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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23. 2020

너의 생일엔 더 행복한 이유

네 존재로 온전히 기쁜 하루.


"내 생일이 얼마 남았지?"

"글쎄 23일이니까 좀 남았지..."

"엄마, 내 생일엔 말이지. 미역국, 갈비, 우렁, 김, 김치, 이런 걸 해 줘..."

"소박한데? 그렇게만 해주면 돼?"

"응. 다 내가 좋아하는 거잖아? 그럼 됐지! 언니는 내 생일에 뭐 해 줄 거야?"

"언니? 글쎄..."


12월이 되자 우리 둘째는 보통 때보다 200% 에너지가 상승해 조잘거렸다. 매일매일 자기 생일을 손꼽더니 어느 날은 EBS키즈 생일 축하 영상을 보면서 갑자기 EBS에 사진을 보내란다. 아이의 한마디에 부랴부랴 검색을 했지만 생일 한 달 전에 신청을 해 방송이 될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만 알게 됐을 뿐이었다. 생일을 며칠 안 남기고 검색을 한 거라 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자기 생일을 알리는 것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웠다. 이런 걸 원했으면 진작 알아보고 해 줄걸 그랬네 아쉬운 마음도 들었고. 다행히 아이는 내년엔 꼭 미리 사진을 보내란 말을 할 뿐 생일이 다가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금세 기쁨에 빠져들었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 둘째는 생일 선물로 뭘 받느냐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일을 알고 축하해주는 것 집중하는 것 같았다. 특별히 선물은 요구하지 않고 그저 자기 생일을 알리는 것에만 열심이었다. 실제 나는 첫째와 카드를 만들고 생일상 차려준 것 외에 선물은 준비하지 않았는데 아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선물을 요구하지 않다니.


우리 아이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막연히 누굴 위하는 감정보다 세밀하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주는 것을 원했다. 너무 예쁘다, 나는 네가 너무 좋다는 표현보다 나의 어떤 점이 예쁜지, 무엇 때문에 좋은지를 구체적으로 물었다. 무엇이든 먼저 배우는 언니에 비해서 자신이 늦고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아침마다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피아노 치는 모습이' 예쁘다고 말했다. 아이는 그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고마워'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순간이 참 우아하다고 느꼈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간을, 현재 자신에게 국한된 칭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매우 사랑스러웠다.

이런 아이이니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의 존재로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으레 주고받는 선물보다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되는 그 시간을 기대하고 기다린 것이다.


살다 보면 내 존재를 자각하기보다 타인으로부터 비춰지는 나를 더 많이 보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내가 응당 가져야 할 것들을 먼저 채우게 되고. 아직 우리 아이는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보다 자기 존재를 스스로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단계이다. 내 생일엔 이렇게 해달라고. 함께 기뻐해달라고. 내 존재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니 그것만 기뻐하자고.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해줄 수 있어서 함께 하는 사람들도 행복해진다. 해줄 수 있는 상태와 존재임에 행복하다. 자신의 행복을 챙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복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둘째가 그랬다.

작년 여름, 동네 아트센터에서 발레 갈라쇼를 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예매하려는데 첫째가 계속 서운해하며 울었다. 작년이니까 첫째는 7세, 둘째는 6세. 엄마랑 떨어지는 것을 못할 나이가 아닌데 첫째는 그렇게 나의 문화생활을 방해?했다. 이때 구원투수가 되어줬던 건 다름아닌 둘째였다.


"엄마도 엄마 재밌는거 보고 올 수 있지!

우리도 우리 보고 싶은 만화,공연 보는 것처럼 엄마도 그럴 수 있는거야~

엄마 보고 오게 해줘."


둘째의 이런 발언이 참 많은데 그때마다 난 이 아이는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구나 싶어 기뻤다.


어쨌든 둘째는 12월이 되자마자 매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얘기했고 앞으로 몇일이 남았는지 동네방네 이야기를퍼트려 빵집 사장님도 케이크 사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정도다. 준비하는 입장에선 별다른 게 없어 오히려 긴장이 되기도 했다. 특별한 걸 하지 않으면 호되게 꾸지람을 들을 것만 같은? 더군다나 코로나19때문에 집에서만 모든 걸 치뤄야 하는데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7세 딸내미 생일이 시어른 잔칫날 준비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혹시 지나친 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하고.



생일 당일.

아침은 간단하게 미역국만 끓였는데 아이는 싱글벙글했다. 점심엔 잔치국수를 해주고 직접 고른 케이크에 불을 붙여 온 가족이 축하노래 불렀다. 특별할 것이 없는데도 아이는 행복의 나라에 둥실둥실 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의 표정을 보며 우리 가족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첫째 생일, 남편 생일, 내 생일을 거쳐 마지막이 우리 둘째 생일이다. 마지막이라 기다리는 게 지칠 법도 한데 우리 둘째는 자기 생일이 마지막이라 좋단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서 축하를 잔뜩 받고 곧이어 크리스마스라 또 신나는 일이 생긴다고 너무너무 좋단다. 한 달 동안 왠지 모르게 긴장하긴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상대의 행동까지 주문할 줄 아는 둘째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내 생일이 꼴찌라고, 크리스마스랑 겹쳐서 루돌프 케이크뿐이라고 투덜대지 않고 산타와 루돌프 가득한 진열장에서 크리스마스 특수성 지운 케이크를 고를 줄 아는 예민함이 사랑스럽다. 두 번 축하받아 좋다고 말하는 긍정성에 물개 박수를 쳐준다.


" OO야, 네가 오늘 더 행복할 수 있는 건 네가 원하는 걸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그냥 아무거나,라고 하지 않고 정확히 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면 사람들이 더 잘 알게 돼. 앞으로도 너 자신을 잃지 말고 지금처럼 잘 표현해야 돼!"


말할 필요도 없는 아이에게 뻔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가 되면 어느 날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순간이 오니까 너는 널 잃지 말라는 소리는 속으로 삭히면서 그래도 이 아이라면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너의 생일이어서 엄마도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어.

우리 가족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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