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밍블 Mar 25. 2022

좋은 엄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고민하는 엄마

'취향 육아'

“엄마의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멋있어.”

“응? 고집이 세다는 거야?”

“아니. 그런 말이 아닌데... 할머니나 아빠가 뭐라 해도 엄마는 끝까지 해내잖아.”

“그니까... 그 말이 혼자 고집부린다는 것 같은데? 나쁜 말 아냐?”

“아니야. 엄마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의 자신만의 행복이 가득한 것 같아. 그걸 지키는 사람인 것 같아 부러워.”



아이의 말을 듣고 뜨끔하면서도 놀라웠어. 보이지 않는 내 안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아이라는 점이 놀라웠고 적어도 내가 무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지 알아주니 고맙기도 했지. 육아서를 읽은 지 얼마나 오래됐을까? 기억도 안 나는데 새삼스럽게 최근 육아서를 한 권 샀어. 이연진의 『취향 육아』라는 책. 사실 나는 이분의 책은 처음이야. 『내향 육아』라는 책을 먼저 내셨다는데 나는 내향보다는 취향이라는 말에 먼저 반응하는 사람인가 봐.^^ 특히 책 표지에 ‘내가 가장 좋아하고, 기분 좋은 방식으로’라는 부제가 마음에 들었어. 책 띠지에는 영재 발굴단 어쩌고, 사교육 없이 행복한 영재를 키운 엄마가 어쩌고라는 말이 쓰여 있었지만, 내 경우엔 이 소개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어. 육아에 ‘취향’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는 게 내겐 더 중요했으니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목을 길게 빼고 주위를 둘러봐도 아멜리만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아마 그녀가 오래오래 어르며 쌓아온, 그리하여 마침내 한 치의 의심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된 독자적인 사유 방식과 행동 양식, 그러니까 그녀만의 ‘세계’ 덕분일 거란 생각이 들면 부러워졌다. 내게 그건, ‘마음이 추운 날 입을 스웨터’를 한 벌 가지고 있다는 말과도 같아서. 예컨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언저리께 가 따끈해지는, 몸을 푹 감싸주는 그런 스웨터. 허나, 그 좋은 게 별안간 뚝 떨어질 리 있나. 자기만의 세계는 여러 경험 중 자신에게 특별히 잘 맞는 좋은 감각이 거듭되며 만들어진다. 오랜 기다림과 정성, 추억과 애정이 잘 다져져야만 비로소 튼튼해진다. 한 코 한 코 손으로 스웨터를 뜰 때처럼, 꼭 그렇게 말이다. 『취향 육아』 이연진, p24


자기만의 세계는 여러 감각이 거듭되며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그 감각에는 긍정의 감정만이 아니라 슬픔, 분노, 불안의 감정까지 포함되었을 거라 생각해. 부딪치고 깨지면서, 불편해하면서도 굳이 지키고 싶은 것들을 발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내 세계의 한 부분이잖아?     


『취향 육아』의 이연진 작가는 부엌에서 많은 것을 허용하고 사교육도 안 시키는 등 나와는 다른 면이 있는데 그럼에도 일치하는 것은 그녀의 세계가 있고 나의 세계가 있다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고 기분 좋은 방식으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 육아로 인해 내 삶이 없어지고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또한 내 세계를 구축하는 데 한 페이지가 되고 있다는 거지. 나 또한 나의 여러 행복을 지키는 데에 다양한 감각이 필요했어. 아이들 어린 시절, 즉 36개월 이전의 육아는 정말 만만치가 않았지. 누구나 그렇잖아? 엄마가 된 것이 처음이고 신체 변화와 요구되는 역할의 혼재에 정신이 없었던 시간. 나도 나의 30대 전반은 육아“뿐”이었다고 툴툴댔던 것 같아.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이었나 늘 내가 나를 시험했음은 물론이고.


하지만 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꾸역꾸역 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콧구멍을 후비면』을 보면서 정말 코에 구멍이 날까 걱정하는 아이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준다거나 외로운 마음에 책상 밑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누가 나를 찾아주길 바랐다는 을 내가 먼저 스스럼없이 함께 이야기하는 일들 말이야. 나의 아주 연약한 부분을 오픈하고 함께 고민하는 일에 두려움이 없었어. 그리고 눈치챘겠지만 책 읽는 것도 포기하지 않았지. 그것은 지금도 여전한데 초등학생이 된 아이가 『마지막 레벨업』이나『어린이를 위한 가상현실과 메타버스 이야기』를 볼 때 아이보다 뒤처질 세라 조급하게 『NFT레볼루션』을 꺼내 읽으며 함께 공부하는 것 또한 사실은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독서를 계속하는 일이야. 잘했다고 하는 일이 고작 연약함을 고백하며 책을 읽었다는 일인데, 사실 이런 일들이 육아에 있어 내 세계의 전부야. 아이와 나의 세계가 만나도록 노력하는 일.

    

물론 내가 감각하는 다양한 일들엔, 하고 싶은 거 다하며 사는 엄마라는 비난도 가끔 따라붙어.(솔직히 왜 이런 말들을 하는지 이해가 안 돼) 아예 신경을 안 쓰는 것은 아니나, 어차피 내가 모든 좋은 엄마의 모습을 다 해낼 수는 없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저런 작은 역할에 충실하되 그 외 나의 작은 기쁨들을 수집하지.(소비와 수다 같은 것들. 히히) 갑자기 육아서를 보니 예전 생각이 났어. P의 요즘 육아는 어때? 우숲살 이후 현재 P의 취향 육아는 어떤 방식인지 궁금해진다. 너의 취향과 아이의 취향은 어떻게 일치하고 어떻게 어긋나는지도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숨통이 트이는 시간. 숨통이 트이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