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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Oct 22. 2020

마음만 앞서는 엄마

지상 최대의 미션, 친구 만들어주기

연속 등교 4일째.


우리 아이는 올해 초등학생이 되었다. 올초부터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들썩이면서 유치원 졸업식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입학식마저 생략되었지만 어쨌든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주 1회 등교라는 세상 처음 있는 수업방식에 다행히, 하지만 조금 슬프게도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뤄진 주 4회 등교는 반신반의였다. 이러다 또 언제 주 1회로, 아니 매일 원격수업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제라도 매일 학교 다니며 초등학생 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뒤섞였다.




우리는 올 초에 이사를 왔다. 복직하기 전 친정과 합가를 했고 학교와 학원 모두 부모님이 돌봐주시기 편한 동선으로 자리를 잡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동네 친구를 사귀고 놀이터에서 만나는 엄마들과 적당히 눈인사를 하며 안면을 틀 계획이었다. 유치원을 다른 곳에서 다녔으니 유치원 친구는 이곳에 없었다. 놀이터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 8세에 놀이터 친구라니.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싶었지만 어쩌겠나? 방법이 없으니 놀이터에서 우선 친구를 만들고 정보를 얻어 학원을 다니고 그렇게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내 모든 계획을 틀어놓았다. 놀이터에는 단 한 명의 아이도 없었고 우리 역시 어디도 나갈 수 없었다. 친구 만들어 주기는 실패였다.




 우리 첫째는 친구가 제일 최고인 아이다. 단짝 친구가 있고 없고에 따라 얼굴색이 달랐다. 맹모삼천지교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 주려고 기관을 옮겨 보기도 했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어렵게 불편하게 유치원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엄마들과의 관계가 편하지는 않았다. 내 관심사를 따라서 만난 친구가 아니었기에 내 마음은 집에다 두고 만났다. 그냥 아이 친구 엄마라는 생각으로 얼빠진 미소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이런저런 시간을 함께 했고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다 생각했다. 약간은 언니, 동생의 느낌도 생긴 때였다. 그런데 이사를 하는 바람에 모든 것은 다시 원점이 되었다. 나는 데면 데면 아이 친구를 따라 다시 엄마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 복직 전 지상 최대 과제 앞에 있었다. 하나 만날 기회조차 없는 2020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겠나?


아이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선 엄마가 철판을 깔아보자 생각했다. 어쨌든 학교 입학을 했고 주 1회 등교이지만 1학년 등하교는 늘 보호자가 함께 하니 이 시간을 무조건 노려야 한다. 등굣길에 나는 세차게 눈을 굴렸다. 누가 우리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엄마가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짧은 시간에 스캔하느라 정신없었다. 아이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어떤 아이가 같은 반 일지, 어떤 아이가 우리 아이처럼 조용하고 모범적 일지, 어떤 엄마가 나와 비슷한 취향인지 파악하기가 등교하는 날 나만의 미션이었다.


미션을 할 수 있는 날 자체가 많지 않았다. 주 1회 등교도 이루어지지 않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 반에 7명씩 등교를 하니 얼굴을 아는 동성친구는 3명뿐이었고 모두 할머니와 등교를 했다. 하아. 같은 반 친구 엄마를 만나는 것은 실패. 그러던 어느 날 내 뒤에서 나를 향해 뛰어오는 발걸음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안녕하세요, OO 어머님이시죠?" 한다. "아.. 네. 안녕.. 하세요.." 누가 나를 아는 척할 수 있는지 머리를 굴려본다. 고마운 그분은 아이가 다니는 학원 친구 엄마였다. 같은 반은 아녔지만 셔틀을 같이 타고 다녀서 이야기를 나눴던. (그럼 이미 친구가 생긴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그냥 셔틀을 같이 타고 다닐 뿐인데 더 친해지려면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 같이 놀게 해야 한다. 우리 집에 초대도 해야 되고.)


