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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an 06. 2021

수요공급의 원리보다 중요한.

Bliss

"할아버지, 만약에 내가 그린 그림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원하면 나는 그 그림을 더 많이 그려야 돼요?"

"음, 사람들이 같은 그림을 많이 원하면 그 그림의 값이 비싸지지."


밥을 느릿느릿 먹는 첫째가 마지막까지 밥을 먹으며 하는 이야기가 뜬금없었다. 우리 첫째의 꿈은 그림도 그리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아티스트로 경제관념이나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아이인데 갑자기 수요공급의 원리를 묻고 있다니.


호시탐탐 경제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엄마는 이를 놓칠 세라 거실에서 소리쳤다.


"아니 아니 그림을 많이 그리면 안 돼. 사람들이 왜 그 그림을 원하는 줄 알아? 그림이 하나밖에 없어서야. 네가 자꾸 그리면 그림이 많아지잖아? 그럼 너무 흔해져서 가격이 떨어질 거야. 그러니 그림을 많이 그려선 안돼."

아이는 답이 없었다.

"수요, 공급 말해줬지? 원하는 사람보다 제공해 줄 것이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가는 거..."

아이는 씽긋 웃으며 말을 흐렸다. 

"알지... 세명이 원하는데 2개밖에 없으면..."


저녁의 그 대화에 특별히 뭐라 한 사람은 없었는데 밤이 된 지금 생각하니 갑자기 부끄럽다. 너무 호들갑스럽게 나선 것 같고 아이의 마음과 다른 대답을 끼워 넣은 것 같아 민망하다. 우리 첫째가 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내가 속상할 때 자신의 그림을 보고 웃었기 때문인데...

사람들에게 말이 아닌 그림으로 행복을 전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말을 나는 벌써 잊었던 건가?


지금 보니 친정아빠도 아이의 물음에 동문서답을 했다.

아이는 그 그림을 더 많이 그려야 하냐고 했는데 아빠 역시 그 그림의 값이 비싸진다고 했다.


아이의 질문에 다시 대답을 해보자면,

사람들이 너의 그림을 보고 행복해한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더 많이 그려서 행복을 전하고 싶겠지?

그 마음을 따라 결정하면 되는 거야. 일 텐데...


나는 집주인이 누리고 있는 이른바 유복하고 세련된 생활이라는 것이 껑충 뛰어서 잡은 것임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고, 나의 모든 관심은 그 '껑충 뜀'에 쏠려 있어 그의 생활을 장식하고 있는 미술품을 감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월든/숲 속의 경제학 p64, 은행나무]


나는 어쩐지 아이의 순전한 행복을 가린 것 같다. 나의 관심은 자본주의 경제에 쏠려 있어 수요공급을 가르치려는 마음이 앞서간다. 물론 삶에는 균형이 필요하고 아이가 경제원리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뭐든 자신의 가치에 우선순위가 있지 않나. 경제원리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자신의 행복이자 만족일 텐데. 소로우가 지적했듯이 나는 어떻게 하면 '껑충 뜀'을 이룰 수 있는지에 집중하느라 아이의 보석 같은 마음을 보지 못했다. 이전에 수요공급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세명이 원하는데 2개밖에 없으면 한 명이 속상하겠다는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불과 이것뿐이랴. 내가 더 빛나는 가치를 보지 못한 것이.


내 생활을 장식하고 있는 고결한 예술품을 감상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껑충껑충 뛰는 것에 넋 놓고 있었던 비슷한 장면들이 생각난다.


코로나 19로 학교도 유치원도 가지 않지만 매일 할 일을 성실히 해내고 있는 아이를 옆에 두고 보유종목 화면의 불기둥을 보며 히죽거린 날.

단어시험 10개 중 7개를 맞았다고 자랑하는 아이 뒤에서 세상에 3개나 틀리다니 속으로 놀랬던 날.

마트에 따라나선 둘째가 언니가 좋아하는 간식을 카트에 잔뜩 넣으며 행복해하는데 따라오지 않은 언니 꺼를 왜 이렇게 많이 사냐고 카트에서 꺼내던 날 등.


우리가 실로 원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와 닿는 확신감이다. 스스로가 매우 특별한 순간에 속해 있고, 우리 삶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 느끼길 원한다. 누군가는 그 느낌이 강남 아파트 단지의 생활에,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에, 하와이의 풀빌라에, 여의도의 국회의원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릴케가 볼 때, 존재의 확신감이란 그와 같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내부를 가득 채우며 우리‘안’으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것이다. [고전에 기대는 시간 p189, 정지우/을유문화사]

부모의 마음은 아이가 나 없이도 잘 사는 것에 향한다. 아이가 단지 부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무엇을 하든 행복한 것을 원한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에 돈이 없어서 행복을 방해받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 허락 없이 방향을 튼다. 하지만 우리가 실로 원하는 것은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내 안의 만족인데.


내 마음을 가득 채우며 내 안으로부터 치솟는 것을 알기 전에 수요공급을 먼저 배운 엄마가 늦은 저녁 너의 질문에 글로써 대답을 정정해.


너의 마음을 풍요롭게 채우는 그 길을 따라간다면 어떤 경제원리보다 더 큰 기쁨이 따라올 거야.

그런 너만의 Bliss를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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