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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an 13. 2021

내 안의 욕망을 찾을 수 있는 곳

고전에 기대는 시간을 읽고.


정지우 작가는 매일경제 밀레니얼 시각으로 늘 좋은 글을 써주셔서 알게 되었다. 작가라고 나와있는 걸 보면 책이 있을 텐데 싶어서 검색했더니 이 책이 나왔다. 고전을 좋아하는데 정지우 작가님에게 어떤 고전이 영향을 끼쳤나 궁금해 바로 빌려온 것.




p11. 청춘 내내 무엇을 좇았냐고 한다면, 집요하게 어떤 세계를 얻고자 발버둥 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청춘이 비슷하지 않나 싶다. 다만 보통의 경우 그 세계란,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직장과 동의어다. 청춘에 우리는 대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다들 무언가 되기 위해 청춘을 바친다. 고시 공부, 취직 준비, 그 외에 경력을 쌓아 가는 일들을 지나 언젠가 세계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인지 이 사회 속 각각의 영역들은 모두 ‘계’라고 불린다. 언론계, 출판계, 법조계, 교육계, 의료계 등등. 우리는 어떤 하나의 세계에 속하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세계 속의 정체성을 얻기 위해, 그토록 청춘 내내 분투한 셈이다.



어디 청춘뿐이랴. 40에도 50에도 60에도 우리는 어느 세계에 속하고자 노력한다. 여기로 오라고, 너와 비슷한 사람이 많아 함께 공감할 수 있다고 손짓하는 여러 플랫폼, 기웃거리며 강의를 들으며 속해진 단톡 방, 동네 이름이 붙은 맘 카페 등등. 나만해도 단톡 방이 여러 개고 알림을 꺼놓아도 고봉밥처럼 카톡이 쌓여 깜짝깜짝 놀란다.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있기도 하고 꼭 들어야 하는 소식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그곳에 속해 있지 않으면 무언가 놓치고 사는 게 없는지 가끔 불안해진다. 어떤 세계에 속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마 계속될 것 같은데 그게 싫으면 내가 그 세계가 되는 방법이 있다. 그 또한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사는 내내 분투한다.




p64. 사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초연하고자 한다. 나름대로 각자 초연한 분야도 있다. 비교가 그다지 의미 없다는 것도 알고, 사치가 나쁘다는 것도 알며, 타인들을 좇아가는 유행 따위가 덧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타인들이 있는 세계로부터 쫓겨나는 것 같은 박탈감 때문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쉽게 초연해지지 못할 뿐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현재의 내 삶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이 가진 것만이 행복으로 인도하는 표지판처럼 보일 것이다.(장 그르니에, '섬'을 읽고 난 저자의 글)




내가 계속해서 단톡 방에 빼꼼 빼꼼 한 마디를 하는 것, 모임을 만들고, SNS를 하는 것이 꼭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은 아니지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에 쉽게 초연해지지 못하는 것은 맞다. 내가 어느 정도 초연한 부분도 분명 있는데 명품이나 삶의 방식이 다른 것들 부러워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하면 행복을 더 크게 느낄까 하는 고민에 이것저것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이들이 가진 것이 행복으로 인도하는 표지판처럼 보여 따라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잘 모를 때 경험해보는 꽤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가 처음부터 내 길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다른 표지판을 보고 가보는 것, 그것 또한 경험이다.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면 돌아 나오면 그만이다.




p133. 타자의 이미지만을 좇는 삶, 건설과 생산의 차원으로 이르지 못하고 소비만으로 점철된 삶은 필연적으로 공허에 이른다. 그 공허는 고요하지조차 않다. 거기에는 평온이 아니라 시끄러운 허망감이 자리 잡는다. 소란스럽고 평화가 없는 공허 속에서 우리는 삶 전체를 생각한다. 삶은 욕망에 의해 빛난다. 그 무엇도 욕망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기쁨도 얻을 수 없다. 주체적으로 삶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로 점철된 욕망, 그리하여 실질적으로 삶을 지어 나가는 기쁨을 아는 욕망,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는 자긍심을 동반하는 욕망이 활력 있는 생기로 이끄는 욕망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챕터)




맞다. 고전에는 욕망이 숨겨져 있지 않아서 좋다. 욕망이 있으면서 없는 척, 고고한 척, 아닌 척하는 것만큼 답답한 게 없다. 그렇게 아닌 척하다가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낼 수 없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뭘 하고 싶냐. 이것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데 내가 무엇을 시기하고 무엇에 분노하는 가를 보며 가려진 욕망을 찾을 수 있었다. 정지우 작가 말처럼 삶은 욕망에 의해 빛나고 욕망하지 않고서는 무엇도 얻을 수 없으며 기쁨 또한 느낄 수 없다. 건강한 욕망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게 하고 생기가 넘치게 한다.



p189. 우리가 실로 원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와 닿는 확신감이다. 스스로가 매우 특별한 순간에 속해 있고, 우리 삶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 느끼길 원한다. 누군가는 그 느낌이 강남 아파트 단지의 생활에,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에, 하와이의 풀빌라에, 여의도의 국회의원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릴케가 볼 때, 존재의 확신감이란 그와 같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내부를 가득 채우며 우리‘안’으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것이다.




욕망,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확신감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그 확신감과 편안함은 각자 다른 곳에 안착하겠지만 사실 그 존재의 확신감은 내부에 있다는 말이 정답일지언정 어렵다. 결국 바깥을 다 돌고 와야 내 안에 있는 보물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표지판을 따라 가보기도 하고 타인의 행복에 내 행복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모두 경험이고 자산이다. 결코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니 여기저기 방황하는 사람들, 청춘들, 나이 상관없이 나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 물론 나도. *^^* 이렇게 여행하는 건 즐겁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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