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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Aug 31. 2021

계절이 바뀔 때 느끼는 행복(feat. 출근길)

출근길 play 리스트

 출근길이 행복하기는 도무지 어렵다. 한때는 출근해서 커피 마시는 시간을 나만의 즐거운 의식으로 여기며 집에서부터 꾹 참으며 서둘러 출근했는데 이제 맥심 커피 한잔으로는 어림없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커피 한 잔을 들이켜야 눈이 떠졌는데 회사까지는 아직 멀고 먼 여정이 남아있으니 무엇으로 기쁨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대학 입학 이후로 길어진 지하철 이동시간에 책을 보던 것이 습관이 되어 출근길에도 늘 책 한 권씩 들고 다녔는데 근무지를 옮긴 이후부터 애석하게도 사람이 많은 구간이라 책 보는 것이 힘들었다. 힘들 때마다 책을 통해 다른 세계로 도피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니 멍하니 핸드폰만 보게 됐고 그렇다면 음악이라도 들어야지 했다. 그런데 참... 음악을 듣지 않던 사람이 당장 들으려고 하니 어떤 음악을 들을까 선택이 너무 어려웠다. 간신히 기억나는 드라마 OST, 성시경, 김동률의 노래 몇 개를 검색했는데 기특한 AI가 내 취향을 찾아 비슷한 음악을 재생해 주었다.    

 

봄에서 여름까지 비슷한 음악을 들었다. 비록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집을 나서는 게 꼭 어디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침을 맞는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게 온전한 나의 하루를 위하는 마음으로 곡을 선곡했다. 대표적으로 좋아서 하는 밴드의 ‘길을 잃기 위해서’가 그랬다.     


♬추운 봄날에 우리 길을 떠나네

길을 잃기 위해서

우린 여행을 떠나네.♪          


출근길이 힘든 것은 길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이 모든 과정은 여행이라고. 일부러 길을 잃기 위해서도 떠나는데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는 정신승리를 위해 신발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듯 음악에 맞춰 통통거리며 걸었다. 음악의 힘은 단순한 만큼 강력해서 매일 아침 비슷한 패턴으로도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음악의 힘이 큰 건지 내가 단순한 건지 어쨌든 출근길의 축 처진 기분만큼은 음악으로 컨트롤할 수 있었다. 뒤따라 오는 음악들도 비슷한 리듬과 멜로디로 나를 상큼 발랄하게 했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채워 사무실까지 무사 입성하게 해 주었다.


 에어컨 덕에 회사 내에서는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 장마철의 습하고 무거운 공기 같은 계절의 어려움을 크느끼지 못했는데 출퇴근길에서는 온몸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었고 어느 날 아침의 온도가 확연히 달라짐을 느꼈다. 후끈한 공기와 나의 짜증이 행여나 결합할까 무서워 텐션을 잔뜩 끌어올려 동동 떠다녔는데 이제는 스치는 바람결이 내 피부에 조금 더 많이 닿았으면 하는, 보이는 벤치 아무 곳이나 털썩 앉아 계절과 이야기하고 싶은 계절이 다. 지나가는 바람을, 닿지 않는 공기를 모두 끌어다 나만 소유하고 싶은 '가을'이라는 멋진 녀석이 온 것이다. 남자 친구를 맞이 하는 마음으로 바빠진다. 바로 지금, 이런 노래를 들어야 해!!! 하며 폴 킴, 김동률,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검색한다. 이 순간이 내게 더 많이 머무를 수 있게. 이들의 음악이 재생되면 출근길 화면이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느낌으로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분위기로 전환되는 마법이 펼쳐진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딱히 서사를 가지고 음악을 듣지는 않지만 대충 계절의 키워드와 가수의 목소리, 분위기와 귓가에 들려오는 후렴구에 마음이 동해 어쩔 줄 모른다. 그렇다. 가을엔 이렇게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부여잡고 출근을 한다. 어쩌다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책을 만나면 읽다가 내리는 곳을 지나치기도 하는데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음악을 더 들을 수 있어서 바보처럼 배시시 웃게 되는 날도 있다.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이따금 사람들과 자동차와 개들이 오가는 거리를 바라보는 일이 그렇게 좋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출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음악으로 나를 최면 걸어 온전히 계절만을 느끼며 내가 가진 행복을 생각해본다. 아침에 먹은 커피와 마켓 컬리 빵의 호사스러움을, 지금 듣는 음악의 운치를, 회사 안의 내 공간을, 월급을, 퇴근길을... 어차피 하는 출근, 직장에 도착하기 전까진 내 시간을 행복으로 채우리라 결심하며. 행복이 별건가? 좋아하는 음악을 끊기지 않고 들으면 좋았고 바람결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매일 앉을 수 있는 내 자리,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았다. 출근길이 꼭 그렇게 끌려다니는 길만은 아니다. 이렇게 좋은 날도 있다. 계절이 바뀌는 그 시점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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