하는 것이 더 힘든 사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 내 욕구를 이해하기. '회사에서 나만 그래?'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이런 욕구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상당 부분 사라진다. 그리고 욕구를 이해했기 때문에 야근 외에 다양한 해결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더 생기는 것이다.
[회사에서 나만 그래?/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정말 일을 더 하는 게 싫은 게 아니라면 나는 무엇이 화가 나고 무엇이 문제였을까? 서운한 감정, 바로 그것이었다. 이전에 혼자 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지 않아서, 뭘 시켜도 조용히 잘해주어서 이렇게 또 시키게 됐다고 미안하다고 말해주셨으면 괜찮았을 것 같다. 아마 나는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경계를 넓혀 가는 일에 기쁨으로 매진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나는 서운했다. 상사에게 서운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명확히 내가 더 하는 업무에 대해서 짚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자존심 상하거나 하고 싶지 않다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쿨병에 걸린 나머지 감정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고 나약한 모습 또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쿨병이 확실한데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어째야 하나? 언니들의 조언처럼 우선 내 욕구를 이해하고 상사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다른 해결 방법을 모색해보자.


서운한 내 감정을 알아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해진 업무를 처리할 '여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칭찬하며 거드름을 피워본다. 대신 쿨병이 아니라 정말로 쿨한 사람이 되자. 이까짓 업무 나부랭이 근무시간에 좀 더 하면 되지 하고 시간 내에만 생각한다. 퇴근해서까지 궁시렁거리며 열폭하지 않기! 그것이 내 결론이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퇴근 이후에도 생각하는 것은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계속 생각했다. 추가된 업무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과연 이게 맞는지를 피곤하게 고민했다. 누가 그럴듯한 조언을 해줘도 내게 맞는 방법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다. 내가 실천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내가 다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말이다. 명예는 내려놓고 일당만큼 생각하고 업무시간에 매진하며 이후는 쿨하게 퇴근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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