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밍블 Jan 04. 2021

절약을 위해서 필요한 그럴듯한 명분

휴직의 경제학도 숲 속의 경제학처럼.

2년 전 충동적으로 휴직을 결정하면서도 계산식 하나는 빠르게 세운 것이 있으니 바로 아이 교육비였다. 취학 전 아이 교육에 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지만 당시 우리는 두 아이 모두 영유를 보내고 있었고 두 아이의 학비는 내 월급으로 감당하는 구조였다. 내가 휴직을 하면 당장 아이 교육비가 구멍 나게 될 텐데 정말 휴직을 해도 되는지 가장 먼저 우리 재무 상태를 떠올렸다. 맞벌이였어도 아이를 돌봐주시는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우리 지출의 큰 부분인 교육비를 제하고 나면 모아 둔 돈이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휴직이 아예 계획에 없었던 것은 아녔기에 모아둔 돈을 우선 교육비로 쓰고 이후에 한 명이 졸업하면 신랑 월급만으로 어느 정도 감당할 수준이 될 것 같았다. 1년을 그렇게 버텼다. 작년은 변수가 너무 많았다. 한 명이 졸업을 했지만 영어와 예체능 수업에 지출이 또 생겼고 둘째 역시 그랬다. 돈이 부족할 것 같았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우리 가정 경제를 살린 건가?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둘째는 유치원을 퇴소했고 개인 레슨을 받았던 피아노와 미술학원은 레슨비가 이월됐다. 주말엔 참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외식을 많이 했는데 그것 또한 줄었다. 나들이를 가도 차 안에서 김밥을 먹거나 도시락을 싸서 먹기도 했으니까. 가장 효과적인 재테크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른 가능성에 눈 돌릴 수 있는 여윳돈이나 대안이 없는 것, 즉 돈을 쓸 수 없는 상황 말이다. 통장 쪼개기나 매일 5천 원 예산 등도 다른 상황을 아예 차단한 절약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계획하고 다른 상황을 차단한 것이 아니라 민망하지만 강제적으로 이런 상황이 되어 살아보니 그것도 괜찮았다.


 우리의 경우는 가장 큰 지출인 교육비가 줄어든 것이라 다른 부분의 지출 감소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지만 온라인으로 영어수업은 계속하고 있었으니 다른 지출도 줄여야 했다. 포인트는 스트레스 없이 조금씩 조금씩 줄이기. 예를 들어 외식을 그대로 했다. 대신 인원수대로 주문하는 파스타, 피자집보다는 탁 트인 테라스가 있는 베이커리 카페로 갔다. 베이커리 카페를 다니다 그마저도 만만치 않게 여겨질 때는(요즘 크라상이 눈 돌아가게 예뻐지고 맛있어지더니 가격도 눈 돌아간다.) 점심을 먹고 나가 스타벅스 DT점을 갔다. 마음의 씁쓸함이 생기지 않게 조금씩 줄이다 보니 저항감이나 비참함이 없었다. 코로나 덕에 비자발적인 부분이었긴 했지만 그래서 더 괜찮았다. 억척스러운 느낌이 없었다고 할까? ^^;;


나 자신의 경험에 의하면 현재 이 나라에서 의식주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몇 가지 도구, 즉 칼, 도끼, 삽, 손수레 따위이며, 학구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면 램프, 문방구 그리고 몇 권의 책인데, 이런 것들은 모두 사소한 비용으로 마련할 수 있다. p31 

생활필수품을 마련한 다음에는 여분의 것을 더 장만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바로 먹고사는 것을 마련하는 투박한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p33(월든/숲 속의 경제학) 


어쨌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돈을 안(못) 쓰는 상황이 되어보니 나 역시 월든의 소로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맘먹고 돈을 절약해야지, 외식을 줄여야지 했으면 스트레스에 소비가 더 폭발했을 텐데 자연스러운 상황의 변화는 받아들일만했다. 소로우도 숲 속의 경제학이라고 하지 않았나. 도시의 경제학에서는 미니멀 라이프라고 이름 붙여야 가능해진다. 뭐든 그럴싸한 명목이 있어야 저항감 없이 절약이든 뭐든 가능해진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네이밍은 정신과 행동을 지배하는 절약의 중요 포인트인 것 같다.


2년의 휴직 생활 동안 마이너스 없이 잘 버티고 나의 생활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나의 휴직 경험에 의하면 내게 의식주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카페와 책뿐이었는데 이런 것들은 휴직자 입장에선 꽤 큰 비용이었다. 윽. 앞서 말했듯 크라상은 꽤 비싸졌고 맛있는 커피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럼에도 횟수를 줄이고 만족을 유지시키는 방법, 횟수를 유지하고 만족을 낮추는 방법을 번갈아가며 효용을 유지했다. 책은 도서관을 십분, 백분 활용했고.


그리고 나 역시 소로우처럼 여분의 것을 더 장만하기보다는 인생의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퇴사를 생각하며 나의 또 다른 재능을 찾아보는 것. 뭐가 됐든 다른 초록 불빛을 찾아가 보는 것 말이다. 절약했으니 복직해서 그것보다 더 열심히 벌어보자는 생각은 없다. 대신 다른 명분이 생겼다. 퇴사를 위한 초기 자본을 모아보자는 그럴싸한 명목. 나는 다시 저항감 없이 덜 먹고 덜 쓰고 할 수 있을까? (웃음)


작가의 이전글 흘러넘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