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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Nov 05. 2020

블로그는 자랑이 아니라 상처였다.

늘 나로 살 수 있는 비결

검정 후드티를 입고 검정 레깅스 위에 짙은 색감의 양말을 신은 늘씬하고 키 큰 아이가 들어왔다. 캐나다에서 2년 반을 살고 와서 그런지 아니 한국에 온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동네 애엄마 같지 않고 세련되다 느꼈다.


"아니 너, 왜 이렇게 세련됐어?"


5-6년 만에 만난 후배에게 처음으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 문장이 튀어나왔다. 보자마자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 들어 달리 다른 말이 나올 수 없었다. 특별히 궁상맞고 육아에 찌든 모습을 생각하거나 불행한 모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그럴 리가!) 요즘 내가 만난 애엄마(=후배)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키 크고 세련된 혜정이는 대학 때 만난 후배다. 그때도 시원시원한 말투와 서구적인 외모로 쿨한 느낌의 아이였지만 만나면 늘 내가 먼저 툴툴거렸다. 내가 한참 앓는 소리를 하고 나면 그제야 '언니, 사실 저는 요즘요...' 하면서 속내를 털어놓는 아이였다. 서로의 결혼 소식을 알리며 번갈아 자리를 빛내주고 우린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특별히 마음에서 멀어진 게 아니라 임신, 출산 과정을 거치며 여자들의 자연스러운 만남, 이별의 수순이었달까? 그러다 혜정이 말 마따나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사이가 되어버렸고.


그동안 혜정이는 캐나다로 갔고 아이를 두 명 낳았다. 꽤 오래 캐나다에 있는 듯했는데 또 금방 한국에 온 것 같고 그렇게 남의 일은 시간 개념이 정확하지가 않다. 어쨌든 우리는 다시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며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메시지가 왔다. 내가 사는 곳을 확인하고 이사 가면 자주 보자고.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우리는 연결된 사람이 많았고 주변의 근황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다. 혜정이는 내가 먼저 힘든 얘기를 꺼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다면 굳이 우리 집으로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 꺼내놓을 것이 없었다.


"언니는 항상 언니 자신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도, 결혼해서도, 엄마가 돼서도 그 역할 말고 그냥 언니 자신. 그게 참 부러워요. 나는 이제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줄 '내가'없어요. 내 자신이 사라졌어요."


이렇게 말하는 혜정이의 모습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땅이 꺼지게 눈물로 보낸 시간은 이미 숱하게 지나갔기에 그렇게 건조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순간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맞다. 나는 늘 나를 챙기려고 노력했고 '나 자신'을 가장 잘 가꾸려고 애쓴 사람이긴 하다. 그래도 생각해봤다. 정말 늘 내가 1번이고 나는 늘 나 자신이었는지. 결혼 준비부터 신혼생활, 임신, 출산의 과정에 일어난 서럽고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를 다 풀어서 무엇하리. 나도 처음 겪는 일에 어질어질했고 결혼해서 더욱 외롭다 여긴 날들은 지금 생각해도 춥다.


나는 살기 위해서.

내가 나이기 위해서 블로그를 했다.


일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지만 퇴근하기 위해서 출근했고 혼자 먹는 밥이 싫어서 떡볶이와 만두를 매일 사다 날랐다. 퇴근하면 깜깜한 거실에서 늘 TV를 켰는데 애매한 저녁시간에 재밌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지금처럼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있었다면 좀 덜 외로웠으려나? 나는 대신 블로그를 열어 사이버 이웃님들과 만났다. 블로그 세상은 늘 훈훈했다. 그들도 나처럼 외로웠고 그들도 나처럼 신혼이었는데 혼자 저녁을 먹고 있었다. 지금처럼 나를 브랜딩 하기 위해 또는 무엇이라도 토해내며 글을 쓰기 위해 블로그를 한 것이 아니고 '여기 사람 살아요'라고 그저 손을 흔드는 용도였달까? 그래도 꾸준함이 보배라고 아주 여러 날 이어온 기록들 덕에 내가 다른 역할에 파묻히지 않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나로 보였나 보다.


만약 나를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는 것이라면 그래... 나는 그때부터 나를 잊지 않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


혜정이는 늘 나를 잃지 않는 모습이 부럽다고 말했으니 나는 으쓱하며 훗. 그런가? 하며 겸손 떨면서도 내심 기분 좋아야 하는데 희한하게 내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외로웠던 시간들이 떠올랐고 부단히 애쓰며 아무것도 아닌 블로그를 꿀단지처럼 소중히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이 오히려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10년 한 블로그 그게 뭐라고.

브랜딩 되지도 않은 블로그 뭐에 쓴다고.

아무리 붙잡고 있어야 신변잡기 가득한 그 블로그 뭐라고 나는 이렇게 애착을 가지나... 현타가 오는 때가 많았다.


사실 블로그는 내게 훈장이 아니라 상처였다. 좋은 날의 기록이 훨씬 많지만 좋은 날을 기록하는 그 날은 안 좋은 날이 더 많았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좋은 기억을 떠올렸고 쓰기 좋은 말을 주워 모았다. 정말로 속상한 날엔 꾹 참고 그 일을 쓰지 못했고 하루 이틀 묵혀서 좋은 경험으로 승화시켜 쓰곤 했다. 그런 공간이라 난 버리지 못한다. 브랜딩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지만 나는 안다. 어떤 제목의 포스팅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그날의 분위기, 내 진짜 속마음 나는 사진만 봐도 다 떠오른다.


그래 혜정아.

나는 줄곧 나로 살았어.

딸로,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살면서도 힘든 날은 다른 누가 아닌 내가 날 보듬어야 했으니까.

너도 지금은 네가 없이 역할만 남은 것 같이 여겨지지만 늘 너를 일으키는 '작은 너'를 어느 날,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고단하고 외로운 너를 네가 잘 알아봐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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