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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Nov 11. 2020

눈물 나기 좋은 날씨라...

나보다 먼저 뛰쳐나가줬다면 아무일도 없었을 이야기.

"너는 날도 추운데 애랑 그네를 타고 싶니?"


학원 다녀오는 아이와 놀이터에서 그네를 잠깐 타고 들어온 나에게 친정엄마는 톡 쏘았다.


첫째가 학원을 간 사이 나는 둘째와 도서관에 갔었다. 둘째는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책 6권을 읽고 든든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나 역시 기분 좋게) 간식까지 득템하고 즐겁게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시간은 어쩜 이렇게 빠른지 그렇게 집으로 오는 길 벌써 첫째가 하원 할 시간이라 둘째만 집으로 올려 보낸 터였다. 반갑게 첫째를 데리고 집에 오는 길, 1학년인 아이가 얼마나 고단할까 싶었다. 놀이터는 마침 바로 집 앞이었고 아이는 그네를 좀 타다 가겠다고 해서 몇 번 타고 들어왔을 뿐인데 엄마는 나에게 버럭 했다.


"엄마가 언니랑만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고 자기도 나간다고 난리잖니?"


아니 둘째는 언니가 학원 간 사이에 내내 나와 함께 있는 아이다. 언니가 질투하면 모를까 둘째는 이 잠깐을 이해하지 못하고 할머니를 괴롭히는지 얘기를 하려는데 아이가 없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놀이터에 아이가 없다. 그럼 그렇지. 휴-집에 있는 거겠지? 했는데 멀리서 익숙한 분홍 잠바가 보인다. 아니 우리 아이 옷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혹시나 아이 이름을 불러 보았다.


우리 애가 맞았다.


아이는 나를 보자 울면서 달려왔고 몇몇 사람들이 걱정 반 웃음 반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너 혼자 나가면 어떡하냐는 말과 친정엄마를 향한 원망, 분함의 말이 한꺼번에 뒤섞여 무슨 말이 먼저였는지 모르게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친정엄마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는.


그다음 상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집에 돌아와서 나는 친정엄마에게 끓어오르는 화를 다 표출했다.

추운데 놀이터에서 놀고 왔다는 원망이 애를 붙잡느라 고단했다는 의미로 톡 쏜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애를 붙잡고 있지도 않았으면서 잠깐의 귀찮음을 나에게 고스란히 화로 전했다는 게 용서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엄마도 지지 않았다.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엄마에게 나는 더욱 화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괴물같이 화를 내는 내 모습에 놀라 다 함께 울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미술수업을 간다고 하여서 다시 둘을 데리고 나왔다. 화실에 들여보내고 들어오는 길 나는 엉엉 울었다. 미술시간은 1시간 20분. 내 마음을 달래기 충분할까? 글쎄 확신하지 못한 채 집에 들어갈지 말지를 고민했다. 난 집에 들어가도 엉엉 울 것이고 들어가지 않아도 울 것이다. 1시간 20분은 내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딘가로 기분 전환하러 가기에도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11월 초 날씨답게 추웠지만 신랑의 두꺼운 리버시블 양털 잠바를 입었더니 엉덩이까지 포근했다.


벤치에 앉아 올려다본 하늘. 나뭇가지가 어쩜 이렇게 앙상하게 슬픈 거냐며 왈칵 눈물이 뿜어져 나왔다.


집에 갈지, 미술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할지 친정엄마에게 마저 화를 더 낼지, 앞으로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며 신랑에게 돈을 빼주라고 할지 잠시 고민하느라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러다 이도 저도 못한 채 그냥 놀이터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긴장을 풀었다. 긴장했던 어깨에 힘을 빼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늘이 보였다. 올드하게 꼭 힘들 땐 하늘을 보는 사람들... 이 생각나 그랬다. 하늘을 보면 뭐가 다른가? 싶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참았던 눈물이 와르르 무너지는 성처럼 뿜어져 나왔다. 옛날 사람 인증. 고개를 들고 우는 거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행여 애 엄마가 왜 저러나 동네 사람 볼까 봐 하늘을 보는 척했다. 계속해서 옛날 사람 인증.


11월,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 약간은 스산한 날씨를 좋아한다.

나뭇가지는 앙상하고 바닥에는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수명을 다해 나뒹구는 건조한 날. 바람이 불면 더욱 좋다. 따뜻하게 입어서 바깥의 날씨와 상관없이 안온함을 느끼며 걷다가 문득 외로워서 또르르 눈물 흘리는 시간을 변태처럼 좋아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날은 사실 거의 드문데 그날이 이 날이었다.


그래 오늘은 그냥 울기 좋은 날씨구나.

눈물 나기 딱 좋은 그 날씨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가족의 필요로 친정과 합가를 선택했고 싫다 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해 함께 살고 있다.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친정 아빠와 신랑은 만족스럽게 잘 지내고 있었다. 문제는 엄마와 나였다. 하루가 멀다 하게 싸웠고 내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나는 정말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휴직 이후로 운 기억이 거의 없었다. 이제 울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했고 감정도 메말라가는구나 싶었는데 합가 이후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내가 복직하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오히려 감사하며 살 테니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자 맞춰가며 적응하고 있었는데 또 일이 터진 것이다. 아이 문제라 더 예민했고 과하게 화가 났다. 이제 나는 복직해야 하니까 더 걱정이 됐는데 엄마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자기감정만 내세웠다. 이해할 수 없다... 화가 난다... 용서할 수 없다... 만 반복하며 앉아있자니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냥 미안하다고 했으면.

놀랐겠다고 했으면.

아이가 없어진 걸 알고 먼저 뛰쳐나가 줬으면....

내가 이렇게 울고 있진 않았을 것 같은데...


미안하다는 말, 상대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반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했다. 나도 엄마처럼 내 자존심에, 내 피로에 미안하다는 말 대신 무반응을, 시간이 흐르면 좋아지겠지 대충 얼버무리며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한 줄 카톡으로 마음이 풀릴 리 만무하다.

하지만 난 아이들과 집으로 들어가 엄마가 차린 저녁을 먹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런 힘이 있구나 새삼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엄마의 사정이 있을 거란 거 안다. 그 사정을 다 이해해야 엄마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어린 나이는 아니다. 그래도 나는 당분간 꽤 많이 속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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