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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Aug 31. 2020

그림일기로 표현하는 초등학생의 감정

나라고 다르지 않아.

코로나 19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아이와 함께 하는 집콕 생활도 길어지고 있다. 애초에 아이의 취학 때문에 휴직을 한 것이니 나는 휴직 목적에 맞게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나 이렇게까지 목적에 충실한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웃음) 그럼에도 아이와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내면서 나는 미세하게 자라는 아이의 성장을 현미경 보듯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2학기에는 학교에 좀 더 자주 나가겠지, 하는 기대는 다시 한번 무너졌지만 원격수업의 과제인 그림일기를 통해 본인도 모르겠는 감정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신랑이 본인 생일이라 특별히 일찍 퇴근 한 날, 아이는 매우 기뻐했지만 결론적으로 아이가 기대한 만큼 기분 좋은 하루는 아니었다. 뭐 때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아이는 일기를 마무리했고 나는 모든 기분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좋지 않은 기분까지 일기장에 표현한 건 정말 잘했다고 칭찬했다. 짧은 내용이었고 본인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인과관계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미묘한 그 감정을 나도 여러 번 느껴봤기 때문이다.





 뭔가 기분 좋은 소식인데 나만 별로인 기분, 기대했던 일인데 생각만큼 즐겁지 않은 기분의 원인은 간단하다. 내 기대만큼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를 따로 만나는 날, 친구와 무엇을 할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매일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만나는 날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아서 실망할 수도 있고 그날의 날씨가 별로여서 우중충한 기분이 들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만큼 친구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미세하게 포착했기 때문에 속상함이 와락 안겨 들었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내가 기대한 만큼 상대의 크기도 같기를 바라는 마음. 꼭 기브 앤 테이크를 취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멋대로 실망하는 마음을 나도 어쩌지 못한 날이 많았다.


아이는 아빠가 일찍 왔으니 본인과 신나게 놀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아빠는 아빠대로의 스케줄과 기분이 있지만 둘째는 그걸 무력화시키는 무기인 태생적 애교로 아빠를 독점해버린다. 첫째는 이제 노력해야 관심을 쟁취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다. 아빠라는 존재 자체에 기대했던 만큼 자신의 존재에 기쁨의 화답을 기대한 아이는 결국 기대만큼의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없었다. 첫째는 겉으로는 실망한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 까지 내가 취했던 태도와 비슷했다.


 대개 남들이 좋다 하는 물건이나 사람은 내게도 좋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격하게 나의 좋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대중적인 취향을 따르는 것이나 누구나 좋아하는 인싸에게는 평균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그치거나 때로는 나는 관심 없다는 표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내가 관심을 드러내는 분야는 조금은 마이너한 분야나 나 자신이 조금 더 돋보일 수 있는 딱딱한 공부 쪽인 경우가 많았다. 인싸들 만큼은 아녀도 누군가의 관심이 나 역시 비슷하게는 필요했기 때문에 블루오션 전략을 썼다. 그렇다고 그것이 취향을 속이거나 싫은데도 좋은 척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나도 좋은 경우가 많은데 많은 무리에 휩싸여 나도 당신이 좋아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정도?




나는 그래서 신랑에게 종종 부탁한다. 첫째에게도 표현을 많이 해주라고. 언니라서, 동생에게 양보해야 할 상황이 잦고 실제 어른스러워서가 아니라 상황이 아이를 의젓하게 만드는 것이니 표현하지 않는 욕구라도 기본적으로 채워줘야 한다고 나의 마음을 빗대어 이야기한다. 동생이 없었다면 여전히 우리의 하나밖에 없는 어린아이일 텐데 동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물리적인 나이와 관계없이 언니가 된 우리 첫째. 겨우 한 살 차이인데 동생보다 어른스러움을 요구받는 첫째에게 한 명이었으면 응당 받아야 할 관심을 부족하지 않게 주고 싶다. 귀여움을 담당하는 건 둘째인지라 본인이 귀여움을 어필하고 싶은 순간에도 더 귀여운 동생에 밀려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담당할만한 자리를 찾아가는 첫째라는 존재. 첫째의 자리는 의젓함과 총명함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은 계속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공부에 두각을 보이려는 마음이 어쩐지 나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그렇다고 나의 어린 시절이 지금 우리 아이들과 완벽히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의 일기를 본 그날만큼은 너무나 내 모습 같아 마음이 쓰였다.


왜 기분이 별로인지 그 이유를 몰랐으면 좋겠다. 슬픔을 머금은 자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언제나 나보다 나은 존재니 욕심을 내본다면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체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아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나대로 씁쓸하고 소외된 기분을 아이에게 투사하며 안쓰러워하기보다

명확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담아 표현하는 아이가 되도록 섬세하고 다정한 역할에 집중해야겠다.


나도 아빠가 일찍 오길 기다렸어.
 내가 기대한 만큼 충분히 나랑 시간을 보내줘.


자신을 기다린 아이로 인해 존재의 인정을 받은 아빠, 일찍 온 아빠 덕에 행복한 아이들, 첫째와 둘째의 고유성을 발휘하며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다음 칼퇴 날(?)을 기대해본다. 덕분에 나도 자유를 누리며 행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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