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구매기
2주후에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특별히 꼭 사야해! 하는 아이템도 없었거니와 달러도 유로도 환율이 높을 때라 면세 쇼핑이 필수는 아녔다. 그래도 검색이나 해볼까?싶어 향수를 검색했다. 요즘 향수는 죄다 20만원 이상이다. 10만원대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찾았는데 딥티크 정도가 가능했다. 딥티크......딥티크의 필로시코스, 오로즈를 20대에 샀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도 이 향들이 좋으려나? 최근 친구가 새로 향수를 샀다며 뿌리고 온 게 딥티크의 오르페옹이었다. 딱히 좋아하는 향은 아녔는데 그 향이 어디선가 흘러 들어오면 친구가 생각났다. 향에 민감한 편이라(비위가 약하거나 그런건 아니고 향기에 따라 어떤 무드가 떠오른다) 직접 시향해보러 가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향이 딥티크의 오르페옹인지 친구의 향기인지. (참고로 딥티크 오르페옹은 10만원대가 아닌 20만원대였다.ㅋㅋㅋ)
"원하는 향 말씀해주시면 시향해드릴게요."
"오데썽이요."
(아, 오데썽을 요청한 이유는 우드 베이스에 시트러스, 오렌지, 베리 같은 달달하고 상큼한 향이 더해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한가지만 드리면 될까요?"
"아, 오르페옹도요!"
오데썽은 맡자마자 아니올시다, 제꼈다. 기억이 났다. 나는 딥티크 오에도를 꽤 오래 사용했다. 아니 사용했다기 보다는 오래 방치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시간이 갈수록 시트러스나 라임 같은 상큼한 향이 아닌 알코올 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데썽도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ㅋㅋㅋㅋ(나의 개인적인 느낌). 이어 오르페옹 시향지를 받아 들었는데 어? 친구에게서 나던 그 향이 아니였다. 음... 이 느낌이 아닌데? 내가 느낀 향은 바이레도의 믹스드 이모션같은 스모키하고 약간은 매캐한 향이었는데 시향지에서는 달달한 베리향이 더 강했다. 돌발향기라는 자스민도 꽤 존재감이 있어서 중성적인 매력보다는 여성스런 느낌이 물씬 풍겼다.
"손목에 착향해볼 수 있을까요?"
시향지에서 맡은 향만으로 구매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향지의 향이 정확하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벌름거리며 결정했으니 당연히 나에게도 그런 향기가 날 줄 알았다. 당시 30만원이 넘는 나름 고가의 향수 킬리안의 뱀부하모니를 그렇게 샀다. (지금 검색해보니 50ml 기준 60만원에 육박한다.!!!! 미쳤!!!) 그런데 그 비싼 향수를 내 손목에 뿌리니 그냥 남자 스킨 향기가 났다. 세상에! 왜! 왜! 베르가못의 잔잔한 느낌과 차향의 고급짐 어디 갔냐고? 왜 내 손목에 뿌리니 그냥 목욕탕 남자 스킨 향기가 나냐고!!!!!!!!
이후부터는 무조건 착향을 해본다. 그리고 한참을 돌아다니며 잔향을 확인한다. 잔향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첫 향은 금방 날아가고 알콜향이 강할 때가 많아서 잔향이 얼마나 나와 어울리는지를 체크해야 한다는 걸 큰 돈 쓰고서야 알았다.
나의 첫 향수는 디올이었다. 이유는 예뻐서.
여대생은 디올이지. 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향은 기억도 안난다. 직장 다닐 때도 뚜껑에 꽃달린 디올 향수를 샀던 것 같다. 봄바람에 취해서 충동구매 했던 기억이다. 취향도 딱히 없었는데 생각보다 향이 강하게 느껴져서 내가 뿌리고 스스로 머리 아파하곤 했다. 다들 향수를 어떻게 뿌리고 다니지? 의아해하면서 화장실에나 뿌리다가 그마저도 머리 아파서 남은 향수를 콸콸 하수구에 쏟아 버렸다. 아까워서 2년은 방치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30대엔 나름 이런이런 향이 좋구나 코를 킁킁거리며 백화점에서 나눠주는 시향지를 들고 매장을 방문했고 시향지를 5개 정도는 들고 고민하다 가장 독특하면서도 시원한 향을 골랐다. 보통 플로럴 계열보다는 중성적인 향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착향하면 금세 날아가거나 남자 스킨향이 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다행히도 백화점 매장에서 향수를 사면 끝까지 고민했던 향들을 샘플로 주셔서 나의 체취와 잘 맞는 향수를 찾아갈 수 있었다.
바이레도의 향수들이 무난하게 좋았다. 믹스드 이모션은 시향했을 땐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코가 매웠는데 착향했을 때 잔향이 좋았고 모하비 고스트는 뿌릴 땐 어쩐지 뭔가 부족하다 느껴졌는데 잔향이 청량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플로럴 계열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라튤립은 부드러운 꽃향기랄까, 적당히 향기롭고 적당히 유니크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음에 든다.
아쿠아 디 파르마의 피코 디 아말피는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조합이다. 탑노트가 오렌지에 무화과와 시더우드가 베이스잖아! 만족스럽게 한 병을 다 썼지만 약간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재구매는 하지 않았다. 조말론의 얼그레이도 좋아하는 향의 조합이다. 베르가못과 오이의 향, 약간의 매캐한 느낌. 다만 이 향수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어서 나만 좋을 수 있다. ^^;;
어쨌든, 친구에게서 났던 기분 좋은 향은 친구의 체취와 오르페옹의 조합이었다. 착향을 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친구에게서 났던 향은 나지 않아 구매하지 않았다. 어떤 향수는 있는 그대로의 향기가 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나의 살냄새와 생활향기가 결합하기 마련이다. 써져 있는대로의 향기가 베이스이긴 하지만 내가 가진 향기와 결합하면 꼭 그대로의 향기는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 (내 냄새가 문제..ㅋㅋ)
내게 있는 기본 향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색깔처럼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두 세가지가 결합할 때 어떤 색이 나올지 예측해볼 수 있을텐데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나의 향기가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인위적인 향기가 더해질 때도 내 본연의 것과 결합될 것을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향수라도 친구와 나의 향이 다를 수 있음을 재밌어한다.
20대엔 예쁜 패키지의 향수, 또는 브랜드의 느낌적 느낌을 보고 구매했고 30대엔 그때 그때 꽂히는 향을 충동적으로 샀다.
40대, 지금은 나의 체취와의 밸런스를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잘맞는 향수를 고르기도 하지만 간혹 오늘처럼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40대의 향수 취향이 가장 탁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시절마다 나는 만족스러웠으니까. 그냥 지금은 향기를 알아가는 과정이 좋다. 나의 향기와 너의 향기를 인정하고 구별할 수 있어 좋다. 친구에게 났던 오르페옹 향기를 꼭 내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친구의 향기라 여길 수 있어 좋다.
궁금하다.
향수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어떤 향수를 쓰는지.
느낌적 느낌으로 선호하는 향이 있는지,
자신과 어울리는 향을 찾았는지,
그 과정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나와 비슷한 향수가 있는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