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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Aug 19. 2021

나도 출세욕이 있었지

마음을 내려놓는 것도 도전.

2년 전, 계획보다 이른 휴직을 하게 되면서 고민이 많았다. 지금은 도망치듯 나가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 나를 보며 모두가 대단하다 여길만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만의 업무 카리스마를 가져야겠다고. 그래서 휴직하자마자 복직 이후의 커리어를 준비했다.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자격증을 가지고 위풍당당하게 복직할 계획을 세웠다. 당장 하는 업무에 관련성은 없었지만, 더 나은 부서에 가기 위한 나름의 준비였다. 겨우 자격증 하나가 나를 대단하게 만들어 줄 거라 생각하다니 우습지만, 2년 전의 나는 그만큼 다른 것에 기대어 나를 이루려고 했다.    

 

새로 시작한 업무가 재미있었다. 궁금했던 분야였기에 이왕이면 잘하고 싶었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더 긴장하게 했지만 긴장하는 만큼 공부했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경쟁하는 마음으로,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달렸다. 겉으론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로 여유를 부렸지만 여기서 멈추면 내 뒤에 있던 누군가가 나를 제치고 갈까 초조한 마음이 들어 끊임없이 나를 관리했다. 나처럼 여유롭게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분명 아등바등하는 것 같지 않은데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휴가를 내고 남몰래 공부하기도 했다. 꼭 얄미운 모범생이 밤새워 공부해놓고 공부 안 했다고 엄살 부리는 것처럼 그런 모습으로 일했다.     


마음이 맞는 동료와 업무 스터디까지 하면서 팀장님보다 지식을 쌓았고 실무적인 일들은 모두 도맡아 하게 됐다. 그래도 힘들지 않았다. 날로 전문적인 내 모습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칭찬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연말이 되어 상훈과 포상이 내려오기 시작할 땐 열심히 한 만큼 당연히 내가 받을 거라 기대했다. 어떻게 하면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순간을 즐길지 '이 상은 제가 받을 게 아닌데' 하면서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상상하고 있었다.


몰래몰래 무언가를 작성하는 팀장님을 보며 내가 상을 받게 되는구나 확신했다. 추천서에 내 이름이 아닌 팀장님의 이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고 무언가 가리면서 쓰고 있길래 내 추천서를 몰래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나! 본인을 추천하고 있을 줄이야! ‘쳇, 그까짓 상 안 받아도 그만이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상 받고 싶었다. 일 잘한다고 월급을 더 주는 게 아닌 이상 필요한 건 명예였다. 우쭈쭈 잘한다 말로만 하는 칭찬보다 확실한 표창이 필요했는데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뭐,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이른 휴직을 한 것은 아니다. 팀장님은 가점이 필요했으니 아깝지만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다음엔 내가 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휴직의 결정적 이유는 자리다툼이었다. 너무 열심히 일한 탓인지 나를 탐내는 사람이 많았고(잘난 척 죄송합니다만) 그 와중에 시기, 질투자까지 나서서 중상모략 분탕질을 더 해 엉망진창이 되었다. 결국, 내가 견디지 못하고 원하는 자리 각자 다 가지라며 휴직을 해버리게 된 것이다. 잘난 척에 비해 결론이 너무 모지리가 되었지만, 사실이 그랬다. 난 이런 정치싸움에 너무 기가 빨렸고 나 하나 자리를 빼주면 그만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의 커리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고 아예 상위부서로 가야겠다는 더 큰 꿈을 꾸게 됐다. 이런 곳에서는 서로 피곤하기만 할 것 같았다.


 휴직 중에도 여전히 나는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직장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언제 복직할 거냐고 네가 없어서 모든 게 엉망이니 그냥 다음 달이라도 복직하라고, 네 맘 다 안다는 말을 기어이 들으면서도 무슨 말씀이냐고 정말 아이를 위해서 휴직한 거라고 손사래를 쳤다. 한동안 나의 후임은 매일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매일 오는 전화가 반가웠다. 나를 채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뿌듯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전화는 뜸해졌다.

     

모든 것은 적응하게 되어있다. 제아무리 내가 잘난 척해도 다 사람이 할만한 일이었다. 견고하던 나의 빈자리가 채워지며 나는 꽤 오래 허전하고 허탈했지만, 방향을 모르고 달리는 열차에서 내려 누가 나를 추월해도 괜찮다는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했다. 복직을 위한 정치적인 인간관계나 업무 준비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결국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회사의 소모품인 것을 뭘 그렇게 불태웠는지 거리를 두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아이와 일상적인 시간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휴직기간을 보냈고 2년 후 위풍당당하게는 아니어도 좀 더 여유로운 모습으로 복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전처럼 모든 일을 틀어쥐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화르르 불타올라 제 몸이 타는 줄도 모르고 일하고 싶지 않으니까.     


다만 나는 여전히 내일을 조용히 준비한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출세욕을 불태울 수 있게, 연료는 늘 준비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조용히 또 자격증을 접수했다. 그냥 뭐, 유비무환 정도의 마음으로?






-복직이후의 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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