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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Nov 15. 2020

작은 행복을 엮어나가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처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원작 소설인 이 책은 음식과 사랑이 환상적으로 표현된 재미있는 소설이다.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는 듯하면서 각자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소설.


매월 계절에 어울리는 스토리가 있는 요리가 레시피와 함께 소개되는데 음식에 이야기가 있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이색적이라고 할까? 감각적인 전개에 비해 주된 소재는 ‘막내딸은 결혼도 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가족 전통인데 이런 막장 소재와 전개가 굉장히 흥미진진한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중략)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p124


상상력을 자극하는 멈출 수 없는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존이라는 의사가 나타나 환상의 세계를 오가는 주인공들을 현실로 잡아주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해설자의 역할을 해주는 대목이다. 티타는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한 채 억눌려 살다 보니 페드로라는 남자의 산소에 매우 맹렬하게 반응했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존의 말대로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데 막상 무엇을 찾게 되면 세상 유일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사실 살다 보면 하나의 길이 물 흐르듯이 막힘없이 통하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이사를 해야 할 때 마침 원하던 집이 나타나고 집주인은 때마침 급하게 해외로 나가느라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주고 이후 보증금을 올리지 않는다든가, 아이에게 특별히 한글 떼기를 가르치지 않았는데 책을 읽어주는 과정에서 스스로 학습하게 됐다든가 하는 일, 등은 그저 내일이 아닌 남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 가지 방법과 잘 풀리는 남들의 이야기에 막연하게 기대서는 안 된다. 어려운 일은 언제 어디서나 친구처럼 내 뒤통수를 칠 수 있고 플랜 B, 플랜 C, D 여러 대안을 생각해둘수록 더욱 든든하다. 한번 시도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쉽게 얻어진 결과에 충분히 행복하기 어렵다. 10번 실패해도 11번째 성공하는 사람의 행복이 훨씬 큰 것은 그동안의 과정을 내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소확행이 유행하면서 행복을 멀리에서 찾지 않고 아침의 커피 한잔에서 행복을 느낀다거나 주파수가 맞는 저자의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긍정적 사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소확행이 의미 있는 것은 대체 불가한 대단한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커피 한잔이 따뜻한 물 한잔이 되어도 행복할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없다면 누군가와의 뜻이 통하는 짧은 대화로도 소확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티타는 생각지도 못한 불행한 가족의 전통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 플랜 B가 없었기 때문에 밀려오는 불행 앞에서 주도적인 삶을 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니, 바로 부엌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나를 표현할 때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요리였다. 내가 대단히 요리를 잘해서라기보다는 엄마라는 정체성 중 ‘먹이는 것’ 이상으로 아이에게 큰 임팩트를 주는 역할은 없었던 것 같다.


 대다수의 엄마들의 상황이고 티타, 그리고 당시의 모든 여성 역시 그랬던 듯싶다. 한데 그 익숙하고 재미없는 부엌이라는 공간을 엄청난 감각의 세계로 표현하다니! 잠시 상상력을 발휘하며 티타의 요리, 감정에 빠져들 수 있는 황홀한 책이다.



엄마의 삶은 이 책의 요리처럼 진부한 듯 드라마틱하다. 잔잔하고 멋지지 않은 삶인데 늘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티타가 그런 역설적인 삶에 만족하지 못하듯 나 역시 비슷한 일상에서 늘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해주고 싶으면서 나를 먼저 챙기고 싶기도 하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을 설파하며 무엇이든 나의 행복을 얻기 위해 두리번대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돈 안 드는 책으로 파고든다. 책 속에서 쉬기도 하고 새로운 삶에 자극을 받기도 하고 다른 인생을 꿈꿔보기도 한다. 결국 페드로와 자신의 모든 것을 태우면서까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게 되는 티타를 보며 내 행복의 목적지가 어디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역시 행복할 수 있는지 떠올려 본다.



이 책이 요리와 사랑을 신선하게 다루듯 여자의 일생, 엄마의 일생, 그리고 나의 일생을 어떻게 좀 더 매력적이고 환상적으로 남겨볼까 하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본다.  동시에 그 과정이 나 혼자만 끓어 올라서는 안 된다는 안전장치도 한번씩 확인해보고. 




이런저런 나만의 기록이 쌓이다 보니 청춘의 끓어오르는 대단한 열정은 아니어도 잔잔하게 이어온 삶의 작은 불씨들이 여러 개의 미니 전구처럼 이어졌다. 모든 이에게 자랑할 만큼은 아녀도 지인들을 초대해 함께 나눌 만큼의  불빛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건 왠지 나와 맞지 않고 이 정도면 딱 좋겠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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