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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Oct 26. 2020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일까?

취향을 드러내며 서로를 다시 보다.

충남 예산, 내비게이션에 도착지를 설정해보니 예상시간은 1시간 30분. 충청남도인데, 예산인데 1시간 30분밖에 안 걸린다니 생각보다 가깝구나.라고 생각했다. 신랑에게 목적지를 공유하며 다음 주에는 여길 가자고 말했다. 1시간 30분밖에 안 걸려. 생각보다 가까운 거 같아라는 말을 덧붙였다.


충남 예산의 구옥을 개조한 카페가 우리의 목적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카페에서 하는 플리마켓이 나의 목적지지. 플리마켓을 일부러 지방까지 찾아갈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플리마켓에 가서 득템 하는 경우가 없는데. 출처를 모르는, 브랜드를 모르는 제품을 왠지 비싸게 사 오는 것 같은 느낌의 플리마켓에 난 잘 혹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 내가 이번엔 지방까지 찾아가는 이유는 아끼는 동생이 처음으로 셀러로 참여하는 마켓이기 때문이다. 후배는 전문 셀러는 아닌 데다 한 번도 무엇을 팔아본 적이 없는 아이다. 아마 판매는 아르바이트로도 해본 적이 없을 아이.



 잠시 직장을 쉬면서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여유를 만끽하는 후배에게 말했다. 네가 늘 해보고 싶었던 것들 있잖아. 늘 꿈꾸던 것들. 단번에 그 길로 갈 수는 없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경험해보는 게 어때? 찾아가 보고 탐문하고 기록하고. 난 이 정도의 이야기를 툭 던졌다. 음. 아마 좀 자주 말했던 것 같긴 하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후배의 반응은 늘 그저 그랬다. 난 그런 반응을 많이 봤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자신이 팔로우하는 카페에서 마켓이 열리는 것을 보고 즉흥적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직장인이었던 네가 무엇을 파는 거냐고 물었다. 후배는 지원동기를 내게 그대로 전해 주었다.


"취향이 담긴 물건을 소비하는 것에서 위로와 즐거움을 찾는 사람입니다. 엄마는 집에서 자수를 놓으시는 취미를 가지고 계신데 이것을 누군가와 나누는 기쁨으로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저의 취향을 판매하는 소확행을 꿈꿉니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용기가 솟았을까? 난 마냥 신기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와 숙소를 그저 둘러보고 시장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그곳의 참여자가 되었다. 너무 좋아하면 그럴 수 있는 걸까?


그날 본인의 취향을 살려 꾸민 마켓 데스크


 지난달 독서모임을 후배의 집에서 했다. 늘 본인만의 취향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직접 그 아이의 방을 방문해보니 정말 취향 가득이었다. 나는 특별히 선호하는 디자인이나 애착을 가치는 대상이 잘 없는데 이 친구는 도토리를 좋아했고 다양한 천으로 여기저기 툭툭 걸치는 것을 좋아했다. 늘 한결같은 취향과 따뜻한 말씨, 남을 배려할 줄 알면서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아이였다. 한 인간으로 너무 매력적인 아이였지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언제나 자신만의 향기를 발하는 것은 후배나 나나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무색무취의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하는 일도 먼 훗날이라 생각할 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벌인 것이다. 갑작스럽게 준비해야 돼서 정신없다고. 하지만 너무 설레고 행복하다고. 이렇게 일이 순조롭고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언니가 등 떠밀어서 이렇게 됐다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나도 어벙 벙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자극했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그래도 감사했다. 어떤 자극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로 인해 용기를 낼 수 있었다니. 내가 그렇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니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살면서 많은 만남을 가진다.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만남이 있고 기억조차 없는 만남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만남 또한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 이제는 아는 사람만 만나자, 보증된? 사람 하고만 관계하자 하며 만남에 회의적이었던 시간도 있었다. 실제로 누군가를 만날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없는 때가 찾아오기도 한다.(지금은 코로나 19로 만남이 더욱 조심스럽다.)


그런데 요즘 나는 참 고마운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억지로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의 좋은 점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만남이랄까? 한 달에 한 번 하는 독서모임이 그렇고 어쩌다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과의 이야기도 그렇다. 새로운 사람들이 아닌데 왜 유독 요즘 그런 느낌이 드는가 생각해보면 코로나 19가 가져온 단절의 시간에 역설적이게 모두 본질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자극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즐거웠고 발전했지만 동시에 공허한 시간도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세상이 원하는 것, 그리고 무리가 원하는 것이 경계 없이 뒤섞여 오히려 길을 잃을 때가 많았다. 어쩌면 너무 많은 자극에 휩싸여 내 생각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질투와 못난 자아비판으로 얼룩덜룩 해질 때도 많았다. 그런데 뜻밖의 멈춤으로 나는,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은 자신을 좀 더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된 듯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취향을 소중하게 드러냈다. 나는 그런 발견이 즐겁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소소한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이야기해 줄 때마다 벅차다. 그리고 그 길에 내가 함께 갈 수 있어서 기쁘다. 나는 고작 토닥토닥해주는 응원군이지만 애초에 그게 바로 나의 꿈이었으니까.

내겐 나를 따라오라고 말할 수 있는 대단한 커리어도 없고 배짱도 없다. 이 분야는 내 구역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깊이도 딱히 없다. 다만 어떤 길이든 페이스 메이커로 끝까지 같은 속도로 함께 해주는 것은 자신 있다. 내 인생을 경영하는 것 이외에 내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딱 한 가지다. 나로 인해 내 주변이 좀 더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것. 그래서 내 곁에 항상 사람들이 모인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플리마켓을 기념하며 우리 가족, 그리고 후배들과 단체사진


더 나이가 들어 경험이 많아져도 충고, 조언, 평가, 비판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충남 예산이든 강원도든 가까운 거리라 여기며 즐겁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내게도 행복임을 이날 알았다. 백 마디 응원의 말보다 한 번의 실행이 더 실감 나는 함께의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배운 참 의미 있었던 날이었다.


후배의 소소한 취향이 내 마음에 뜨끈한 울림을 준다.

그러고 보면 소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소소한 것에는 사실 원대한 의미가 가득 품어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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