그럼 이제 드디어 친구가 생기는 건가?

아이에게도, 내게도?


결론은 아니었다. 나는 좀 더 무리를 해서 연락처를 나누고 아이들 만남을 주선해볼까 싶었는데 코로나 시대에 어쩐지 너무 오버 같았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는 그런 오바육바를 해보지 싶었는데 아이도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는지 그다지 원하는 것 같지 않았다. 모르겠다. 억지로 친구를 만들면 뭐하리. 괜히 열을 내어 관계를 만들다가 애꿎은 사람 원망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자연스럽게 하자며 마음을 놓았다.




자연스럽게 다니며 동네 할머니 친구들이 생겼다.

내가 원한 친구는 아녔는데 뭐랄까 편안했다. 내가 아주 애쓰지 않아도 됐고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아도 됐고 무리해서 잘 보이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아유 됐다. 우리 애가 알아서 좋은 친구 사귀겠지. 엄마가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봤으니 그걸로 내 역할을 다했다 싶었다.


그리고 오늘 등교 4일째.


학교 정문 앞에 엄마들이 빽빽하다. 나는 더 이상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오며 가며 이야기를 나눈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아이를 기다린다. 멀리서 귀여운 핑크 양모 털이 보인다. 손을 흔들어 아이를 맞이했다. 손잡고 걷는다. 몇몇 엄마들은 다른 아이들을 챙기며 어딘가로 함께 간다. 부럽기도 하고 그냥 지금이 편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마음이다. 집 근처에 이르자 놀이터에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동안 놀이터에는 어린이집 다녀오는 꼬꼬마들 뿐이었는데 오늘은 우리 아이 또래 아이들이 꽤 있다. 한 번 가볼까? 그때였다. 어디선가 우리 아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 건.


들리긴 했지만 우리 아이를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놀이터에서 누가 우리 아이 이름을 부르겠는가? 워낙 동명이인도 많았다. 그런데 이름을 부른 아이가 미끄럼틀 아래서 얼굴을 내밀자 우리 아이도 뭐라고 이름을 부르며 뛰어간다. 그리고 흥분하며 말한다.


"엄마, 우리 반 oo이야!!!"


그 순간 놀이터는 내게 환희의 축제장이었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아니 내 귀에는 분명히 들렸다.

나는 버선발로 뛰쳐나가는 사람의 촌스럽고 과장된 몸짓으로 그 아이의 엄마에게 다가갔다. 분명 그렇게 기쁘게 다가갔는데 실상은 마음과 다르게 점잔을 빼느라 엉덩이만 쑥 빠진 채 엉거주춤한 모습이 되었다.

당장 번호를 따고 싶었는데 핸드폰을 꺼내 연신 화면 잠금만 해제할 뿐이었다. 왜 자꾸 잠기는지 모르겠지만 핸드폰 화면은 계속 잠겼고 번호를 물어보려는 타이밍에 어버버 하며 헤어지고 말았다. 다음에 놀이터에서 또 보자는 말만 하고.


아쉽다.

아쉬워.

아쉬웠지만 한편으로 과하지 않고 나이스 했다고도 생각했다. 하하하하하 핫.

나는 몇 개월을 아이 친구 만들어 준다고 부산스럽게 혼자 결심하고 노력하고 눈알만 굴렸는데 결국 친구를 사귀는 건 본인이었다. 알면서도 휴직한 기간에 뭔가 내 몫을 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닐 텐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이가 소개해 준 엄마와 인사를 나누는 것뿐일 텐데.


며칠 전 친구를 만나 아이 친구 만들어 주느라 맞지 않는 엄마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고 얘기해주고 왔으면서 나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뭐...그러니까 나중에 나를 타산지석 삼으라는 의미라고 해두자. 엄마가 백날 나서봤자 아이의 일은 아이 스스로 해내는 게 가장 빠르다는 나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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