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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n 05. 2020

도서관 너마저 '언택트'야?

19년과 20년의 도서관 온도차이

 나는 도서관에서 치열한 공부를 했다기보다 늘 사람구경을 한 것 같다. 저 사람은 무슨 공부를 하지? 저 아이는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할까? 저분은 직장을 다니나? 휴가를 낸 걸까? 왜 직장을 들어가서도 공부를 해야 하지? 공부는 끝이 없구나. 저 아줌마 아저씨는 왜 뒤늦게 공부를 할까? 늘 궁금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인생에도 공부란 동반자는 늘 함께 하겠구나. 은연중에 생각한 것 같다. 그때 본 사람들의 인생이 나의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우리의 인생은 모두 개별적이면서도 비슷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전공공부를 위해서도, 토익시험을 위해서도, 공무원 공부를 위해서도 아닌 아무 목적 없이 도서관을 찾은 19년의 지금 나는 더 없이 자유로움을 느꼈다. 괜히 열람실도 둘러보고 문헌정보실의 종이냄새, 잉크냄새를 맡으며 조용히 또각또각 걸어도 보았다. 그때처럼 대기인원이 가득차진 않았지만 자신의 삶의 한 페이지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특정한 목적이 없었기에 무슨 책을 빌려야 할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누군가가 본다면 한량한 백수처럼 보였겠지만 그 잉여의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휴직 후 도서관을 다니는 나의 모습에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차를 가지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친한 언니와 도서관에 다닐 시절, 우리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왜 도서관은 이렇게 시내에 떨어져 있는 건지 매일 불평하며 다녔다. 특히 한여름 내리쬐는 태양빛을 그대로 받으며 걷다보면 중간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와중에 유유히 차를 타고 그 길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차까지 있으면서 도서관에 왜 오는 거야?’라고 맥락 없는 야유를 퍼부었다. 아마도 그때 나에게 차란 성공한 사람의 소유물이라는 생각과 차를 가진 사람은 공부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공식이 성립해 어쨌든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내 차를 운전해 도서관에 입성하는 날! 나는 무슨 금의환향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면서 반대로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차까지 있는’사람이 여전히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머쓱했다고 할까? 나는 직장인이 되었고 아이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대여하는 것 뿐 아니라 실제 공부를 하기 위해서도 온다고 스스로에게 예전 궁금증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었다. 차는 성공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갖게 됐고 차를 가져도 공부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는 것 역시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오는 사람의 인생은 늘 미완성인가?

한때는 나를 가꾸지 않은 채 가장 편한 차림으로 오가던 도서관의 불확실함과 불안함을 품은 이 곳의 에너지가 싫었다. 대학생의 열심도 한두 번이지, 대학생의 풋풋한 열심은 팍팍한 취업준비로 이어졌고 여의치 않은 취업준비는 공무원 공부로 이어졌다. 사회인으로 거듭난 이후 다신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업무인증 시험을 보느라 또 다시 방문, 휴직을 하고도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다시 오가게 되는 도서관.

 

이제 내게 도서관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미완성의 인생을 완성시켜 주는 신데렐라의 호박마차라고 해야 하나? 그러기엔 그만큼 사랑스러운 동화속의 대상은 아니지만 불안한 에너지만큼 싫은 장소는 분명 아니다. 나는 이사를 할 때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지 부터 살피며 새로 지어진 도서관을 보면 근처 아파트 주민을 부러워한다. 도서관에는 분명 특별한 것이 있다. 특별한 인생이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고 내가 보지 못한 수 만권의 책에 누군가의 지혜와 세상의 지식이 가득 있다. 나는 때때로 그 인생의 치열함이 버겁고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눅 들지만 도서관 그럼에도 가까이 하고 싶은 곳이다.

 휴직을 하고 무슨 공부를 하든 안하든 도서관은 자주 오자고 다짐했다. 잉여의 시간을 만끽하기도 하고 다시 목표를 정해 공부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읽고 싶은 책을 가득 쌓아놓고 눈이 시리도록 읽기도 하자며.



여기까지는 19년에 작성해둔 글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여전히 휴직중이지만 도서관에 갈 수 없다.

사회적거리두기에 이어 생활방역에서도 다중시설은 제한을 받게 되었고 예약시스템을 통해서만 그것도 선착순으로 책을 대여만 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개월만에 도서관은 내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2019년까지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도서관이 말이다.

도서관에도 '언택트'가 적용되었다.



이제 작은 여유시간이 생기면 나는 만끽하기 보다는 조금 조급해졌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나는 어느정도 그 변화를 발 맞추면서도 그냥 예전처럼 영혼은 집에두고 회사 왔다갔다하며 월급날 적당히 소비하고 적당히 쪼들리는 삶을 살고 싶기도한데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니까. 그리고 점점 그 변화를 수용하고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찾아 정말로 돈과 시간을 벌어낸 사람들이 등장하니 나의 이런 잉여시간이 부끄러워져 무엇이라도 하고픈 초조함이 생기는 것이다.


앞으로는 시간을 벌기위해 계속 해서 고민하고 행동하고 앞장서야 하니 역설적으로 내게 잉여시간이란 없을 것 같다. 아무것도 안하는 중에도 머릿속은 계속 굴러가고 있을테니.

온라인상으로 목차와 서평을 살펴보고 대출예약을 눌러 드라이브스루로 책만 픽업하는 시스템. 그것이라도 가능해서 참 감사하지만 도서관의 낭만이 사라져서 나는 조금 슬프고 무슨 책을 볼까 목적없이 책냄새 맡으며 돌아다닐 수 없어 아쉽다.


효율적이라는 것이,

때로는 나를 좀 슬프게 하는 것 같다.

풉. 내가 이런말을 하게 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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