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밍블 Nov 25. 2020

오늘도 다정하길, 내일도 다정하길

이렇게 좋은 날도 있습니다.

"나 쌍둥이 책 갖고 싶어"

"쌍둥이 책이 뭔데?"

"똑같은 책 하나씩 나눠 갖는 거"


쌍둥이 책이라길래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지은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다른 버전의 이야기 책인 줄 알았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불러보는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 둘 다 내가 너무 좋아했던 작가였는데 요즘 그들의 이야기를 본 적이 없네. 국내 작가들의 책만 보느라 이들의 작품 소식을 모른 건지, 아님 정말 뜸한 건지 갑자기 궁금하다.


어쨌든 쌍둥이 책은 그냥 별 거 아닌 거였다.


그냥 똑같은 책이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는 요일, 장소, 서점으로 부른 것까지.

자의식 강한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쌍둥이 책이라고 부르며 책 선물까지 해준 그녀의 마음은 자기 자신보다는 나를 더 생각한 게 분명하다. 게다가 책도 내가 골랐다.


"난 어떤 책이든 다 좋으니 네가 보고 싶은 거 골라!"라고 말했지만 요즘 신간은 뭐가 있나, 인기 있는 책 중 내가 못 본 게 뭐가 있나~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내 맘을 어쩌면 그녀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화룡점정으로 "난 거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봐서 신간은 못 읽은 게 많아"라고 까지 말했다.

결코 내가 고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 그냥 아무 '신간'이나 좋다는 얘기였는데 그녀는 더 어쩔 줄 몰라했다. 생각해보니 이전에도 나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어 했다. 결국은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 선물이 더 어렵다며 그날 점심을 멋들어지게 샀었지. 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뻔뻔하게 얻어먹고 말았는데 한편으론 그녀가 책 선물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넘긴 건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뒤늦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뻔뻔하게 매대를 휘저으며 책을 골랐다. 백수린 작가의 첫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  나는 백수린 작가가 좋았고 그녀는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이라는 부제가 마음에 든단다. 제목도 너무 다정한 데다가 매일매일이라는 단어까지 붙었으니 내 삶도 더불어 매일매일 행복할 것 같아서 한 장도 읽어보지 않은 채 바로 낙찰!


집에 와 프롤로그를 펼치니 딱 내 마음 같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다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다운 사람들끼리 향기로운 차와 빵을 놓고 마주 앉아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 아무 근심 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그날이 우리에게 어서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백수린)


코로나 19로 만남의 횟수는 었고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것이 매우 익숙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따뜻한 마음을 새롭게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는 요즘이다. 이런저런 모임이 많았다면 나는 그녀를 이런저런 모임에서 짧게 짧게 많이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임을 최소화하고 가정보육으로 인해 나갈 여건도 만만치 않게 되니 만남을 고르고 골라야 했다.(만나자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렇게 소중하게 만난 사람이니 마음속 가장 순결하고 정제된 것을 조심스럽게 꺼내며 서로를 존중하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뭐 엄청 대단한 만남은 아녔지만 마음가짐만은 진중하고 조신했다. ^^;;




거리두기는 2단계로 격상됐고 아이들은 다시 주 1회 등교로 돌아갔다. 연말이면 조촐하게 모임을 가져볼까 싶었는데 모두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1년을 함께 한 독서모임, 나의 소중한 후배들과의 시간, 이런저런 소모임을 집에서든 파티 공간이든 우리끼리 기념하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래도 화면을 통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ZOOM이라는 코로나 최대 발명품? 이 있고 만나지 못하는 동안 조개가 진주를 품듯 소중하게 간직할 우리의 진짜 진짜 소중한 마음은 그대로 존재하니 괜찮다... 고 주문을 걸어본다. 화면에 뜨는 얼굴은 진짜가 아니잖아, 눈빛을, 숨결을, 느낄 수 없잖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더 크게 짐작해볼 수 있으니 괜찮다...라고 다시 또 주문을 걸어본다.


서점에서 그녀를 만나고 곧바로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났다면 이 글을 쓰는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그러지 못한 덕에 나는 그날을 꽤 오래 생각했다. 참 다정한 하루였다고, 그녀가 무엇보다 정말 다정했다고 오래오래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코로나 19가 내게 관계의 깊은 풍미와 향을 선물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풉^^;;


앞으로도 있을 여러 다정한 만남을 쉬이 잊지 말고 사골곰탕처럼 깊게 우려먹어야지 다짐도 해 본다.

그녀가 선물한 책은 아껴본다고 아직도 프롤로그다.

책을 읽을 때 또 그녀가 생각나겠지. 또 그날의 다정함이 생각나겠지. 땡잡았다!

작가의 이전글 좋은 사람들과 사다리를 오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