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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Oct 19. 2020

이기적이라는 평가가 두려웠던 이유

장래희망은 이기적인 년을 읽고


나는 이기적으로, 충동적으로 휴직을 했으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피해자처럼 말했다. 그리고 휴직을 계기로 일명 쎈 언니가 되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휴직 한 두 달 후 직장 동료들이 나를 찾아주고 그리워하는 것에 쉽게 만족했다. 그리고 어쩌면 예전의 내가 그리 바보 같은 사람만은 아니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일했던 방식이 정말 바보 같았던 것은 아니고 누군가를 믿고 수치로 계산되는 보상 이외의 평가에 더 에너지를 쏟았던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는 의미였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일들로 나중에 내 마음이 다칠 거라면 아예 착한 척, 괜찮은 척 '네네'라고 웃으며 일을 떠안지 말자.! 이게 내 결론인데 결론을 내놨다고 해서 바로 도착점에서 안녕! 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이런 책에 자꾸 손이갔다.



책에 쓰여있는 것처럼 날카로운 직감을 가지고 영리한 태도로 살아남고 싶었다.

아. 과거엔 아니었지만 미래엔 좀 이기적인 년이라는 평가를 받고도 싶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


읽고 나니 내가 생각한 직장생활에서의 영리한 태도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었다.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을 검색해보니 이런 문구가 있었다.

인생을 좀 조져본 언니들의 유쾌한 카운슬링



아 딱 그런 책이었다.

임경선 요조가 썼다고 하기엔 이 언니들이 좀 더 인생을 더 막살았는데...^^;; 뭐 미국식으로 살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살아온 모범생의 길과는 너무 결이 달라서 완전히 몰입해서 보기엔 조금 어려웠지만 메시지는 좋았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이건 아니다.라고 여기는 건 아니니까 다른 방식이지만 관통하는 메시지에는 매우 공감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대체 이기적이란 게 어떤 의미일까?



 휴직을 하면서 나와는 상대적으로 다른 이기적인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나에게는 업무 피해를 주기도 하고 약간의 짜증을 더해주기도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는 생각을 이제와 해본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었던 반면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약간씩의 짜증을 불러일으켰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아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니 자신을 아꼈다는 표현이 사치인 사람들이 생각났다. 워킹맘! 나 역시 워킹맘이었지만 친정엄마라는 육아 보조자가 있었기에 업무와 집을 구분할 수 있었다.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워킹맘들은 회사에서는 일과 동료들에 치이고 집에서는 가사와 육아에 치이며 이기적이라는 평가까지 듣는 현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 그런데 또 모를 일이다. 다시 직장에 돌아가면 나는 다른 워킹맘을 이해해주기보다 내 앞가림이 더 급하고 더 중요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이기적이다. 사람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 


p67. '망할 놈의 예의 따위' 정신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꺼져!"라고 외치라는 게 아니에요. 타인이 내 영역을 침범할 때 쓸 수 있는 한 가지 전략이에요. 잘못은 그 사람이 먼저 했죠. 이 구역의 멍청이는 그놈이에요.(...) 그놈이 성질을 내면서 "나쁜 년!"이라고 외쳐도 우리는 나쁜 년이 아니에요. 우리가 옳으니까요.


장래희망은 이기적인 년.이라는 제목이 갑자기 슬프게 다가온다. 왠지 지금은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여겨져서 그렇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년'이라는 비속어를 넣으면서 욕을 먹더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아가는 현재 진행형의 악인이 아니라 미래에 무엇이라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거기엔 물론 나도 포함이다. 이기적인 년이 되고 싶은 꿈은 범죄를 저지르며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희망이 아니다. 소박하게나마 내 안의 욕구를 들여다보고 다른 누구의 목소리가 끼어들지 않는 온전한 나의 바람을 실현시키겠다는 목소리이다. 우리는 나쁜 년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들도 할 뿐이다.


p205. 나도 아는 건 별로 없지만 내가 뭔가 조언을 건네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뭐라도 시도해보세요. 기분이 좋아지는 일에 여정을 쏟아보세요. 나도 좋은 삶을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자신감을 갖고, '내가 나라서 좋은' 그런 아침을 맞으세요. 그런 아침을 맞기 어렵다면,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를 먼저 생각해보세요. 먼 여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엔 이 과정이 꼭 필요했어요. 일단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를 알아내면 기회를 잡아 그걸 내 것으로 만들기가 훨씬 쉬워지니까요.

이기적인 년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뭐라도 시도해보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참 소박하지. 좋아하는 것 하나씩 해보는 것. 되지도 않는 글이라도 뭐든 자꾸 써보는 것. 그러면 이기적인 년이 될 수 있는 건가? 어쩐지 이기적인 년이 되어서 아무 말이나 시원스럽게 내뱉으며 자기만족하는 내 모습을 떠오르려니 영 어색하다. 이것도 이기적인 여자에 대한 편견이지. 내 인생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 나를 아끼며 내 삶에 만족하는 사람. 그게 바로 요즘 이기적인 여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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