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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Oct 21. 2020

투자자, 나는 무엇을 잃었나?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증권 앱을 들여다보니 한숨만 나온다. 몇 주째 파란불이 가시질 않고 있다. 2020년 1월부터 날짜 설정을 하고 실현손익을 누르면 꽤 만족스러운 금액이 나온다. 이 정도 벌었으면 손절하는 것도 괜찮지.라고 생각하다가 꼭 내가 팔고 나면 다음날 귀신같이 오르던 기억이 생각나 미련을 놓지 못한다. 어제 유튜브에서 진행자는 코스닥은 이래서 10개월만 하는 거라는 말을 했다. 뭐?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요건 3억 원 때문에 코스닥 분위기가 이런 건가 했더니 매년 이랬다고? 왜 진작 얘기를 안 해준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게스트로 나오는 애널리스트도 매년 이런 분위기가 짜증 난다며 곁들였다. 네에? 매년이라고요? 왜 미리 말씀 안 해주셨나요? 뭐, 물론 이제는 대형주로 갈아타시라는 말씀을 계속하시긴 했으나 매년 코스닥은 10월부터 털린다고 직접적으로 얘기해주셨으면 좋았잖아요... 나는 속으로 툴툴댔다. 분명 주도주에 투자했고 정부 주도의 수소, 5G, 전기차 업종에 투자했는데... 왜 나는 갑자기 투기 개미가 된 느낌이지? 최근 자동차도 분위기 좋아서 합류했더니 괜한 악재들을 이제야 털고 타이밍 참. 나는 요즘 매일 밤, 그냥 털어버리자.!라고 결심한다. 이렇게 신경 쓰느니 다시 시작하는 게 낫겠어 라고. 그런데 아침 장이 시작되면 밤의 결심은 온 데 간데없다. 급히 돈 쓸 일도 없는데 그냥 묵혀두지... 하면서 끝내 팔지 못하는 날을 반복하고 있다. 이래서 주식하지 말라고 하는 건가? 잠시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한동안 독서량도 줄었다. 특별히 보고 싶은 책은 없는 반면, 투자할 종목을 공부한다고 챙겨볼 리포트와 유튜브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장에서는 종목 공부도 리포트도 소용없다. 그냥 다 파는 분위기고 매년 이렇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냐 싶은 거다. 약간 허탈해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무리하게 돈을 끌어다 넣은 것이 아니라 지금은 시간을 투자한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과정이고 배움이라 생각하면서. 애널리스트 보고서 보던 시간에 다시 책을 집어 든다. 이쯤 되니 트렌디한 글보다는 묵직한 고전을 읽고 싶어 진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꽉 붙잡아줄 책이 뭐가 있을까, 하면 고전이 답이다. 분명히 내 취향일 것 같았는데 여전히 완독 하지 못한 책이 수도 없이 있으니 그 책들 중 하나를 다시 보기로 한다. 선택된 책은 월든. 하버드 졸업생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숲 속에 들어가 월든 호숫가에서 집필한 책으로 내가 고등학생일 때 유일하게 젊은 분위기를 풍겨 좋아했던 정치 선생님이 강추한 책이다. 나는 그때 내용도 모르면서 서점에 가서 월든 책을 찾았고 고리타분한 표지와 두께에 놀라 내려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월든이라는 책을 이야기하길래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며 주문했다. 숲 속에서 무소유 정신으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살았던 하버드생이라니 그의 지적이고도 상큼한 깨달음이 기대가 되었다. 어떤 힐링 포인트가 있을까? 기대하며 읽어 내려간 월든은 내가 생각한 힐링 에세이는 아녔다. 숲 속의 경제학으로 시작해서 한동안 자연예찬을 끝도 없이 쏟아냈다. 준비되지 않은 나는 무차별적으로 지저귀는 새소리와 익숙지 않은 나무, 풀들의 네이밍에 결국 나자빠졌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200925.22015007629

그렇게 멀어진 월든을 큰 맘먹고 다시 집어 든 것이다. 내 투자 수익률이 지하를 뚫고 있어서는 아니다. 소로는 숲에서 대단한 치유를 경험하고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얻기 위해서 들어갔다기보다 삶의 정수를 찾기 위해 들어갔다고 했다.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v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출처: http://americanliteraryblog.blogspot.com/search/label/Henry%20David%20Thoreau


내 삶의 정수는 무엇일까?

내 삶에서 에센셜 한 것은 무엇일까?


월든을 읽으며 생각해 보고 싶었다. 조용히 집중하고 싶었다. 한동안 많이도 기웃거렸다. 많이도 공부했다. 이것저것 많이도 시도했다. 분명 시작할 때는 목표점이 있었고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쉬어가는 타이밍이 되면 꼭 길을 잃은 것처럼,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는 지역에 들어온 것처럼 버벅거린다. 내가 여기 왜 왔더라? 버퍼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잠시 버퍼링은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쉬어가면서 다시 정비하면 되는 거니까. 그러기에 독서만 한 것이 없고 고전만 한 책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잔고/손익 창을 닫고 다시 책을 편다.


나 역시 하나의 바구니, 올이 섬세한 바구니 하나를 엮어놓았으나 그것을 남이 살 만한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경우에 그 바구니는 역시 엮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남이 살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팔지 않아도 될 것인가를 연구했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월든 p40 /은행나무]


내가 엮어놓은 바구니가 상품가치가 없어 보인 때는 허다하다. 때로는 그럴싸해 보인적이 있지만 막상 팔려고 내놓으면 어딘가 부족한 것들만 눈에 띄었다. 나는 몰랐다. 내가 만든 바구니는 바구니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엮을 가치가 있었고 굳이 남의 선택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과대평가했던 삶을 생각해본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었는지를.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조용히 헤아려본다. 정말 초라한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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