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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31. 2020

흘러넘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다정한 매일매일을 읽고.

이 책은 나의 벗, 효랑이 선물해 준 책. 그날의 기억은 링크된 브런치 글에 남겨뒀다.

https://brunch.co.kr/@mintblue918/60



그러니까 2020년 100번째 서평은 당연히 이 책으로!!!


사실 올해는 다독보다 깊이 있는 독서, 여유 있는 독서를 하고 싶었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어쩌다 보니 또 100권을 넘게 읽었다. 블로그에 쓴 리뷰가 100권이고 읽은 책은 좀 더 많은데 리뷰 쓰지 않으면 금방 휘발되어서 읽어도 읽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은 예상했던 만큼 따뜻한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원하는 방향으로 부단히 나아가려고 애쓰는 일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베이킹은 모르지만 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소제목을 붙인 것이 후각을 자극해 더 행복함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p18.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 없이 그저 사랑과 동경만으로 시작한 일. 나의 한계를 알지 못한 채 하고 싶은 마음이 흘러넘쳐 시작했으나 남들이 능숙해지도록 혼자 여전히 서툴고 쩔쩔매는 일. 남들 앞에 선보여야 할 때면 늘 자신감이 없지만 결과물이 어떻든 그만둘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게 소설 쓰기와 베이킹은 어쩌면 똑 닮은 작업.


백수린 작가에게 소설 쓰기가 여전히 서툴고 쩔쩔매는 일이라니 나 같은 보통사람이 볼 땐 무척 놀랍지만 어쨌든 본인이 그렇게 낯설게 느끼다니 그렇다면 나도 굳이 어떤 일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구나 위로가 되었다. 흘러넘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자신감이 없지만 그만둘 생각만 하지 않으면 어느 지점에 흘러 흘러 오지 않겠냐는 이야기로 들려서 힘들 때마다 쳐다볼 문장이 될 것 같다.


p67. 첫 문장을 쓴다는 것은 표류해 있던 내가 어느 쪽으로든 방향을 돌려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첫 문장을 쓰는 것이 어렵지 막상 어떤 식으로든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다른 문장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딸려 나오게 마련이지만, 그렇게 이어지는 문장들이 나를 어느 곳으로 데려가려는지 나는 모른다.

p105. 나의 말이 타인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재단하지 않기를. 내가 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무시무시함에 압도되지 않기를. 나의 글에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나의 글이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워지기를.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나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서 당신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여전히 첫 문장을 쓰는 것은 어렵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다른 문장들이 딸려 오는 것은 내가 주저하는 모든 것에 해당한다. 겁먹고 하지 않았던 일들, 귀찮아서 미뤄뒀던 일들까지도 처음 무엇만 마음먹으면 줄줄이 딸려 오는 과정의 흐름을 타고 분명 어딘가까지 와있다. 이왕이면 그 목적지를 알았으면 좋겠고 내가 원하는 곳이었으면 해서 그곳을 예상해보느라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예상치 않게 2년을 쉬게 되면서 나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시간들이 때론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계획한 대로 이룬 것이 없어도 이전과는 분명 다른 출발점에 서있는 나를 보며 누군가의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도 마침내 나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길. 백수린 작가님의 문장을 보며 2020년 마지막 날, 조금씩 내 머릿속을 정리한다.


p210. 시간이 아깝다고 바디로션 바르는 일조차 건너뛸 때가 대부분이라는 걸 나는 기억해낸다. 일에 쫓기면 가장 먼저 잠을 줄이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끼니를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나는 내 몸에게 모든 걸 양보하라고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 가죽 가방 하나만큼도, 구두 한 켤레만큼도 나는 내 몸을 아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글프게 깨닫는다.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내가 원했던 것은 날마다 다른 구름의 빛깔에 감동하고, 바람의 결을 느끼며, 꽃그늘 아래 앉아 계절이 깊어가는 것을 찬찬히 응시하는 삶이었을 텐데.


나는 나를 위한 소비를 아끼는 편은 아니다. 물론 내게 주어진 금전적 한계 안에서 말이다.^^;; 그런데 바디로션 바르는 일, 린스를 쓰는 일들은 내가 전혀 투자하지 않는 분야였다. 시간이 아깝다기보다는 수고로움에 비해 결과가 별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40을 앞두고 있자니 이 작은 수고로움에 내 머릿결이 달라지고 내 피부가 촉촉해진다면 나는 얼마든지 시간과 노력을 배정하겠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바디로션을 주문했고 집에서도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원했던 삶은 구름의 빛깔은 몰라도 바람의 결은 느끼고 싶었다. 꽃그늘, 나무 그늘 아래 마스크 없이 한참을 앉아있는 것인데 기미, 주근깨 걱정도 없었으면 좋겠다.


p228.‘디어 라이프’를 다시 읽으며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은 나의 내밀한 고백이 “사람들은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단다”라고 읊조려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소설이 그런 것이라면, 당신과 내가 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들인 한 인생은 아직 친애할 만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내 서평과 자잘한 글들도 그렇다. 솔직히 어떤 포스팅을 하면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지 오랜 블로그 생활을 통해 학습했다. 그런 포스팅으로 내 블로그 방문자수가 많았기도 했고. 하지만 이렇게 글자만 가득한 글을 누가 읽어.. 했던 글들을 읽는 몇몇의 누군가가 나를 더 잘 이해해주고 응원해 준다는 느낌을 받은 이후에 나는 내 글을 쓰기로 조금씩 마음을 정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서로 친애하는 거 아니냐고. (웃음)



2020년, 모두에게 기록될만한 해였을텐데 그 기록 중에 감사와 만족, 작은 행복이 분명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너무 힘든 한 해였다면 2021년 부지런히 오고 있는 행복을 기쁘게 맞이하시길 바라며...

모두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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