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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Nov 07. 2020

그런 건 나도 하겠다.

우리 엄마와 나는 죽이 잘 맞았다. 엄청나게 친밀한 모녀 사이는 아닌데 오히려 그런 이 잘 맞았다. 엄청나게 친밀하려고 하지 않는 것.? 상대방의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적당히 토닥토닥해주는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 물론 어릴 때는 적당한 거리 때문에 엄마에게 서운한 기억이 있기도 하지만 커서 나를 보니 그것은 그냥 성격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일부러 선을 긋거나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는 늘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


이런 성격이 비슷해서 엄마랑 비슷한 온도로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쇼핑하면서도, 주변 사람을 얘기하면서도 미지근한 반응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그래? 그렇구나 의 호응. 상대방이 대단한 것을 알아내 들뜬 마음으로 제일 먼저 나에게 이야기할 때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식의 반응으로 김 빠지게 하는 것이 엄마와 나의 특기였다.


"알고 있었어?"라고 물으면

"아니? 그냥 그럴 것 같아서."

또는

"아 그거 옛날부터 있던 건데. 몰랐어?"

"그래 그런 거 많더라."

"그래 요즘 많이 하더라."


이런 식으로 그다음 말을 뚝 끊기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엄마와 나의 특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약에 반대로 상대방이 이런 반응을 보이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거나 샐쭉하게 삐져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완전히 같은 경우는 아닌데 어쨌든 엄마나 나의 기분은 작고 미묘한 것에 쉽게 움직여서 기분히 확 상하는 것이다.


 엄마와 나를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이런 줄 여태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엄마만 이렇다고 생각해왔다. 엄마는 늘 차가운 태도로, 관심 없다는 자세가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그래서 작은 시도와 경험, 세세한 일정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시끄러운 것을 지독히 싫어해서 하루를 조잘조잘 얘기하다 혼난 적도 있었는데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의 하루를,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싶어도 모자란데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을 막다니 엄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앞으로 나는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꽤 오랜 시간 충격이었다.



그런데 어쩌지?



나도 그랬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것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여러 각도로 생각해봤는데 이건 그냥 태어날 때부터 그런 성향인 것 같다. 우리 둘째도 나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조금 확신이 들었다. 다만 내가 그런 엄마의 성격에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고 '엄마의 성격'이라고 나름대로 카테고리를 만들어 두어 인지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달랐다. 그럼에도 다 같이 식사하는 저녁시간, 유난히 말이 많은 첫째의 이야기를 그만 듣고 싶어서 그만 좀 얘기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신 상처 받은 기억이 있으니 분위기를 고려해 얘기하기는 했지만 정말 엄마랑 똑같다고 생각했다. ㅠㅠ


그런 엄마에게 어느 날 또 비슷한 말을 들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그게 나를 향한 것인지 타인을 향한 것인지도 가물가물한데 희한하게 기분이 상했다.


"그런 건 나도 하겠다."


바로 이 말이었다.


이 말은 내 머릿속에도 있던 말이었다. 누군가의 결과물에 대해, 누군가의 자랑에 대해 굳이 내뱉지는 않지만 늘 한구석에 세팅된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엄마를 통해 내뱉어진 순간 엄마가 다르게 보였다.


'엄마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면서...'


엄마는 딸에게 편하고 즐겁게 툭 던진 말이었다. 어떤 의도도 평가도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살아온 시대는 무엇이든 도전하는 지금과는 달랐으니까 경험도 적고 생각의 폭도 작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엄마는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내가 늘 속으로 생각했던 '그런 건 나도 하겠다'라는 한 마디가 밖으로 내뱉어짐으로써 확실히 내 눈에 보인 것이 있었다.


정작 이 말을 내뱉은 사람은 이 일에 대한 아무 노력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엄마도, 나도.

'그런 건 나도 하겠다'의 '그런 것'에 단 1%의 지분도 없으며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조금씩 '그런 것'들에 나의 노력들이 담기면서 이해하게 됐다. 남들 눈에 대수롭지 않은 '그런 일'들이 누군가에겐 대단한 도전일 수 있다는 것을.


재테크도,

스마트 스토어도,

글쓰기도,

작은 취미생활도,

독서모임도,

강의 모집도,

뭐든 말이다.


그 시절 내가 제일 듣기 싫어했던 말은 "이런 건 나도 하겠다"라는 농담이었다. '이런 것'을 결코 하지 않을 사람들이 쉽게도 던지는 말. 누군가 꾸준히 SNS에 올리는 그림에 흘낏 눈길 주며 하는 말들, 독립 서점의 크고 작은 출판물들을 대충 넘겨 보면서 하는 말들. 작은 빵집에서, 수공예 상점에서, 누군가 공들여 만든 것을 들였다 놓으며 하는 말들. 거기 담긴 한 사람의 오랜 시간과 해묵은 초조함과 그럼에도 여전히 만드는 일을 놓지 못하는 마음을 전혀 보지 않는 말들. 재능이나 성공 같은 건 생각보다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이런 건 나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지 않는 일을, 누군가는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p193 [평일도 인생이니까/김신지]


김신지 작가님. 맞아요. 저도 이전에는 결코 해본 적 없었기에 그런 말을 되뇌곤 했지요. 이제는 무엇이든 하고 있으니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저기의 무관심과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에 상처 받으신 분들, 계속하고 있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건' 나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런 거'해보기나 했냐고 응수하며 오늘도 최선을 다해봅시다!


신사임당 님의 말씀도 더불어,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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