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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Sep 07. 2020

특별하지 않은 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힘

초등학생 때부터의 나의 일기


 어린 시절의 일기는 한 번도 자발적인 글쓰기 인적이 없었다. 학교 숙제였기 때문에, 엄마가 쓰라고 했기 때문에 쓰는 경우가 99.9%였다. 엄마는(어린 시절의 나의 엄마, 그리고 지금 나) 그냥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적으면 된다고 쉽게 이야기하곤 했지만 그 시절의 나와 지금 우리 아이는 엄마 말대로 뭐, 뭐 했다만 나열했다간 구박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삶이란 별 것 없다. 특히 코로나 19로 야외활동이나 학교생활, 학원생활이 전무한 지금 집콕 생활에 대해 적을 만한 게 무엇이 있겠나. 그것도 매일.! 나의 유년 시절은 그래도 지금 우리 아이와는 다르게 학교도 다니고 오고 가는 길 친구도 만나며 크고 작은 이벤트가 있었음에도 일기를 쓰려고만 하면 적을 게 없었다. 그래서 월요일은 월월월, 강아지까지 싫다고 짖는 날인가? 화요일은 불 화를 쓰는 날이라 그런지 화가 난다. 수요일은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가볼까? 등의 말장난으로 가득한 일기를 쓰기도 했다. 


 당시에는 일기 쓰는 게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어서 억지로 이런 일기를 썼는데 지금 그 당시의 일기를 보면 쓰기 싫어했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 까지 재밌다. 나는 그야말로 글 짓기를 통한 일기를 썼기에 역설적이게도 일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숙제 검사를 위한 일기 쓰기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일기장은 나의 대나무 숲이 되어 사춘기 시절의 예민함을 달래주는 나의 휴식공간이 되었고 취준 시절의 땅굴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태교일기, 육아일기를 지나 아이와 함께 크는 성장일기가 되어가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아이에게도 일기 쓰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 1학년의 보통날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만났거나 재미있는 게임을 했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은 날은 일기 쓰는 게 꽤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엉터리 이야기를 써도 맞춤법 정도만 수정해 주고 덮는데 이 날의 일기는 내 마음에 반짝하고 다가왔다. 아이는 별로 쓸 게 없어서 대충 적었다고 했는데 쓸 내용이 없어서 그야말로 글 짓기가 되어버린 일기가 난 마음에 들었다. 너무 별 일이 없어서 지루하고 재미없는 하루였지만 괜찮았다고 하루를 긍정하는 일기. 내일은 내일대로 특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담긴 일기가 나는 정말 잘 쓴 일기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내일을 기대하는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좋은 날을 경험해 본 사람은 좋은 날에 대한 기억이 있다. 작은 성공 경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패를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실패에 그치지 않고 계속 노력하면 나아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어릴 때일수록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통해 그 과정과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아이는 몸치이다. 동작을 외우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남들보다 어색하고 느린 편이다. 어린이집에서 매년 열리는 학습발표회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공연은 춤과 노래였는데 우리 아이에겐 동작을 익히는 일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나는 아이가 동작을 완벽히 외우고 익숙해질 때까지 눈으로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발표회 날이 얼마 남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집에서 해 볼 수 있게 몇 번 시켜보았는데 잘 모르겠다고 보여주지 않았다. 초조해진 나는 선생님께 여쭤봤다.


 "우리 아이가 집에서는 전혀 율동을 보여주지 않는데 잘 따라 하고 있나요?


선생님은 조금씩 아는 부분을 따라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아이는 내 걱정이 무색하게 발표회 날 정말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근데 매일매일 두 번씩 연습하면서 익숙해지니까 할 수 있게 되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하는 건 할 수 없었지만 매일 조금씩 선생님이 알려주신 건 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된 거야!"


이날의 경험은 앞으로 겪게 되는 작은 어려움을 하나씩 격파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영어유치원을 처음 갔을 때의 낯섦도, 아무리 뛰어도 넘을 수 없었던 줄넘기도 아이는 하니씩 이겨내며 할 수 있는 목록으로 바꿔 나갔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계를 긋는 대신 조금씩 하다 보면 결국엔 해 낼 수 있다는 대단한 깨달음을 6세 때부터 경험하며 자신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여기며 내일에 대한 긍정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내가 한 일은 없다. 도리어 아이의 도전과 노력, 성장을 통해 나를 긍정하고 나 또한 내일을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일은 내일대로 특별할 테니까.



    

오늘이 별로였다면 내일을 기대해보자.

단, 오늘보다 조금 더 노력하는 내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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