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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28. 2020

본연의 나를 찾는 시간, 이 책과 함께

'엄마의 문장'을 읽고


온종일 진행된 굿은
남편의 속옷과 아이들의
속옷을 태우며 마무리가 되었다.
그때서야
마음이 후련하고 편안함이 느껴졌다.
모든 우환을 다 지워 낸 것처럼
마음이 말끔해졌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샘솟았다.
다음에 돈 생기면 또 굿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힐링 중의 힐링이었다.
p28



사람들이 '길쌤'이라 부르던 길화경 작가님을 나는 건너 건너(또^^;;) 알고 있었다. 어떤 독서모임에서 만난 기억이 있는데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나누진 못해서 친분을 많이 쌓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길 작가님의 소식을 가끔씩 들었다. 그리고 늘 응원하게 되었다. 잠깐 보았지만 그 얼굴이 온화했고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분위기란 본인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억지로 소망할 때는 절대 풍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여유가 있어서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글쎄. 뭐랄까. 삼켜온 눈물이 많기에 다른 이의 눈물을 알아봐 줄 것 같은 막연한 기대정도?


그런 길쌤의 책이 나왔고 책의 초반부터 길쌤의 문장은 나를 강렬하게 이끌었다. 굿을 하면서 마음이 후련하고 편안함이 느껴졌다고 말하는 그 마음은 얼마나 어지러웠던 것일까? 나는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다음에 돈 생기면 또 굿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는 문장이 어쩐지 종교를 떠나 마음에 들었다. 리뷰를 쓰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저 문장이 감히 이 책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힘듦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지금 길화경 작가님을 이끈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적으로 다시 굿을 하는 대신 이렇게 책을 냈으니까.


그래서 길화경 작가님은 힘든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투명하게 느끼고 헤아릴 수 있는 가슴을 지니게 되었다. 고 한다. 역시 그랬다.


p48.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과 중요하게 대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스스로를 중요하게 대하는 마음이었다. 온전히 시간을 내어 나를 마주하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하던 실수를 나에게도 똑같이 저질렀다. 독대가 힘들어서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대신 놀이동산에 가고, 예쁜 옷과 장난감을 사 주는 행동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힘든 시간을 통과하여 어디로 갔을까? 그 길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 누가 알려준다 한들 내가 동의가 되지 않으면 내 길이 될 수 없다. 지름길을 알려준다고 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지름길은 없으니까. 그럼에도 자신을 독대하는 일은 꽤 어렵다. 생각지도 않은 모습에 나 스스로 실망하면 그걸로 끝이니까. 더 이상 희망도 가능성도 없어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가장 두려운 일이기에 마지막까지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겨두고픈 마음이 나를 만나는 것을 방해한다.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책을 보며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고.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정말 잘 살아서 만족하는 것과 실패할까 두려워 내 삶이 만족스럽다고 나를 속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진단이다. 길 작가님의 이야기는 나의 고민과 다르지 않았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내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나를 중요하게 대하며 집중하자고. 나의 휴직 두 달은 그렇게 쓰려고 한다. 정말 마지막이니까.



p60. 원하는 것을 당장 하지 못할 때 실망하고 실패했다고 낙담하기 쉽다. 하지만 그 마음까지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멈추지 말고 서성이더라도 기어코 써야 한다. 썼다 지울지라도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내 글의 목적, 내 삶의 비전은 누구도 아니고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니까. 밖에서는 답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시간 무릎을 다치며 주저앉은 자리에서 깨달았으니까. 이 지난한 과정을 꿋꿋하게 견디는 것, 그것만이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전에 책을 볼 때는 그래서 뭘 하란 것인가? 답을 떠먹여 주길 바랬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하는데? 뭐가 다르지? 하면서 그들의 노력을 과소평가했고 에세이의 추상적인 다짐을 보며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잖아? 하면서 나의 부작위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의 시간이, 노력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노력해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있다. 내가 지금 원하는 대로 뻗어나갈 수 없을 때 자존심 구겨질까 봐 포기라는 카드를 선택하지 말자. 지금의 과정을 꿋꿋하게 견디는 것이 지금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한 과정을 꿋꿋하게 견디라고. 누구보다 길 작가님이 그렇다고 하니 나는 그렇게 믿어본다.



마음껏 소망을 펼칠 수 있는 그 시간.
일상과 꿈 사이, 노동과 휴식 사이의 파란 시간을 거닐며 본연의 내가 되는 시간.
어쩌면 파란 시간을 거닐던 그 걸음이 모여 일상에 작은 길을 낼지도 모르겠다.
 소망하던 곳으로... p121



작가님 덕에 안 에르보의 파란 시간을 아세요?라는 책을 알게 됐다. 우리는 무용의 시간이 아닌 희망을 품은 파란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내게도, 당신에게도 소망하는 그곳에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말하는 다정한 응원이 이 책에 가득하다. 이제는 어두운 이야기 뒤에 밝은 희망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작가님은 어두울 수 있다고 했지만 아니다. 아침 햇살 같이 적당히 따뜻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빛이 나를 은근하게 자극한다고 조용히 고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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