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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Nov 23. 2020

서로가 서로의 연기를 이해하는 것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나는 이 책을 두세 번 빌렸다. 두세 번 반복해서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으려는 시도를 몇 차례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한 번에 완독 하지 못한 채 반납하고 대출하는 반복을 했다는 것이다. 제목부터 어려우니까. 만약 내가 김원영이라는 저자에게 호감이 없었다면 읽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겠지. '호감'이란 대단히 플러스적인 요소이다. (김원영 작가는 이슬아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알게 됐다.)

어쨌든 초반에 내 이야기 같지는 않으면서도 힘든 이야기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문턱을 넘고 나니 제대로 알고자 하는 마음이 책장을 술술 넘기게 했다. 결론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되시는 분들은 함께 읽으며 고민하고 노력해보면 좋겠는 책이다.

나는 작년인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보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존엄성은 어떻게 표현되고 구축되는 것인지. 내가 나를 존엄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너무 추상적이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문자로서의 '존엄성'은 당최 잘 모르겠더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존엄성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존엄성이 잘 지켜지지 않을 때 존엄성이라는 실체를 보게 되고 나의 경우도 더듬더듬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p67, 자폐아동의 부모는 소란 속에서도 태연히 책을 읽는 대학생이 무관심한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안다.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상호작용은 실재를 공유하면서 그 존중을 강화한다. 모르는 척해주는 익명의 대학생이 고마워서 그를 존중하며, 자신을 존중하려 애쓰는 자폐아 부모의 노력을 아는 대학생은 더더욱 무심한 척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타인이 나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나를 존중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존중하게 된다.

p71.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극명하게 빛나는 순간은 서로가 서로의 연기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때이다. 품격이 상대방을 적절하게 접대하는 연기에 의해 구성된다면, 존엄은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본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대우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존엄이 '구성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김원영 작가는 어린 시절  계곡으로 뛰어 나가 놀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배려해 끝까지 '피부관리'를 해야 해서 집에 남아있겠다는 친구의 '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배려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 역시 친구의 연기를 모른 척하면서도 친구가 밖에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배려하며 그 연기에 상호작용했다. 

저자는 여러 가지 철학과 어려운 개념, 법 제도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다시 편안하게 이야기한다.

p312-13. 예의 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의 손길, 무시와 냉대 속에 혼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고개 숙여 말을 거는 순간, 조금 더 긴 시간을 들여 상대방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미적, 정치적 실천, 그런 것들이 모여 자기 삶의 조건을 수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하고 탁월한 자아를 구축하게 한다. 그러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을 언어화하고, 법적인 권리로 만들고, 품위와 겉모양만 중시하는 품격 주의자들의 세계에 구멍을 낸다. 모든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은 이제 법률이 되고, 헌법이 되어 우리 공동체의 최고 규범이 된다. 그런 규범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다시 자신의 친구에게 "피부 관리해야 돼"라는 귀엽고, 뭉클하고 놀랍도록 탁월한 상호작용 기술을 발휘해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이념의 중심에 오는 세상을 향한 긴 순환을 시작한다.

(...)

따라서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책은 

1장 노련한 장애인

2장 품격과 존엄의 퍼포먼스

3장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4장 잘못된 삶

5장 기꺼운 책임

6장 법 앞에서

7장 권리를 발명하다

8장 아름다울 기회의 평등

9장 괴물이 될 필요는 없다 로 구성되어 장애인의 실체적 삶, 그리고 현재 사회의 인식, 노력, 그 사이에서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하고 아프게 반복되어 설명되고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나는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개념이 많은 공부가 되었다. 

p151-153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말은 단지 자기 자신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가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지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나는 걸을 수 없고, 키가 작으며, 휠체어를 탔고, 뼈가 자주 부러지지. 이것이 나다." 하지만 그는 인디아와 다르게, 자신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거쳐 실천적 책임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나의 몸과 정신의 상태를 극복할 수 없으니 몸과 정신에 따른 결과를 책임질 필요가 없고, 책임질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 몸이 자유롭고, 존엄하고, 가치 있어야 한다는 책임을 지기로 '결단'한다. 장애로 인한 삶의 결과를 나는 책임질 수 있었다고 간주한다. 이것을 깨달을 때만이 자유로워질 수 있고, 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장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글쎄.  하지만 이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책임진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진행 중인 과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도 마지막 부분에서는 p309. 내가 장애를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통합되고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 자신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서인지도 모른다. 고 말한다. 나를 나로 인정하고 책임을 다하는 존재로 살게 하는 것은 결코 혼자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앞에 존엄성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화답하며 상호작용하는 순간이라고 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내가 기억하고픈 것은
이렇게 사소한 배려, 하지만 빛나는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자는 것과
복잡한 이야기를 가진 한 개인을
눈에 띄는 특성으로 집약해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p189. '친절한'공무원은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계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 앞에서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은 장애라는 신체적, 정신적 특성으로만 표현될 뿐이다. 그런 신체적, 정신적 특성과 반응하며 수십 년을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은 이 과정에서 삭제된다. 복잡한 이야기를 가진 장혜정이라는 독립된 개인은 밥을 하지 못하고, 날짜를 셀 수 없는 '발달장애'라는 속성으로 쪼그라든다.

바로 이런 것 말이다.

아이에게 이 책을 다른 방에서 갖다 달라고 말하자 아이는 제목을 읽으며 무슨 책이냐고 말했다. 나는 네 친구 중 누군가를 눈에 보이는 대로, 특징 한 가지로 부르는 것을 조심하자는 내용이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이해한 바는 이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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