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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이거 안 하면 안 돼?

by 다정한 밍블

아침 7시.


내가 대략 눈을 뜨는 시간이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집어 들어 시계를 확인하고 잠시 생각한다. 신문기사를 볼지 더 눈을 감고 있을지. 매일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는 듯 하지만 사실 시간을 본 다음 하는 일은 블로그에 접속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고민할 필요 없이 아침 준비다. 아침 먹고 치우고 난 뒤에 하는 일은 경제기사를 블로그에 요약하는 것. 귀찮기도 하고 시간이 들기도 해서 이제 그만해야지 하는데 기사를 선정하고 요약하는 행위를 통해 내가 얻는 게 많아서 올해까지는 계속해야지- 하고 있다. 경제신문을 쭉 훑어보고 그중에 6개의 기사를 고르고, 블로그에 요약정리를 하는 것이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일이 아닌데 1시간이 걸린다. 새벽시간에 집중해서 하는 일이 아닌지라 아이들 들락거리고 나 역시 이 창 저 창 기웃거리다 보면 두 시간이 걸릴 때도 있고. 아! 9시에 주식시장이 시작되면 나의 주식들이 간밤에 크게 하락할, 또는 급등할! '재료'가 있었던 건 아닌지 확인도 해야 해서 더 더 느려질 때가 많다. 나의 아침 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오전 시간은 매일 집에 있는 내가 그나마 생산적인 활동으로 채우는 시간 같아서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 정도 하면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것은 좀 여유 있게 받아주는 편. 물론 내가 아침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아이들의 일과도 오전에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나랑 기질이 비슷한 둘째는 오전에 자신의 할 일을 끝내는 편이다. 눈 뜨면 방으로 와 재잘재잘 이야기하다가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피아노 연습을 시작한다. 내가 신문기사를 보는 시간에 본인도 수학 문제집을 집중해서 풀고 내 방 침대에 두고 나간다. 그리고 그다음 할 일을 하고 한글동화 2권, 영어동화 2권을 읽은 후 역시 내 방에 가져다 둔다.


"엄마, 오늘 내가 읽은 책이야. 나 이제 쉰다!"


아이가 이 말을 하면 너무 대견하고 예쁘면서도 앗 벌써 아이 쉬는 시간이면 내 쉬는 시간은 끝났구나 싶어서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 첫째는 즉흥적이고 순간에 몰입하는 편이라 매일 할 일을 정해두었지만 최대한 미뤘다가 몰아서 하는 편이다. 책 읽기만 해도 동생과 같은 한글책 2권, 영어책 2권인데 가령 고르는 책이 동생처럼 얇은 그림책이 아닌 글자가 많은 지식박물관 책이랄지 과학서적이랄지 내가 보기엔 두껍기만 한 책이다. 자신의 흥미위주로 고르긴 하나 두꺼운 책이라 보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런 책만 두 권 고르면 책 두 권만 보고 하루가 다 끝날 것 같아서 1권을 봐도 2권을 읽은 걸로 해주긴 하나 왠지 요령이 없는 아이다 싶어 아쉽다. 꾀부리며 얇은 책만 보면 그것도 얄밉겠지만 두 아이가 이렇게 다른 패턴을 보이니 한 명에겐 이런 아쉬움, 한 명에겐 저런 아쉬움을 보이며 우산장수, 부채장수 자식을 둔 부모처럼 오락가락한다.


오후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간다. 결국 첫째는 저녁시간에 밀린 공부를 시작하는데 저녁에 몰아서 하다 보니 자기는 놀지도 못하고 과중한 공부에 억눌린 느낌이 드는지 뚱한 표정일 때가 많다.


나는 늘 얘기한다. 책을 좀 짧은 걸 골라 아침에 후딱 읽으라고. 해야 하는 일이 많지도 않은데 오전에 책 한 권을 내내 붙잡고 있으며 놀다가 저녁이 돼서야 숙제를 시작하니 나도 답답해서 열불이 난다. 뾰로통한 얼굴로 할 일이 많다 하는 게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는 엄마가 되는 것 같아 억울하달까?


나의 저녁시간은 또 저녁을 준비하고 정리하고 아이들 할 일을 체크해주고 책도 보고 유튜브 강의도 듣고 그런 시간이다. 오전에 비해 꼭 해야 하는 것들은 아니고 그날그날의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정도랄까? 아이들에게도 오후 시간은 그렇게 여겨지면 좋은데 우리 첫째에게는 스트레스의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무겁다.

그러면서도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니 마음은 점점 더 시커메진다.


첫째 아이는 마지막으로 일기를 쓰며 나에게 심각하게 말했다.


"엄마, 나 진짜 솔직하게 쓸 거야. 내 마음 그대로 일기에 쓴다~!"


솔직한 아이의 마음이라 봤자 엄마가 무섭다, 숙제하기 싫다 이런 류의 것이겠지 가볍게 여겼지만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은 그런 내용이 무섭기도 했다. 나도 쿨하고 나이스 한 엄마가 되고 싶은데... 인기 없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 하면서 아이의 일기를 그다음 날에야 들춰 보았다. 정말 두려웠달까?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01016153226_0_rotate.jpeg 아이는 제목 뽑아내는 능력부터 최고다. 마음 날씨라니. 너야말로 작가다!마음날씨가 이렇게 최악인 날도 예쁜 글을 쓰는 네가 이 와중에 부럽다.


다음 날 아이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며 주저주저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왜 무슨 일인데?"

"아니....."

"왜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엄마들이 다 그렇듯 나는 눈치가 매우 빠르다.)

"아니...."

"괜찮아, 얘기해봐. 서로 조정하는 거야. 너무 스트레스가 되면 좋지 않으니까."

"응.. 나 뭐 좀.. 안 했으면.... 하는 게..."

"응. 뭘 빼줄까? 뭐가 젤 힘든데?"

"일기! 일기를 매일 쓰는 건 힘들어. 매일 할 일 중에 늘 그게 남잖아."


매일 할 일 중에 일기가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게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거라 매일 쓰지 말고 일주일에 세 번만 쓰라고 했다. 사실 원래 일주일에 세 번 쓰는 건데 아이들이 매일 쓴 거였으니 빼주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쁘게 쓰는 일기를 매일 못 본다는 게 너무 아쉽다. 엄마는 네 마음을 보면서 엄마 마음을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말이야. 게다가 이렇게 브런치에 글감을 제공해주는 게 바로 네 일기였는데.. 내 마음은 다르게 까맣게 탔다.ㅋㅋㅋㅋㅋ


우리의 이런 별다를 게 없는 하루 일과가 네 일기로 얼마나 의미 있는 기록이 되니~~

아쉽다 아쉬워.

다른 공부를 빼고 일기를 매일 쓰는 건 어떨지 딜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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