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힘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만났거나 재미있는 게임을 했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은 날은 일기 쓰는 게 꽤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엉터리 이야기를 써도 맞춤법 정도만 수정해 주고 덮는데 이 날의 일기는 내 마음에 반짝하고 다가왔다. 아이는 별로 쓸 게 없어서 대충 적었다고 했는데 쓸 내용이 없어서 그야말로 글 짓기가 되어버린 일기가 난 마음에 들었다. 너무 별 일이 없어서 지루하고 재미없는 하루였지만 괜찮았다고 하루를 긍정하는 일기. 내일은 내일대로 특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담긴 일기가 나는 정말 잘 쓴 일기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내일을 기대하는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좋은 날을 경험해 본 사람은 좋은 날에 대한 기억이 있다. 작은 성공 경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패를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실패에 그치지 않고 계속 노력하면 나아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어릴 때일수록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통해 그 과정과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아이는 몸치이다. 동작을 외우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남들보다 어색하고 느린 편이다. 어린이집에서 매년 열리는 학습발표회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공연은 춤과 노래였는데 우리 아이에겐 동작을 익히는 일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나는 아이가 동작을 완벽히 외우고 익숙해질 때까지 눈으로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발표회 날이 얼마 남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집에서 해 볼 수 있게 몇 번 시켜보았는데 잘 모르겠다고 보여주지 않았다. 초조해진 나는 선생님께 여쭤봤다.
"우리 아이가 집에서는 전혀 율동을 보여주지 않는데 잘 따라 하고 있나요?
선생님은 조금씩 아는 부분을 따라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아이는 내 걱정이 무색하게 발표회 날 정말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근데 매일매일 두 번씩 연습하면서 익숙해지니까 할 수 있게 되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하는 건 할 수 없었지만 매일 조금씩 선생님이 알려주신 건 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된 거야!"
이날의 경험은 앞으로 겪게 되는 작은 어려움을 하나씩 격파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영어유치원을 처음 갔을 때의 낯섦도, 아무리 뛰어도 넘을 수 없었던 줄넘기도 아이는 하니씩 이겨내며 할 수 있는 목록으로 바꿔 나갔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계를 긋는 대신 조금씩 하다 보면 결국엔 해 낼 수 있다는 대단한 깨달음을 6세 때부터 경험하며 자신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여기며 내일에 대한 긍정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내가 한 일은 없다. 도리어 아이의 도전과 노력, 성장을 통해 나를 긍정하고 나 또한 내일을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일은 내일대로 특별할 테니까.
오늘이 별로였다면 내일을 기대해보자.
단, 오늘보다 조금 더 노력하는 내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