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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Sep 28. 2020

매일 일상과 결핍의 중요성

초등학생의 스트레스

코로나 19가 우리 곁에 다가온 지 이제 9개월이 넘어간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언제부터라고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난 작년부터 휴직 중이었고 올해는 복직을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변하지 않는 상황에 그냥 쭈욱 휴직 중이다. 7세 때부터 내년 학교를 가면 무엇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엄마들과 동동거리며 정보를 수집했는데 막상 초등학교 입학은 세상 처음 경험한 온라인 입학이었고 그 이후에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시간이 흘렀다. 한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다. 4월이면 학교 가겠죠~ 5월이면 끝나겠죠? 유치원 엄마들과 이런 카톡을 나눴다. 그런데 지금은 추석을 앞둔 9월 말이다. 둘째는 유치원을 퇴소했고 첫째는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 학교를 간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라 교육 공백이 크다고 할 수 없고 내가 집에 있으니 돌봄 공백이 있지도 않다. 하지만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고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고 방과 후 조금씩 게으름을 피우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상은 우리 아이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 시간은 넘쳐흘러 지루했고 집에만 있는 일상이 계속되면서 세수와 옷 갈아입기는 선택사항이 되어 버렸다.


지겹지만 매일 해야 하는 일상의 과제가 없다 보니 아이는 어떤 것에도 당위성을 느끼지 않는 자유인이 되었다. 자유로운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한다면 그래, 자유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느 날 분명 코로나 19는 종식될 것인데 그때 이 아이에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르치던 생활습관을 들이대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며 순순히 받아들일까? 나는 아이에게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적어 주었고 보상시스템을 만들었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을 뽑아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체크 리스트를 보고 각자의 유리병에 칭찬 구슬을 담기로 했다. 일정 개수를 채우면 원하는 선물을 사주는 것으로 보상도 명확히 했다. 목표가 있으면 아이나 어른이나 어떻게든 목표치를 채운다. 언제 모으지 했던 구슬이 벌써 목표량을 채워 각자 원하는 학용품, 장난감을 갖게 되었는데 아이들 선물을 사는 과정에서 난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의 필요는 늘 부모님이 알아서 채워줬다는 것. 


계절이 바뀌면 훌쩍 자란 키에 벌써 바지가 깡충하고 작년에 입었던 옷들의 두께감이 적정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스럽게 새 옷을 구비해 두고 학업 성취도에 맞는 문제집이나 책, 학습도구도 해마다 구매해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매월 자신들의 할 일을 완수하면 원하는 것을 사준다고 하자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생각했다. 사실 한 두 가지는 자신이 꼭 갖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에 선물 고르기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곧 매월 선물을 생각해내는 걸 아이들이 꽤 힘들어했다. 이때다 싶어 나는 예를 들어주었다.


"가을이 돼서 날씨가 쌀쌀해졌잖아. 바지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다음 선물은 옷을 사달라고 해. 아니면 너희가 배우고 싶었던 클래스, 비누 만들기나 체험하는 프로그램 있지? 그런 거 한 번씩 하는 것도 괜찮고."


그동안 옷은 엄마가 알아서 사주는 것이었는데 보상으로 옷을 사달라고 한다? 아마 생각해본 적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어느 정도의 결핍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구나 싶다. 얼마 전 아이들과 쇼핑 갔던 일화를 얘기해보겠다.





화점은 여자들에게 정말 쉼과 기쁨의 공간이다. 결혼 전에는 단순히 소비의 공간이었다면 출산 후에는 아기띠를 메고, 유모차를 끌고 눈치 보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백화점이다. 수유실은 또 얼마나 잘되어 있나? 여자의 모든 인생의 시기를 함께 하는 백화점에 이제 딸 둘과 함께 쇼핑을 하는 때가 왔으니 비록 구매력이 없는 아이들이었으나 이전보다 아이들은 물욕이 조금 더 생겼다. 내 생일이라 뭘 좀 사볼까 하고 아이들과 나섰는데 이것저것을 만져보며 자기들끼리 이건 누구 거랑 똑같다, 나 이거 갖고 싶었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이 곳 저곳의 문구와 예쁜 옷에 정신이 팔려 즐거워했다. 나는 내 것을 사는 기쁨도 잊고 아이들이 참 많이 컸구나, 이제 아기띠도 없이 유모차도 없이 모두 두발 걸어 쇼핑하다니 묘한 행복감에 빠져 내 옷 대신 아이들 옷을 왕창 집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엄마 생일인데 너희 생일 같네. 옷도 이렇게 많이 사고?"

"왜 어때서? 내가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엄마가 강제로 고른 건데?"

"강제로? 그럼 너는 안 사고 싶어?"

"아니, 그건 아닌데..."

"네가 사고 싶은 마음 없으면 사지 마. 네가 필요 없는데 엄마도 억지로 사고 싶지 않아."


사실 조금 기분 상해진 것도 있었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기분 좋자고 내 만족으로 아이들 옷을 집어 들었으면서 그것이 너희의 기쁨일 것이라고 아이에게 받으라고 강요했다. 아이들이 원하지도 않은 것을 선물하고선 너는 선물 많이 받아서 행복하겠다고 말하는 꼴이라니. 잔뜩 들고 있던 아이들 옷은 다 내려놓고 자신들이 꼭 갖고 싶은 한 가지씩만 소소하게 고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저렴하게 하지만 최대 행복을 가득히 안고 돌아왔다.


부모님이 내게 해주신 것은 어떤 의미로 굉장히 많았고 어떤 의미로는 부족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나는 늘 내게 주어진 한도에서 최대한 좋은 것을 해주려고 했지만 나의 최대가 아이가 원하는 최대가 아닐 수 도 있다. 최대의 범위 설정 자체를 아예 엉뚱한 곳에서 혼자 외치며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전혀 바라보지도 관심도 두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어쨌든 내가 생각할 때 아이는 분명 가을 옷이 부족한데 자신이 부족하다 느끼지 않는 한 내가 먼저 채워주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땐 제 때 기저귀를 갈아주고, 제시간에 우유를 먹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이제는 그 정도가 아니니까. 자신이 부족함을 느끼고 분명하게 요구할 때 정당성을 부여해서 채워줘야겠다 다짐했다.


생활습관을 잡아주고 자신의 욕구를 돌아보게 하는 매일 일과와 보상시스템은 그런 의미에서 일거양득이었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힘들지만 완수할때 보상은 자신의 필요에 맞춰 채워진다. 물론 부모가 자녀에게 거저 줄 수 있는 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다. 충분히 사랑해주는 것, 언제나 변함없는 지지와 응원? ㅎㅎㅎㅎㅎㅎ




사실 나도 국민학교 시절, 매일 해야 하는 숙제와 일과들에 매우 짜증을 내던 한 사람이었다. 연필만 쥐면 짜증이 났다니 지금 읽어보고 적잖이 놀랐다. 나 이런 사람이었어?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그때의 성실한 습관들이 그나마 현재 나를 이룬 것이라 생각한다. 성실만 하다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것이 없는데 성실하지도 않다면... 아.. 그것은 안  일이지 않은가?


우리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해야 할 일들에 정신없는 것처럼 보이고 짜증 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커서 이 일기를 보면 웃게 될걸? EBS 보고 일주일에 한 번 학습 꾸러미 하고 영어 책 한두권 보는 걸로 이렇게 허덕였다고?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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